시사, 상식

양승태 대법이 후퇴시킨 ‘과거사 배상’, 헌재가 바로잡았다

道雨 2018. 8. 31. 09:31





양승태 대법이 후퇴시킨 ‘과거사 배상’, 헌재가 바로잡았다

 



‘불법행위일부터 10년’ 소멸시효 위헌

“국가폭력 진실규명 오랜시간 걸려”
간첩조작·민간인 희생 등 배상청구
진실 안 날로부터 3년 이내 가능
양승태 대법선 6개월로 축소시켜

추가보상 길 열린 민주화운동
피해자가 생활지원금 받았으면
청구 금지한 양승태 대법과 달리
정신적 피해에 대한 청구 가능 판단


30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 앞 담벼락에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원본부 서울서부지부 명의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관련자를 구속하라는 펼침막이 걸려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30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 앞 담벼락에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원본부 서울서부지부 명의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관련자를 구속하라는 펼침막이 걸려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헌법재판소는 30일 대법원이 좁혀놓은 과거사 피해자의 국가 손해배상 청구길을 일부 넓혀줬다.
국가가 시민을 죽음으로 내몰거나 간첩 혐의를 씌우고도 수십년 은폐했던 국가폭력 사건의 손해배상 청구 시효를 일반 사건과 동일하게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앞서 양승태 대법원은 과거사 사건 소멸시효를 단축하고, 박정희 정권 시절 긴급조치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은 대법원 판결을 “박근혜 대통령 국정운영 뒷받침” 사례로 꼽은 바 있다.


과거사 사건 국가배상 청구 시효

 헌재는 재판관 6 대 3 의견으로 민법이 정한 소멸시효(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를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이나 간첩 조작 등 중대한 인권침해·조작 사건에 동일하게 적용하는 것은 헌법에 위반된다고 결정했다.
국가폭력 과거사 사건은 진실이 드러나기까지 수십년이 걸렸다는 점에서, 그 소멸시효를 ‘불법행위를 한 날’로 적용하는 것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점을 다시 한번 분명히 한 것이다.

헌재는 “두 유형의 사건은 국가기관이 국민에게 누명을 씌워 불법행위를 자행하고 사후에도 조작·은폐해, 오랜 시간 진실규명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았다”며 “국가기관의 조직적 은폐와 조작에 의해, 피해자들이 가해자 등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오랜 기간 진실이 감추어졌다는 특성이 있어, 일반적인 국가배상 사건과 근본적으로 다른 사건 유형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어 “유족들은 국가로부터 집단희생의 일시 등을 통지받지 못했기 때문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었다. 수사기관의 가혹행위로 유죄가 확정된 피해자는 재심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국가배상을 청구할 수 없었던 경우가 많다”며 “이런 사건에서 불법행위 시점을 소멸시효 기산점으로 적용하는 것은 손해배상제도의 원리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따라서 이들 사건에는 “일반적인 소멸시효를 그대로 적용하기 부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헌재는 국가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기간과 관련해,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은 “관련 위원회의 진실규명 결정을 안 날로부터 3년 이내”, 중대한 인권침해·조작 사건은 “재심 무죄 판결 확정을 안 날로부터 3년 이내”라고 선언했다.

앞서 대법원도 “진상을 은폐한 국가”의 책임을 물어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는 국가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 판결을 한 바 있다. 하지만 대법원은 2011년 9월 양승태 대법원장이 취임한 뒤 다시 국가의 책임을 회피하는 ‘역주행’을 본격화했다.
박근혜 정부 첫해인 2013년 12월 대법원은 간첩 조작 사건 등 인권침해·조작 의혹 사건의 소멸시효를 ‘재심 무죄 확정 이후 형사보상 결정 확정일로부터 6개월’로 확 줄여놓았다. 이 기간이 지나면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때문에 하급심에서 승소해 배상금을 ‘가지급’받았던 이들은, ‘가해자’였던 국가로부터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 소송을 당하는 황당한 처지에 내몰렸다. 헌재의 이날 결정은 이를 다시 ‘바로잡는’ 취지인 셈이다.


민주화운동 보상금 받아도 청구 가능

 헌재는 이날 민주화운동 보상심의위원회로부터 보상금을 받았다고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도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재판관 7명은 ‘보상금 지급 결정에 동의하면 민사소송법에 따른 재판상 화해가 성립’된 것으로 본다는 민주화운동보상법 조항에 대해 “정신적 피해에 대한 배상은 여전히 청구할 수 있다”며 이렇게 결정했다.

재판상 화해가 성립하면 판결과 동일한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에, 피해자는 국가를 상대로 추가적인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게 된다.
‘양승태 대법원’의 전원합의체는 2015년 1월 이 조항을 가져다 붙이는 방식으로 “생활지원금 등 보상금을 받았다면 국가로부터 재차 손해배상을 받을 수 없다”며, 민주화운동 관련자들의 배상 청구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당시 대법관 13명 중 5명이 “보상금 액수가 다른 과거사 사건 위자료 액수보다 현저하게 적다”며 반대했지만, 그때는 보수적인 다수 대법관들의 벽을 넘지 못했다.

하지만 헌재는 이번에 “민주화보상법상 보상금에는 ‘정신적 손해’에 대한 배상이 포함되지 않았다. 배상·보상이 이루어졌다는 사정만으로 정신적 손해에 관한 국가배상 청구마저 금지하는 것은 지나치게 가혹한 제재에 해당된다”고 밝혔다.
다만 헌재는 “보상금 등에는 재산적 손해에 대한 배상·보상의 성격이 포함되어 있다”며 보상금과 중첩되는 ‘재산적 손해’에 대한 추가 배상 청구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했다.

헌재는 대법원과 달리 민주화운동보상법 입법 취지를 적극 끌어안았다. 헌재는 “자신의 생명과 신체에 대한 위험 등을 감수하고 권위주의적 통치에 항거함으로써 현재 우리가 보장받고 있는 자유와 권리를 회복·신장시킨 사람과 그 유족에 대한 국가의 보상의무를 회피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실제 과거사 피해자들은 고문과 억울한 누명의 고통에 이어 국가배상금을 한푼도 받지 못하거나, 1심 판결 뒤 미리 받은 배상금을 이자까지 붙여 돌려줘야 하는 ‘돈 고문’을 당하는 등, 국가의 ‘2차 폭력’에 시달렸다.

하지만 양승태 대법원 시절 법원행정처는 상고법원 설치를 위해 이런 ‘과거사 역주행 판결’들을 “과거 왜곡의 광정” “박근혜 대통령 국정운영 뒷받침 사례”로 포장해 청와대와 거래를 시도했다.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60043.html?_fr=mt2#csidx4fe26af297103a7a0782dc5705ac2a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