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자의 한국, 안과 밖] 우리 미래, 약육강식 없는 사회로
1949년 12월16일. 눈 덮인 엄동의 소련 모스크바로 중국의 새 지도자인 마오쩌둥(이하 마오)이 기차를 타고 왔다. 그로서는 불안했을 법한 소련 방문이었다. 그는 외국어를 못했으며, 그때까지 외국에 나가본 일도 없었다.
게다가 신중국이 건국된 지 두 달 반밖에 지나지 않았으니, 중-소 관계는 그 성질상 당시로서는 평등할 리가 없었다.
제2차 대전의 승전국이며 핵보유국인 소련은 거의 30년 동안이나 중국 공산당의 후원자 역할을 해온 반면, 마오의 새 나라는 아직 그저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는 농업국가였다.
마오가 소련의 스탈린에게 요청해야 할 사항들은, 소련 부대의 뤼순 철수부터 무기와 차관 제공까지 태산 같았다. 마오로서는 얼마든지 위축될 만한 상황이었다.
한데 그는 위축되긴커녕 스탈린이 놀랄 정도로 위풍당당했다. 소련이 홀대하려 할 때마다 이를 큰소리로 꾸짖는가 하면, 스탈린과의 첫 대면에서 소련 공산당이 중국 혁명 문제를 둘러싸고 범한 오류들을 과감하게 지적해, 스탈린으로부터 사과 발언을 얻어냈다.
그리고 새로운 중-소 조약을 협상했을 때에는 사사건건 따져가면서 자국의 이해관계를 최대한 지키려 했다.
이런 당당함은 과연 어디에서 나왔을까?
마오는 정치인이면서 철학가였고, 중국의 과거에 정통한 만큼 미래를 볼 줄 아는 혜안을 가졌다.
그는 소련이나 미국의 강성함이 역사의 ‘법칙’이라기보다는 ‘예외’에 가깝다는 것을 역사 공부를 통해 너무나 잘 알았다. 한나라 시절부터 제1차 아편전쟁까지 중국이 유라시아 세계의 경제·문화적 중심이었다는 것도, 서세동점의 시기가 언젠가 끝나고 이런 상태가 회복되리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당장은 힘이 모자라도, 그는 과거와 미래를 내다보면서 스탈린과의 협상 테이블에서 맞짱을 뜰 수 있었다. 1949년 당시와는 완전히 역전된 오늘날 중-러 관계를 보면, 마오의 예측이 얼마나 정확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제대로 된 정치나 정책은, 적어도 수십년 정도의 미래에 대한 예측까지 고려하여 만들어지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장기적인 미래비전을 가진 사회야말로 숫자놀이에 불과한 ‘성장’이 아닌 질적인 발전을 이루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를 예측하면서 정책의 큰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면, 어떤 부분부터 중시해야 할 것인가?
첫째, 나라의 근간은 인민이다.
이미 출산율이 1.0에도 못 미치는 초저출산 사회가 된 한국의 인구는, 유엔의 예측에 따르면 2100년에는 3870만7천명으로 감소할 것이다. 그때는 한국인의 평균수명이 93살이 되어, 고령 인구에 대한 돌봄 노동이야말로 가장 큰 사회적 과제로 부상할 것이다.
과감한 대학 평준화와 무상화로 막대한 사교육비를 줄여 육아 부담을 덜어준다면, 출산율은 이와 같은 교육체계를 갖춘 독일 수준(1.5 정도)으로 오를지도 모른다.
바람직한 방향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인구의 자연재생산은 어차피 불가능할 것이다. 유일한 장기적 해결책은, 독일이 이미 시행하는 것처럼 대대적인 이민 수용이다.
대한민국은 현재의 노르웨이·스웨덴처럼 외국계 인구가 총인구의 17~18%를 구성하는 이민사회가 되지 않는다면, 장기적으로는 존립 자체가 어려울 것이라고 봐야 한다.
이민사회로 가는 것은 ‘다문화’ 같은, 내용 없는 구호만으로는 안 된다. 일단 고용허가제를 폐지하여 다른 이민사회들과 같은 정상적인 노동이민제를 채택해야 할 것이다. 즉, 대한민국으로 오는 노동자들이 이 사회에 기여하는 만큼, 멀지 않은 미래에 영주권과 국적을 얻어 정착할 수 있다는 비전이 있어야 진정한 ‘다문화’의 가능성이 보일 것이다.
그리고 단순한 구호를 넘어 진짜 ‘다문화’로 가자면, 이민자들의 출신 사회와 본래 문화에 대한 수용과 존중의 태도부터 가져야 한다.
