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관련 유적지 및 문화재
* 아산 이충무공 유허(牙山 李忠武公 遺墟)(현충사, 顯忠祠) : 사적 제155호 : 충남 아산 현충사
* 이순신 난중일기 및 서간첩 임진장초 (李舜臣 亂中日記 및 書簡帖 壬辰狀草) : 국보 제76호 : 충남 아산 현충사
* 이순신 유물 일괄 (李舜臣 遺物 一括) : 보물 제326호 : 충남 아산 현충사
- 충청남도 아산시 현충사에 보관하고 있는 충무공 이순신의 유물들이다.
* 이순신 관련 고문서 : 충남 아산 현충사
- 선무공신교서(李舜臣 宣武功臣敎書) : 보물 제1564-1호
- 선유호상교서(李舜臣 等 宣諭犒賞敎書) : 보물 제1564-2호
- 이순신 사명훈유교서(李舜臣 使命訓諭敎書) 보물 제1564-3호
- 이순신 유서(李舜臣 諭書) : 보물 제1564-4호
- 이순신 유서(李舜臣 諭書) : 보물 제1564-5호
- 이순신 유서(李舜臣 諭書) 보물 제1564-6호
- 이순신 무과홍패(李舜臣 武科紅牌) : 보물 제1564-7호
- 이순신처 방씨 고신교지(李舜臣妻 方氏 告身敎旨) : 보물 제1564-8호
- 이순신 사패교지(李舜臣 賜牌敎旨) : 보물 제1564-11호
- 이순신 증시교지(李舜臣 贈諡敎旨) : 보물 제1564-12호
- 이순신 유지(李舜臣 有旨) : 보물 제1564-13호
- 이순신 별급문기(李舜臣 別給文記) : 보물 제1564-14호
- 사패교지(賜牌敎旨) : 보물 제1564-15호
- 증직교지(贈職敎旨) : 보물 제1564-16호
- 이순신과 관련된 고문서는 교서, 유서, 유지, 무과홍패, 증직·증시교지를 비롯하여 별급문기, 이순신 처 방씨 고신교지 등 14건이 지정되어 있음.
* 아산 이충무공묘(牙山 李忠武公墓) : 사적 제112호 : 충남 아산시 음봉면 삼거리 산2-1번지
* 통영 한산도 이충무공 유적(統營 閑山島 李忠武公 遺蹟)(제승당, 制勝堂) : 사적 제113호 : 경남 통영시 한산면 한산일주로 70 (두억리)
-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1545∼1598) 장군이 왜군을 크게 무찌른 한산대첩을 기념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역사적인 장소.
* 완도 묘당도 이충무공 유적(莞島 廟堂島 李忠武公 遺蹟)(충무사, 忠武祠) : 사적 제114호 : 전남 완도군 고금면 세동84번길 86-31 (덕동리)
- 정유재란의 마지막 해인 선조 31년(1598)에 이순신이 약 8,0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진을 쳤고, 그 해 7월에 명나라 장수 진린이 약 5,000명의 군사를 이끌고 고금도에 도착하였다. 가까이에 있던 이곳 묘당도에 진을 치면서 두 나라의 군사가 힘을 합하게 되었는데, 이후 7개월간 이곳은 조선과 명나라의 수군 본영이 되었다. 이순신이 마지막으로 통제영을 설치한 곳이다.
지금 이곳에는 이충무공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으로 충무사가 있고, 보호하는 절의 의미를 띤 옥천사가 나란히 있다.
충무사는 진린이 꿈에 나타난 관운장을 제사지내어 장병들의 무사함을 기원하기 위해 지었다고 하는 관왕묘에서 유래한다. 옥천사는 현종 7년(1666)에 처음 지어졌는데, 관왕묘를 보수공사하면서 그 옆에 수호와 제사를 맡게 하기 위해 암자 하나를 지었다고 한다.
