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이순신 해전 관련 전적지 답사 여행 사진
* 일시 : 2019. 3. 1 ~ 3. 3 (2박3일)
* 답사지 : 창원, 거제, 통영, 고성, 사천, 순천 일원의 이순신 관련 해전 전적지와 유적지
* 답사 장소
- 1일차 : 마산 산호공원(합포 추정1) - 진해 학개마을(합포 추정2) - 웅천 왜성(웅포) - 안골포 왜성(안골포) - 옥포대첩기념공원(옥포) - 거제도 율천리, 대금리(율포 추정) - 거제도 장목리(장문포) - 거제도 구영(영등포) - 거제시 숙박
- 2일차 : 거제도 칠천량해전공원(칠천량, 원균 패전지) - 통영 미륵도 삼덕 당포성지(당포) - 고성군 거류면 거류체육공원(적진포 추정) - 고성군 당항포(당항포) - 사천 선진리 왜성(사천) - 대방진 굴항 - 광양 숙박
- 3일차 : 충무사 - 순천 왜성(장도) - 충민사 - 진남관, 여수통제이공대첩비, 타루비, 동령소갈비 - 여수 선소 - 묘도 전망대 - 이순신대교 - 부산 귀가
* 참고 연표
- 1차 출동 해전 : 옥포, 합포, 적진포
- 2차 출동 해전 : 사천, 당포, 당항포, 율포
- 3차 출동 해전 : 한산대첩, 안골포
- 4차 출동 해전 : 부산포 일원
- 5차 출동 해전 : 웅포
- 이순신 삼도수군통제사 임명(1593. 8. 15)
- 6차 출동 해전 : 2차 당항포
- 7차 출동 해전 : 장문포
- 이순신 삼도수군통제사에서 해임(1597. 2. 25)
- 원균 칠천량 대패 (1597. 7. 16)
- 이순신 삼도수군통제사 복직(1597. 7. 23)
- 명량 대첩(1597. 9. 16)
- 명량 이후 해전 : 절이도, 장도/왜교성 전투
- 노량 해전(1598. 11. 19) : 이순신 사망
* 참고자료 : 충무공 이순신 해전 일람표, 충무공 이순신 관련 유적지 및 문화재
* 진해 풍호동 학개마을 입구에 있는 합포해전 안내석
* 웅천 왜성의 모습 : 주차 가능한 곳으로부터 많이 걸어올라가야 됨.
* 안골왜성(안골포성, 안골리성) 주차장에 세워진 안내판.
* 안골 왜성의 모습
* 안골 왜성에서 내려다본 안골포의 모습.
** 흔적만 남은 굴강이 있으며, 굴 특화요리 음식점들이 많다.
* 안골왜성 안에서 본 광대나물 군락.
* 지금까지 분홍색 광대나물 꽃만 봤는데, 여기 안골왜성에는 간간이 흰색 광대나물 꽃이 섞여 있다.
* 거제도 옥포대첩기념관. 바로 옆에는 충무공 이순신의 사당인 효충사가 있다.
* 옥포루 정자에서 본 옥포대첩기념탑의 모습
*당포성지에서 바라본 삼덕항(당포)
* 당포성지
* 당포성지를 지키고 있는 백구. 매우 온순하고 손님을 반기는 모습이다.
* 삼덕항(당포)에서 우연히 발견한 서양인 도래 기념비.
* 임진왜란 당시 적진포로 추정되는 고성군 거류면 일대(항만쪽)
* 적진포(바다쪽 )
* 사천 선진리성 안에 있는 이충무공사천해전승첩기념비
* 기념비의 내용. 사천해전은 이순신의 2차출동(사천, 당포, 당항포, 율포)시 첫 해전이며, 거북선을 실전에 처음으로 투입한 해전이다.
* 선진리성 인근에 있는 조명군총.
** 정유재란 당시 사천성 전투에서 숨진 조명연합군(약 7-8천명)의 시신을 한 곳에 모아 하나의 큰 무덤으로 조성.
해설사에 의하면, 이 지역 백성들이 선진리 성 밖에 있던 시신들을 옮겨와서 조성했다고 한다.
