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한반도 비핵화, 긴 호흡이 필요할 때다. 교황도 사탄의 속삭임에 넘어갔나

道雨 2018. 10. 23. 10:10




한반도 비핵화, 긴 호흡이 필요할 때다 




한반도 비핵화가 진전되는 것인가, 아니면 답보 또는 후퇴하는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큰 틀에서 한반도 비핵화라는 큰 프로젝트는 현재 진행형이라 할 것이다.


언론이나 정치적 이해집단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의 입이나 그 정부의 행동을 뒤쫓기에 바쁜데, 이는 미시적 입장의 틀이라는 한계 속에 주로 갇혀 있다. 한·미 두 정부에서 나오는 비핵화에 대한 일련의 정보는 미시적인 것이 대부분으로, 한·미 두 나라가 갈등하는 것처럼 비친다.


트럼프 대통령의 헷갈리는 어법도 미시적 분석의 혼선을 부추기는 데 크게 기여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사랑에 빠졌다고 말하면서도 대북 제재를 강화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국내외 언론은 미국 정부의 관점에서 북한 책임론을 보도하는 관행을 되풀이하고 있다. 한국 언론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부분이다.


미국 정부나 전문가들이 과거 1990년대부터 추진된 한반도 비핵화 목표가 좌절된 것은 순전히 북한 책임이라는 식의 프레임 속에서 논평을 하는 것도 미시적 시각이 빚어내는 문제점이다.

그러나 연초 이후 벌어진 한-미, 북-미 관계를 거시적으로 보면 큰 그림이 그려지게 된다.


우선 북-미 간에도 비핵화 추진 공식에 대한 합의가 진행 중인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최종 목표까지 실천할 수 있는 추진 원칙과 방식이다.


북한이나 미국 모두 유엔 회원국이라는 점에서 상호평등의 조건에서 비핵화가 추진되어야 한다는 원칙은 단계적·동시적 추진이라는 것으로 좁혀지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 핵협정 탈퇴에 이어, 러시아와 맺은 ‘중거리 핵전력 조약’(INF)을 파기했는데, 이런 일이 한반도 비핵화 추진 과정에서 재발하지 않게 강력한 장치를 만드는 데는 좀 더 시일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두번째 거시적 관점에서 주목해야 할 한반도 비핵화 추진과 관련해 괄목할 만한 성과는 한반도에서 전쟁 위험이 사라진 것을 들 수 있다.

한반도 전쟁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변수 가운데 하나인 미국의 대북 선제공격 전략의 무력화가 바로 그것이다. 이는 문 대통령이 전쟁은 절대 안 된다는 전제 아래, 한반도 군사적 충돌 및 전쟁 방지, 핵무기와 핵 위협 없는 한반도를 강조하면서 이뤄진 효과라 하겠다.


이상과 같은 거시적 성과 등은 물론 치밀한 한-미 정부 간 조율을 거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트럼프가 얼마 전 한국 정부에 대해 자신의 사전 승인 운운한 발언은, 국제 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을 훼손하면서 한국에서 남남 갈등을 유발해 문재인 정권의 대북 정책을 약화하는 빌미가 되고 있다.


문 대통령이 국내외에서 줄기차게 대북 제재 완화 필요성을 강조한 것은, 북한과의 신뢰를 강화하기 위해 취해진 것으로 읽힌다.


프랑스, 영국 정상이나 아셈(ASEM·아시아유럽정상회의) 회원국들의 대북 강경 자세는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한반도 비핵화와 관련해 한-미 간에 합의된 거시적인 대전제가 ‘한국은 북에 대해 립 서비스를 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울어진 운동장인 한-미 군사동맹을 평등국가의 그것으로 정상화해야 한다.


이런 필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는데 여당이나 학계, 전문가, 시민단체 등은 아직도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아 안타깝다.




고승우
전 민주언론시민연합 이사장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66890.html#csidx4e151b2701fbdb2a271c0ef43de100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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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도 사탄의 속삭임에 넘어갔나




지난 18일(현지시각) 교황청을 공식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난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지난 18일(현지시각) 교황청을 공식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난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우리 사회의 어떤 이들에게 ‘대북제재’는 성경 말씀과 동격의 신성불가침 진리다.
대북제재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이를 말미암지 않고는 복된 나라에 이르지 못하니라!
그러니 누군가 대북제재 완화를 조금이라도 입에 올리면, 신성 모독이라며 길길이 날뛰고 분노한다. 그런 사람은 사탄의 속삭임에 넘어간 용서받지 못할 배교자다.