학교에서부터 표준어와 함께 연변 말의 대강을 잠깐이나마 가르치고, 베트남이나 필리핀의 역사와 문학을 가르쳐야, 각종 마찰·갈등 방지와 상호존중 분위기 조성에 도움이 될 것이다.
둘째, 인민들에게는 먹을거리부터 필요하다.
한국의 식량자급률은 산업화된 나라들 중에서는 제일 낮은 축에 속한다. 현재로서는 50% 정도지만, 쌀만 제외하면 수입 의존은 절대적이다. 쌀을 제외한 주요 곡물(보리, 밀, 옥수수, 콩 등)의 평균 자급률은 13%밖에 안 된다. 사실 국제곡물가가 급등할 경우 대한민국이 받을 타격은 ‘오일쇼크’ 이상일지 모른다. 문제는 장기적으로 그럴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점이다.
지금 한반도의 평균기온은 섭씨 12.3도지만, 전지구적 온난화에 따라 2050년에 이르면 3.2도가 더 올라 15.5도 정도가 될 전망이다. 폭염, 가뭄, 폭우가 잦아질 새로운 상황에 대한 한국 농업의 대응은 쉽지 않을 것이다. 현재 전체 논(98만4천㏊) 중 10년 빈도의 가뭄에 견딜 수 있는 논은 53%에 불과하다.
한데 국제적으로도 농지의 상당 부분은 사막화되고 있어, 러시아와 캐나다 등에 기댈 곡물시장에서 곡물가는 앙등할 것이다.
우리가 ‘먹고 사는 문제’에 몇십년 후 다시 부딪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체계적으로 농업지원 강화와, 새로운 기후조건 적합 품종의 개발과 보급에 나서야 한다.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인구 과밀의 좁은 반도의 기후가 아열대화되는 상황에서 우리도 아주 힘든 상황을 겪을지 모른다.
셋째, 나라의 존재 이유는 인민의 행복이고, 인민 행복의 근간은 심신의 건강이다.
한데 지금 대한민국은 구조적인 병리사회의 한 사례다. 올해 명목상 1인당 국민총생산은 유럽연합(3만3천달러)에 가까운 3만달러지만, 각자의 삶의 질은 그 어느 산업화된 사회보다 훨씬 열악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현재 한국형 자본주의 모델이 불안정과 과잉 경쟁, 그리고 여전한 장시간·고강도 노동을 특징으로 하기 때문이다.
한국만큼 평균 노동자의 근속연수가 짧은 나라, 즉 직장 불안정성이 강한 나라는 산업화된 세계에서 찾기 힘들다. 한국 직장인들 가운데 절반 이상이 한 일자리에서 3년을 버티지 못하며, 평균 근속연수는 4.5년에 불과하다.
직장에 있더라도 업적 경쟁에 더해 충성 경쟁까지 살인적이고, 거기에다가 많은 업종에서는 여전히 1970년대 못지않은 초장시간 노동이 지배적이다. 과로사로 인정받는 경우만 해마다 300명이 넘는다. 여전히 경쟁, 스트레스, 과로가 한국인을 죽이고 병들게 한다.
한국형 신자유주의는 저출산의 주된 요인 중 하나이며 한국인에게는 지구온난화 이상의 재앙이다. 이 지옥적 시스템을 뜯어고치려면 단순히 소득주도 성장만으로는 부족하다. 대학 평준화와 재분배 장치 강화만으로도 부족하며, 민간부문 비정규직 고용 사유 제한과 모든 노동자들의 경영참여권 획득은 필수적이다. 그래야 불안·경쟁·스트레스의 분위기를 협동과 연대의 분위기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미래 행복의 전제조건 중 하나는 바로 생존이다. 이민사회로의 이행도, 수출이 아닌 식량 자급화와 같은 기초적 과제에의 집중도 바로 생존 보장의 방법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전제조건은 이윤 극대화와 경쟁논리와의 완전한 작별이다. 이윤을 바라는 투자자들이 아닌, 안정되고 쾌적한 일자리를 원하는 노동자들이 일터의 주인이 되어야 이 전제조건은 충족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주류 매체들이 ‘새로운 성장동력’을 운운하지만, 미래의 진정한 문제는 ‘성장’이 아닌 각자의 삶의 질과 행복이다. 밟히지 않으려면 누군가를 밟아야 하며, 늘 불안에 전전긍긍해야 하는 사회에서 행복이란 없다. 약육강식·각자도생이 없는 미래를 내다보는 정책이야말로 백년대계가 되고 ‘개혁’이 될 수 있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61635.html?_fr=mt0#csidxc447191eca3a488ab7159486a4b7c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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