* 조명군총 앞에 있는 사당 건물. 성 이름은 선진리성(船津里城)인데, 사당의 현판은 선진사(船鎭祠)로 되어있다.
* 조명군총 옆에 있는 이총.
* 이총의 내력을 적은 안내문
* 백성들이 조명군총을 조성하고 세운 당병공양탑(唐兵供養塔). 명군을 당병으로 칭하고 있다.
* 사천 대방진에 있는 굴항('굴강', '선소'라고도 한다)인데, 원형에 가깝게 잘 복원되어 있다. 배를 건조, 수리, 정박하던 곳이다.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선소 유적은 5~6개소라고 한다.
* 굴항에 배가 정박되어 있다.
* 대방진 굴항에는 고목나무들이 둘러싸고 있어 운치를 더하고 있다.
순천왜성 입구에서 우측으로 들어가면, 한적한 마을 작은 언덕 위에, 이순신 장군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충무사가 있다.
건물은 해방 후에 지어져 오래된 것이 아니지만, 사당의 내력은 충무공과 관련하여 비교적 오래된 것이라 알아둘 만 하다.
* 주차장에서 올려다 본 충무사 외삼문.
이순신 장군의 사당으로 순천시 해룡면 신성리(순천왜성 인근)에 있다.
* 충무사의 내력을 적은 안내판.
정유재란시 순천왜성 전투에서 많은 왜군이 죽었는데, 원귀가 되어 마을에 자주 출몰하므로, 이를 물리치고자 이순신 장군의 위패와 영정을 모신 사당을 지었다고 함.
일제시대 일본에 의해 소각된 것을 1947년에 새로 건립하였으며, 이순신과 송희립, 정운 장군의 위패와 영정을 함께 모심.
* 전서체로 씌어진 충무사 현판
* 충무사 경내에 있는 고목나무가 세월을 증명하고 있다.
* 외삼문과 내삼문 사이에 있으며, 사당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쓰는 건물인 듯.
* 사당 앞의 내삼문인 동광문.
* 위패를 모신 사당. 맞배지붕의 단순함으로 단정함과 엄숙함이 표현된 듯.
* 세 장군의 영정을 모신 영당은 팔작지붕으로 단아한 모습.
* 재실은 본전과 같이 맞배지붕으로 소박하게 표현.
순천왜성은 왜교성, 예교성이라고도 불리는데, 정유재란시 왜장 고니시(소서행장)이 이끄는 1만 4천여명의 일본군과 조명연합군(유정과 권율이 이끄는 서로군 3만 6천명, 이순신과 진린이 이끄는 1만 5천명 수로군까지 합세) 사이에 대규모 전투가 있었던 곳이다.
장도는 예교성 바로 앞에 있는 섬으로, 이순신의 장도해전은 명의 수군과 연합작전으로 펼쳐졌으며, 예교성 전투의 일환으로 또는 예교성 전투와 한 묶음으로 다뤄진다.
* 순천왜성 안내판
* 정유재란 당시 예교성의 모습을 그린 그림
* 위 그림을 확대한 사진. 인공으로 판 해자의 모습도 보인다.
* 예교성의 해자에 대한 설명
* 해자를 지나 본성으로 진입하기 위한 첫 관문.
* 해자의 흔적
* 본성의 두번째 관문.
* 왜성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갈지(之)자 처럼 지그재그로 이동해야 되기 때문에 공격부대에 불리하다.
* 본성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관문
* 본성에서 신성리쪽을 본 장면. 저쪽에 조명연합군이 진을 치고 있었을 것이다.
* 왜성의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천수탑이 있던 장소.
* 예교성에서 바라본 장도. 지금은 주위가 매립되어 산업단지로 되어 있어 자동차로 둘러볼 수 있으며, 공원처럼 조성되어 있다.