이런 비유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유럽 순방길에 대북제재 완화 필요성을 역설하자,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세력은 “김정은을 대신해 총대를 멨다” “북한의 대변인” 따위로 벌떼처럼 공격했다.
그런가 하면 프랑스 대통령이 “실질적 비핵화가 될 때까지는 제재를 계속해야 한다”고 말한 것에는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자신들을 구출하러 달려온 유럽 십자군이나 만난 듯 의기양양하다.

그런데 모든 광신종교가 그렇듯이 ‘대북제재 신앙’의 교리는 허점투성이다.
우선 대북제재 강화를 열심히 기도하면 천국(북한 비핵화)이 도래하는가?

지난해 9월 미국의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유엔 대북제재가 작동하지 않는 이유’란 기사에서 이를 네가지로 간명하게 정리했다.
첫째, 북한은 수십년간 제재 속에서 살면서 국제사회의 감시 레이다를 피할 수 있는 비밀 경제를 갖추었다. 둘째, 몰래 들여오는 물품 통로가 차단되면 곧바로 다른 어떤 곳에서 얻는다.
셋째, 북한은 이미 물자 부족에 단련돼 있다.
넷째, 제재가 강화될수록 북한은 핵 개발에 사활을 건다.

그동안의 역사적 경험이나 전문가들의 판단을 종합할 때, 대북제재 고삐를 조이면 북한이 저절로 핵을 포기할 것이라는 교리는 그 자체로 혹세무민이다.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한이 비핵화를 향한 조처를 시작했는데도 미국은 막무가내로 제재를 풀지 않고 있다.
미국으로서는 대북제재를 협상의 지렛대로 삼으려는 생각이겠지만, ‘비핵화가 완료된 뒤 제재를 완화한다’는 게 과연 사리에 맞는지 의문이다.

상호 신뢰 구축이 비핵화를 앞당기는 데 더 효과적이지는 않은지, 만약 북한이 완벽한 비핵화 조처를 취하지 않으면 그때 가서 더 강력한 제재 조처를 취하면 그만 아닌지, 이런 의문이 제기되는 게 당연하다.
보수세력에게 그 정도의 고민과 성찰까지는 기대하지도 않는다. 다만 대북제재 문제를 전략적 관점에서라도 바라보면 괜찮은데, 절대 털끝 하나 건드려서 안 될 신성불가침의 존재로 숭상하고 있다.

더 역설적인 것은 대북제재교 신자들이 “북한은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공공연히 단언하고 있는 점이다. 핵이 북한에는 보물단지인데 그 보물단지를 포기하겠느냐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그들은 애초부터 천국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고 있다는 이야기다. 아니, 천국의 도래 자체를 원하지 않는 게 본심일지 모른다.

그러면서도 대북제재를 신성시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결국 신도들을 끌어모아 교세를 불리고 헌금함을 두둑하게 채우는 것이 주목적이다. 그것이 바로 우상숭배의 진짜 목적이다.

원래 유사 종교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온상으로 삼아 번창한다.
해방 이후 줄곧 ‘안보 불안 심리’에 편승해 이 땅에서 승승장구해온 유사 종교 세력은, 한반도에 평화 물결이 일면서 ‘영업’에 큰 타격을 입게 됐다.
그동안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해온 ‘한미 동맹 약화 교리’도 요즘에는 효능이 크게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찾은 활로가 바로 대북제재다. 마침 대북제재 완화를 둘러싼 한미 간의 미묘한 의견 차이까지 감지되니, 사막의 오아시스요 깜깜 망망대해에서 발견한 등댓불이 아닐 수 없다.


대북제재교 신자들의 눈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 계획도 못마땅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이들은 문 대통령이 교황에게 평양 방문을 요청한다는 소식이 나오자마자, “김정은의 이미지만 좋게 만들 뿐”이라고 격렬히 반발했다.
국제사회에 대한 교황의 영향력이나 평화 사도의 구실, 현 프란치스코 교황이 미국-쿠바의 국교 정상화에 기여한 경험 등은 안중에도 없다.

이들은 지금 겉으로 말은 못하지만 속으로는 평양 방문 제안을 흔쾌히 수락한 교황에 대해 부글부글 끓는 심정일 것이다.
교황의 방북이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로부터 반발을 살 가능성도 있다”고 미리 딴죽을 걸고 나온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교황이 남미 해방신학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도 그들에게는 새삼 의구심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
래서 속으로 이렇게 개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교황마저 사탄의 속삭임에 넘어갔다!”
이 광신도들을 어찌할 것인가.


김종구 편집인 kjg@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66874.html#csidx5999ab46ac28fb6a8b48a4cb6a2a3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