일제시대에 관왕상과 위패·각종 유물들이 바다에 던져졌고, 옥천사의 불상만이 가까운 백운사에 옮겨져 보관되었다. 광복 후에는 관왕묘가 있던 자리에 충무사를 짓고 이충무공을 모시게 되었다.
* 완도 고금도 관왕묘비 ( 莞島 古今島 關王廟碑 ) : 시도유형문화재 제336호 : 전라남도 완도군 충무사길 86-31 (고금면)
- 관왕묘의 건립 시기와 배경·유지 관리 과정 등을 밝혀주는 중요한 자료이며, 정유재란을 승전으로 이끌었던 이순신과 진린 장군의 행적을 담은 기록물로, 역사적·학술적으로 중요한 가치가 있다.
* 남해 관음포 이충무공 유적( 南海 觀音浦 李忠武公 遺蹟) : 사적 제232호 경남 남해군 고현면 차면리 산125번지
- 노량해전으로 더 잘 알려진 임진왜란의 마지막 격전지로, 충무공 이순신이 순국한 곳. ‘관음포이충무공전몰유허’에서 ‘남해 관음포 이충무공 유적’으로 명칭변경.
* 남해 충렬사(南海 忠烈祠 ) : 사적 제233호 : 경남 남해군 설천면 노량리 350번지
- 남해 충렬사는 임진왜란이 끝나던 해 노량해전에서 순국한 충무공 이순신의 충의와 넋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사당으로 노량 충렬사라고도 한다.
통영의 충렬사와 함께 ‘충열’이란 현판을 처음부터 같이 사용해 왔으며 인조 때 지어졌다. 충무공이 전사한 후 그의 시신이 한 때 이곳에 모셔졌는데, 인조 10년(1632) 유림들이 옛 터에 작은 집을 짓고 제사를 지냈던 것이 최초의 사당이다.
* 통영 충렬사(統營 忠烈祠) : 사적 제236호 : 경남 통영시 여황로 251 (명정동)
- 임진왜란 중에 수군통제사로서 가장 큰 업적을 남긴 충무공 이순신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사당으로, 충무공의 활동무대가 한산도를 중심으로 한 통영 근처였기 때문에, 남해 충렬사와 함께 이곳에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게 된 것이다.
선조39년(1606)에 왕의 명령에 따라 제7대 이운용 통제사가 창건 하였으며, 현종4년(1663)에는 남해 충렬사와 함께 임금이 내린 충렬사 사액을 받은 사액사당이다.
* 통영 충렬사 팔사품 일괄(統營 忠烈祠 八賜品 一括) : 보물 제440호 : 경남 통영시 여황로 251 (명정동) 충렬사
- 임진왜란 때 이순신의 뛰어난 무공을 전해들은 명나라 임금인 신종이 충무공 이순신에게 내린 8종류의 유물 15점이다.
동으로 만든 도장인 도독인을 제외한 다른 것들은 모두 2점씩으로, 영패, 귀도, 참도, 독전기, 홍소령기, 남소령기, 곡나팔 등이 있으며, 현충사 성역화 후에 통영에서 진품이 옮겨왔으나 통영시민의 열성으로 충렬사로 되돌려졌다.
* 여수 충민사(麗水 忠愍祠) : 사적 제381호 : 전남 여수시 덕충동 1808번지
- 충무공 이순신, 의민공 이억기, 충현공 안홍국을 모시고 있는 사당.
- 충무공 이순신을 추모하기 위한 사당 중 가장 먼저 세워진 곳이며, 선조 34년(1601) 나라를 위한 세 장군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영의정 이항복이 임금께 청하여 통제사 이시언이 세웠다.
* 여수 통제이공 수군대첩비(麗水 統制李公 水軍大捷碑) : 보물 제571호 : 전남 여수시 고소3길 13 (고소동)
- 충무공 이순신의 공훈을 기념하기 위하여 건립된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대첩비이다. 전라남도 해남의 해남 명량대첩비(보물 제503호)와 함께 일제의 박해로 1942년 서울로 운반되어 행방을 알 수 없다가, 광복 이후 해남지역 유지들의 수소문으로 경복궁 근정전 앞뜰 땅 속에서 찾아내어, 지금의 자리에 다시 세워졌다.