장도해전에서 이순신은 왜선 30여척을 격침하고, 11척을 나포하는 성과를 거두었으나, 명나라 유정의 군대가 철수하는 바람에 약 2개월 간에 걸친 왜교성의 공방전이 끝나게 되었다.
왜교성(예교성)의 전투는 끝났으나 소서행장이 지휘하는 왜군은 이순신의 수군에 의해 차단되어, 철수하지 못한 채 고립되었고, 소서행장은 경상도쪽 왜군들에게 자신들의 철수를 도와달라고 요청하게 되었으며, 이를 위해 사천, 거제, 부산포 등의 왜군들이 소서행장을 돕기 위해 오다가 이순신 함대와 노량해전을 치루게 되었다.
노량해전에서 이순신은 진린이 지휘하는 명나라 수군과 연합하여 왜 수군을 격파하였는데, 왜선 200여척을 격침시키고, 100여척을 나포하였으며, 150여척을 반파시키는 대승을 거두었다.
이순신 함대가 노량해전을 치루는 와중에 소서행장의 왜군은 남해도 남쪽으로 탈출하는데 성공하였으며, 이순신장군도 노량해전의 와중에 관음포에서 왜군의 총탄에 맞아 전사하였고, 임진왜란(정유재란 포함)은 끝나게 되었다.
* 가장 먼저 만들어진 이순신 장군의 사당 충민사 안내판. 1601년에 최초로 건립되었다고 한다.
* 아래 쪽에서 올려다 본 충민사(사적 제381호). 보수공사 중이어서 안에 들어갈 수 없었음.
* 담장 너머로 찍은 충민사 현판
3일차에는 여수 진남관 앞에서 아들, 며느리, 손녀들과 만나 식당(진복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한 후, 진남관 밑 유물전시관에서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진남관은 보수중이라 볼 수 없었음), 고소대에 걸어가 수군대첩비, 타루비, 동령소갈비 등을 본 후, 중앙광장에서 거북선(실물 크기로 만들어짐) 안에 들어가 구경하고, 거북선을 만들었던 장소인 선소를 답사한 후, 묘도와 이순신대교를 건너 각자 집으로 돌아옴.
* 보물 제571호인 '여수통제이공수군대첩비'. 예전에는 '좌수영대첩비'로 불리웠다.
일제시대인 1942년에 일본인인 여수경찰서장이 민족정기 말살정책의 일환으로 비각을 헐고 비를 감추었는데, 해방 후인 1946년에 경복궁 뜰에서 발견하여 다시 현 위치로 옮겨왔다고 한다.
* 보물 제1288호인 여수 타루비.
이순신이 타계한 뒤 1603년(선조 36)에 좌수영의 군인들이 이순신의 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세운 비. ‘타루(墮淚)’란 눈물을 흘린다는 뜻으로, 중국의 양양 사람들이 양호(羊祜)를 생각하면서 비석을 바라보면, 반드시 눈물을 흘리게 된다는 고사성어에서 인용하였다.
* 동령소갈비.
'여수 통제이공 수군대첩비'를 세우게 된 내력을 적은 비. ‘여수 통제이공 수군대첩비’의 건립 경위와 여기에 참여한 인물들, 그리고 건립하기까지의 어려움 등을 상세히 기록함으로써, 후세에 충무공 이순신을 숭모하는 정신을 전하기 위하여 건립.
* 거북선의 모습을 그린 안내판. 임진왜란 당시 활약한 거북선은 단 3척이며, 전라좌수영 선소(현 여수시 중앙동), 방답진 선소(현 여수시 돌산읍), 순천부 선소(현 여수시 시전동)에서 각 1척씩 건조되었다고 한다.
* 거북선을 만든 곳 중 하나인 여수 선소 유적(옛 순천부 선소) 안내판. 현재 여수시 시전동에 있으며, 사적 제392호이다.
* 여수 선소('굴강', '굴항'이라고도 함)의 모습.
* 굴강(선소)의 출입부.
* 여수에서 오후 답사를 함께한 아들, 며느리, 손녀들과 함께 거북선을 만들었다는 선소에서 기념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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