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5천만명이 넘으면서 우리보다 앞서 1인당 소득 3만달러를 넘은 곳은 여섯 나라뿐이다. 나라마다 물가상승률이 다르기 때문에 명목소득이 아닌 실질소득을 기준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는데, 최근 연도를 기준으로 소득을 조정해보면, 미국은 1970년대 말에, 독일·일본·프랑스는 1990년대 초반에, 영국과 이탈리아는 1990년대 중반에 3만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난다.
우리가 지금까지 이룬 성과가 실로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와 동시에 우리보다 25년 내지 40년 앞서간 국가들이 그 후로 어떤 성장 경로를 걸어왔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경제규모가 커지면서 1인당 소득의 증가 속도가 둔화하는 것은 자연의 법칙과도 같지만, 나라마다 어떤 다른 특성을 보이는지 알아두면 우리의 미래를 예상하고 대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나라마다 경제규모와 인구증가율이 다르기 때문에 1인당 소득 증가율과 취업자 1인당 노동생산성 증가율을 기준으로 평가해볼 때 가장 좋은 성과를 보인 국가는 미국이다. 순위를 정확히 매기기 어렵지만, 대체로 독일과 영국이 공동 2위 정도의 성과를, 프랑스와 일본이 공동 4위 정도의 성과를 보였으며, 이탈리아가 최하위를 기록했다.
이 가운데 필자의 관심을 끄는 국가는 독일, 일본, 이탈리아다. 독일과 일본은 우리나라와 같이 제조업 비중이 높은 국가이고, 이탈리아는 서구에 속한 나라지만 우리처럼 가족주의와 연고주의가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차례대로 핵심적인 특징을 짚어보기로 하자.
독일의 경우 막연하게 짐작했던 것보다는 경제성장률이 높지 않았다. 동서독 통일 과정에서 후유증도 있었겠지만, 지난 30년간 1인당 연간 성장률은 1.25%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영국이나 프랑스와 같은 경쟁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좋은 성과를 내고 있지만, 노동생산성 증가율이 월등히 높지는 않다.
반면에 장기침체 국가로 알려진 일본의 성과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지난 30년 동안 1인당 소득증가율은 연간 0.9%로서 독일에는 못 미치지만, 취업자 1인당 노동생산성 증가율은 연간 1% 초반대를 유지하였는데, 이는 독일보다 약간 높은 수준이다.
일본의 경우 다른 국가와 달리 3만달러 소득 달성을 기점으로 성장률이 급락한 특징이 있는데, 거품 붕괴와 인구 감소, 고령화의 부작용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알 수 있다.
사실 30-50 클럽 가입 시점을 전후하여 3% 안팎의 노동생산성 증가율을 기록한 국가는 일본이 유일하다. 한국의 경우에는 이미 2010년대 들어 증가율이 연간 1.7%로 둔화했다. 제조업 비중이 높아서 생산성 증가세를 계속 유지할 수 있다는 견해도 있지만, 독일과 일본의 사례로 보아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이탈리아의 성과는 들여다보기가 민망할 정도로 나쁘다. 미국이 1인당 실질소득 3만달러를 달성한 후 연평균 성장률 1.7%를 유지한 반면, 이탈리아는 1990년대 중반에 3만달러에 도달한 후 20여년 동안 연평균 0.3% 성장하는 데 그쳤다.
취업자 1인당 노동생산성 증가율은 연간 0.04%에 불과한데, 사실상 생산성 증가가 멈춘 셈이다.
여기에 ‘이탈리아병’이라는 명칭이 붙여졌다.
미국 시카고 경영대 교수이자 이탈리아 출신의 저명한 경제학자인 루이지 징갈레스는 이탈리아병의 원인으로 두 가지를 지적했다. 하나는 정보통신기술을 경제활동 전반에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탈리아 특유의 가족주의와 연고주의이다.
징갈레스에 따르면, 정부기구가 비효율적이라거나 고용보호 관련 규제가 지나치게 강하다거나 하는 요인은 부차적이다. 민간기업에서조차 능력주의·성과주의보다 가족주의·연고주의가 우선하는 풍토가 이탈리아병의 주된 요인이다.
미국을 제외한 다섯 나라는 비슷한 시기인 1990년대 초중반에 30-50 클럽에 가입했다. 그 후로 20여년이 흘렀고, 별로 오랜 세월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 사이에도 국가별 성과에는 적잖은 차이가 발생했다.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면, 참으로 부족한 점이 많음에도 여기까지 왔다는 점이다. 의지와 함께 인내심이 요구되는 대전환기임이 틀림없다.
IMF 사이트에 가서 우리나라와 일본의 GDP 추이를 비교해보았어요. 녹색이 대한민국인데 꾸준하게 우상승하는 그래프 모양이고, 일본은 뭔가 들쭉날쭉 하네요. 가령 1995년은 일본이 급상승해서 대한민국과 큰 차이가 났었는데, 최근 몇년동안은 많이 좁혀져서 유지되고 있어요. 여차하면 대한민국이 역전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도 되네요.