* 여수 타루비(麗水 墮淚碑) : 보물 제1288호 : 전남 여수시 고소3길 13 (고소동)
- 이순신이 타계한 뒤 1603년(선조 36)에 좌수영의 군인들이 이순신의 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세운 비. ‘타루(墮淚)’란 눈물을 흘린다는 뜻으로, 중국의 양양 사람들이 양호(羊祜)를 생각하면서 비석을 바라보면, 반드시 눈물을 흘리게 된다는 고사성어에서 인용하였다.
- 여수 통제이공 수군대첩비 옆에 함께 위치.
* 동령소갈비(東嶺小碣碑) :
- ‘여수 통제이공 수군대첩비’를 세우게 된 내력을 적은 비. ‘여수 통제이공 수군대첩비’의 건립 경위와 여기에 참여한 인물들, 그리고 건립하기까지의 어려움 등을 상세히 기록함으로써, 후세에 충무공 이순신을 숭모하는 정신을 전하기 위하여 건립.
- 고소대 내 여수 통제이공 수군대첩비와 여수 타루비 옆에 함께 있음.
* 해남 명량대첩비(海南 鳴梁大捷碑) : 보물 제503호 : 전남 해남군 문내면 우수영안길 34
- 임진왜란(1592∼1598) 당시 명량대첩(1597)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의 공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비이다. 일제강점기 때 경복궁에 옮겨졌던 것을, 1947년에 해남의 해안지역(문내면 학동리 1186-7번지)으로 옮겨 세웠다가, 2011년 3월 원 설립지인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음.
* 충무사(忠武祠) : 문화재자료 제48호 : 전남 순천시 해룡면 신성리 산28-1번지
- 임진왜란 때 공이 컸던 충무공 이순신과 정운, 송희립을 모시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 여수 선소유적(麗水 船所遺蹟) : 사적 제392호 : 전남 여수시 시전동 708번지
-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게 한 거북선을 만들었던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 해남 전라우수영 : 사적 제535호 : 전라남도 해남군 남문길 25-2 (문내면)
- 해남 전라우수영은 서해와 남해가 만나는 군사적 요충지에 자리 잡은 조선 시대 전라우도 수군의 본영이다. 정유재란 때에는 명량대첩의 배후기지로 이용되었다.
# 여수 진남관 ( 麗水 鎭南館 ) : 국보 제304호 : 전남 여수시 동문로 11 (군자동)
- 여수 진남관은 1598년(선조 31) 전라좌수영 객사로 건립한 건물로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승리로 이끈 수군 중심기지로서의 역사성과, 1718년(숙종 44) 전라좌수사 이제면(李濟冕)이 중창한 당시의 면모를 간직하고 있으며, 건물규모가 정면 15칸, 측면 5칸, 건물면적 240평으로 현존하는 지방관아 건물로서는 최대 규모이다.
# 통영 삼도수군통제영(統營 三道水軍統制營) : 사적 제402호 : 경남 통영시 세병로 27(문화동)
- 통제영이란 충청·전라·경상도의 삼도수군을 통할하는 통제사가 있는 본진을 말하는 것으로, 삼도수군통제영을 줄여서 표현한 것이다. 선조 26년(1593)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의 한산진영이 최초의 통제영이다.
지금의 통영시 관내에 통제영을 짓기 시작한 것은 선조 36년(1603) 때의 일이다. 제6대 이경준 통제사가 이곳에 터를 닦고, 2년 뒤인 선조 38년(1605)에 세병관(국보 305호), 백화당, 정해정 등을 세웠다.
이곳은 고종 32년(1895) 각 도의 병영과 수영이 없어질 때까지 292년간 그대로 유지하다가, 일제시대 민족정기 말살정책에 의해 세병관을 제외한 많은 건물이 사라졌다.