이번에는 선진국평균과 비교해서 그래프를 보았는데, 대한민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선진국그룹의 흐름과 비슷하게 흘러왔네요. 전세계평균과 개발도상국의 평균은 아래에 위치하고 선진국과 거의 동일한 흐름으로 흘러가고 있어요. 생각보다는 우리나라의 경제흐름이 나쁘지 않은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세계 도처에서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는 오늘날, 한국 민주주의가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이다.
현대 민주주의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로 인정받는 스웨덴의 ‘민주주의 다양성 연구소’가 2019년 펴낸 연구보고서 <세계적 도전에 직면한 민주주의>에 따르면,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민주주의를 구가하는 나라이다.
특히 인구 5천만 이상,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이상의 이른바 ‘30-50 클럽’ 선진 7개국 중에서 한국은 가장 민주적인 국가로 평가됐다. 영국, 이탈리아, 독일이 그 뒤를 이었고, 프랑스, 미국, 일본은 상위 20%에 속하는 2등급 민주주의 국가로 분류됐다.
프랑스는 극우주의자 마린 르펜의 부상, 미국은 우익 포퓰리스트 트럼프의 등장, 일본은 군국주의자 아베의 장기집권이 부정적 평가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한국 민주주의가 이처럼 높은 평가를 받은 결정적인 요인은, 2016년 촛불혁명과 대통령 탄핵이다.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의 국정농단에 대해 입법부인 국회가 탄핵하고, 사법부인 헌법재판소가 ‘인용’한 일련의 민주적 절차는, 한국 민주주의를 ‘삼권분립의 살아있는 교본’으로 세계에 각인시킨 것이다.
그뿐인가.
한국 민주주의는 아시아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최근 홍콩 시위에서도 보듯, 한국 민주주의는 이제 하나의 ‘전범(典範)’으로서 아시아 민주화 운동에 영감을 불어넣고 있다.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를 공부하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시위를 벌이는 아시아 시민들을 볼 때마다 큰 자긍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유럽에서 바라보는 시각도 그리 다르지 않다.
2016년 겨울 촛불혁명이 절정에 이른 무렵, 독일의 권위 있는 시사주간지 <디 차이트>에 “이제 미국과 유럽은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배워야 한다”는 놀라운 제목의 칼럼이 실린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러나 세계가 ‘민주주의의 모범’이라고 찬탄해 마지않는 대한민국이, 정작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질서의 재편 과정에서는 국제적 위상에 걸맞은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미국에 지나치게 의존해왔기 때문이다.
한국이 자주적 주권국가로서 동북아에서 합당한 역할을 하려면, 무엇보다도 미국과의 관계에서 대전환이 필요하다. 향후 한-미 관계는 일방적 종속관계에서 쌍방적 대등관계로 바뀌어야 한다.
“브루클린에서 월세 114달러 13센트를 받는 것보다 한국에서 방위비 10억달러를 받는 것이 더 쉬웠다”는 트럼프의 막말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다. 그것은 한-미 관계의 실상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단면이다. 가장 아픈 대목은 ‘13센트’다. 거기 서려 있는 조롱과 비하와 경멸의 정서가 정작 한국을 향한 미국의 진심인가.
미국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서도 독자노선을 걸어온 독일은 현시점에서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슈뢰더 총리는 미국의 신자유주의적 공세에 맞서 ‘독일의 길’을 천명했고, 메르켈 총리는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를 비판하며 ‘유럽의 길’을 선언했다.
이제 우리도 분명하게 ‘한국의 길’을 천명할 때가 되었다.
한국의 길은 미국의 길과 다르다. 그것은 한반도 평화, 동아시아 평화, 세계 평화로 이어지는 길이며, 인권과 정의, 연대와 인류애로 나아가는 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8·15 경축사에서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주창했다. 이제 그 나라는 개성공단과 금강산에서 실현되어야 한다. 미국과 협의하되 우리가 결정해야 하며, 필요한 경우 갈등과 마찰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세계의 문제아’로 공인된 트럼프의 미국과 아무런 갈등도, 마찰도 없다는 것이야말로 창피스러운 일이 아닌가.
문재인 정부는 미국의 반대를 뚫고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의 종료를 선언함으로써, 글로벌 스타 대한민국의 품격을 보여주었다. ‘미국도 흔들 수 없는 나라’임을 증명해 보였다. 그러자 동북아 전체가 한국을 중심으로 꿈틀대기 시작한다.
한국 정부는 대한민국의 국제적 권위와 민주시민의 높은 정치의식을 믿고 미국을 상대해야 한다. 반대할 것은 반대하고 요구할 것은 요구하면서, 당당하게 우리의 입장을 관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