# 통영 세병관(統營 洗兵館) : 국보 제305호 : 경남 통영시 세병로 27 (문화동)
- 통영 삼도수군통제영(統營 三道水軍統制營) 안에 있는 세병관은 17세기초에 건립된 목조단층 건물로, 경복궁 경회루(국보 제224호), 여수 진남관(국보 제304호)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건물에 속하고, 여수 진남관과 더불어 그 역사성과 학술적·예술적 가치가 크다.
* 고하도이충무공유적(高下島李忠武公遺跡)(모충각,慕忠閣) : 전라남도 기념물 제10호 :
전라남도 목포시 고하도길 175 (달동)/목포시 달동 230번지
- 이순신 장군이 1597년(선조 30)에서 1598년(선조 31)까지 108일간 머물면서 전쟁에 대비하며 군진을 재정비했던 곳.
- 이순신 장군은 명량대첩 뒤에 군산 앞바다의 고군산도(古群山島)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와 1597년(선조 30) 10월 29일에 이곳 고하도(高下島)로 진을 옮겼다.
고하도는 목포에서 서남쪽으로 2㎞쯤 떨어진 곳에 자리한 조그만 섬이다. 비문에는 고화도(高和島), 『난중일기(亂中日記)』에는 보화도(寶花島)라고 표기하였다. 서남해안의 바닷길과 영산강의 내륙 수로가 연결되는 지점으로 지리적으로도 중요한 곳이다.
이곳에서 이순신은 수군 재건에 필수적인 전선 건조와 군량 모집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지리적 위치가 서해 쪽으로 치우쳐 있어서 남해에서의 해상 활동에 적절하지 못한 약점이 있었다. 또한 섬이 작아 곡물 생산이 적었고, 유입된 백성을 수용할 공간이 부족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이듬해인 1598년(선조 31) 2월 17일 완도(莞島) 동북쪽에 위치한 고금도로 통제영을 옮겼다. 주둔 기간은 총 108일간이었다.
선착장에서 약 200m 떨어진 당산에 1722년(경종 2)에 세운 유허비가 있다.
* 발포만호성 : 전라남도 기념물 제27호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발포리 968
- 충청병사(忠淸兵使) 군관으로 재직하던 이순신은, 36세 때인 1580년 7월 이곳에 발포만호로 부임하여, 1582년(선조 15) 1월 모함을 받아 만호직에서 파면되기까지 18개월간 이곳에서 근무했다.
- 발포 굴강 : 발포 굴강은 방파제, 군수물자를 싣고 내리던 선착장, 선박수리소 역할을 한 선소(船所)였다.
# 전라좌수영 관할 5관 5포
발포진성은 전라좌수영 산하의 5관(순천 · 낙안 · 보성 · 광양 · 고흥) 5포(사도 · 여도 · 녹도 · 발포 · 방답) 중 수군만호가 다스린 수군진성으로서, 1490년(성종 21)에 축성되어 1894년(고종 31)에 폐지된 조선시대 초기의 성곽이다. 만호(萬戶)가 다스렸다하여 발포만호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임진왜란 당시 남해안의 제해권을 장악하여 일본수군을 격파하고 국난을 극복하는 원동력이 된 전라좌수영의 관할 하에 있던 군현은 순천부, 낙안군, 보성군, 흥양현, 광양현 등 5관(官)이었다.
해역을 방어하는 수군진은 사도진(蛇渡鎭), 방답진(防踏鎭), 여도진(呂島鎭), 녹도진(鹿島鎭), 발포진(鉢浦鎭) 등 5개의 진포(鎭浦)를 가리키는데 흔히 오포(五浦)라고 불렀다.
흥양현(현재의 고흥군)은 전라좌수영 5관 5포 중 1관 4포가 포진했던 군사요충지였다. 1관(흥양현)은 연해 육지의 행정구역이고, 4포는 전라좌수영 본영을 바다 쪽에서 지키는 사도진, 여도진, 발포진, 녹도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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