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만 년간 이런 온도 상승은 없었다... 문명 흔들릴 것"
[인터뷰] 조천호 대기과학자, 전 국립기상과학원장
▲ 조천호 대기과학자
올해 장마는 역대 최장기간이었다. 무려 54일. 이어진 찜통더위에 '장마포비아'가 수그러들었지만 기상이변이 우리 일상이 됐다는 사실을, 자연 앞에 인간은 한없이 초라하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대기과학자 조천호씨는 지난 8월 14일 인터뷰에서 "현재 장마를 포함한 위기는 회복 가능한 위기"라며 "그러나 기후위기에는 회복이 없다"라고 말한다. 기상이변은 기후위기가 우리 앞에 다가왔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증표에 불과하다는 말. 이상기후와 기후위기도 헷갈리는 '문과생'이지만 그에게 물었다. 기후위기란 무엇인가.
"탄성력 잃은 지구는 위험해진다"
- 역대 최장기간 장마와 폭우였다. 기상청은 "기후변화 결과로 발생한 시베리아 이상 고온 현상이 한반도 장마 전선에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기상이변과 기후위기의 상관관계를 설명해달라.
"평소 1년에 홈런 50개를 때리는 야구선수가 스테로이드 복용으로 100개를 때리게 됐다고 가정해보자. 그가 때린 홈런 하나하나가 원래 실력인지 스테로이드 영향인지 제대로 알기는 어렵다. 한 해 성적을 집계했을 때야 판단이 가능하다. 기상이변 하나하나가 그 자체로 기후변화 위기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지금과 같은 장마와 홍수 피해는 과거에도 있었다. 기후변화는 사건 하나로 인지되는 게 아니다. 집계된 자료를 통해 파악할 수 있다."
- 최근 세계 곳곳에 일어난 기상이변 중 눈에 띄는 현상이 있나?
"기후에는 지속성이 있다. 반면 날씨는 변화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지속의 속성을 가진 기후가 바뀌고 있고, 변화해야 할 날씨는 지속되는 상황이다. 극단적 날씨가 '지속'되면 큰 피해가 발생한다. 여름날 맑은 날씨가 일주일 계속되면 폭염이 되고 한두 달 계속되면 가뭄이다. 올해 초 호주에 6~7개월 이어진 가뭄과 산불 역시 똑같은 날씨가 계속됐기 때문에 벌어졌다. 이번 국내 장마도 마찬가지다."
- 그 원인을 과학적으로 설명해준다면?
"지난 100년 동안 인간이 화석연료를 배출하고 온실가스를 늘려 지구 온도가 1도 상승했다. 1도만 상승해도 바닷물 증발량이 많아진다. 공기 중 수증기가 7% 정도 늘어났다. 예전보다 비가 더 많이 내릴 가능성이 커졌다. 홍수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반대로 그 주변부, 공기가 내려오는 지역에는 고기압으로 훨씬 더 건조해진다. 가뭄과 폭염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본래 적도 지방은 햇빛을 많이 받고 극지방은 햇빛 에너지를 적게 받기 마련인데 지구는 이 격차를 좁히고 균형을 맞춰주는 작업을 한다. 천둥과 번개가 치고, 파도가 이는 이유다. 그러나 지구온난화는 극지방에서 2~3배 빨리 일어난다. 극지방과 적도의 온도 차이가 적어지기 때문에 순환과 흐름이 빠르지 않아 균형이 깨지는 것이다."
- 2018년 10월, IPCC(기후변화에 관한 협의체) 제48차 회의에서 한국을 포함한 195개국은 2030년까지 지구 온도 상승 폭을 2010년 대비 45% 감축, 2050년까지 1.5도 이내로 제한하기로 했다. '1.5도'의 지질학적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 몸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우리 몸이 정상 체온에서 1도 상승하면, 몸이 이상하다는 걸 본인이 깨닫게 된다. 감지할 수 있는 위험이다. 1.5~2도 상승하면 약을 사 먹거나 누워있어야 한다. 지구 온도 1도 상승으로 우리는 극단의 날씨를 겪고 있는데 여기서 0.5~1도 상승하면 지구 어느 곳에서나 기후 때문에 불편한, 그리고 위험한 상황을 겪게 될 것이다. 즉, 탄성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스프링을 확 당기면 제자리로 못 돌아오는 상태와 같다. 지금 지구가 그 위기에 직면해 있다."
"협약 필요하지만... 변수는 미국 대선"
- 현재 수준으로 온실가스가 배출된다면 향후 지구는 어떻게 되나?
"지구 역사에서 2도 이상의 온도 상승은 전무했다. 지난 500만 년 동안 한 번도 없었던 사건이다. 인류가 등장하기 훨씬 이전 상황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우리가 건설한 문명이 흔들릴 것이다. 현재 배출량 수준이 유지된다면 금세기 말 3도 이상 상승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우리 신체 체온 상승이 3도 이상이면 그건 곧 죽음을 말한다."
- 국제사회 협약에 구속력이 있을 수 있나?
"지금까지 교토의정서, 파리기후협약은 자발적 참여였다. 강제 조항이 아니었다. 2018년 인천 송도에 기후과학자들이 모였던 IPCC 총회에서 '1.5도 상승'이 위험하다는 것에 과학적 합의가 있었다. IPCC는 과학자들 모임이고, 이를 정책적으로 구현하는 정책 당국자들 협의체인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은 코로나로 인해 올해가 아닌 내년 열린다. 이 협약이 성공한다면 강제 조항이 될 전망이다. 다만 변수가 있다."
- 무엇이 변수라고 보는가?
"미국 대선이다. 변수 그 이상의 사건이다. 트럼프 정권은 기후변화협약의 최대 걸림돌이다. 2015년 파리기후협약을 맺을 수 있던 건 그 당시 오바마 정권이 나섰기 때문에 가능했다. 화석연료를 더 쓰느냐 그렇지 않느냐 문제는 각국 이해가 출동하는 이슈다. '슈퍼 파워'가 적극적으로 끌어줘야 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가 재선하면 기후위기는 파국에 돌입한다고 봐야 한다. 사실상 내년 협약에 앞서 미국 대선에서 미래가 결정될 것이다. 미국 민주당은 트럼프와 달리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쪽이다."
▲ 2018년 10월, 한국을 포함한 195개국은 IPCC 제48차 회의에서, 2030년까지 지구 온도 상승 폭을 2010년 대비 45% 감축, 2050년까지 1.5도 이내로 제한하기로 했다
- 대한민국은 IPCC 의장국(의장 이희성)인 동시에 '4대 기후악당 국가'로 꼽히기도 했다.
"MB정부는 '녹색성장'을 기치로 내세웠지만 소리만 요란했을 뿐 온실가스 배출을 엄청 늘렸다. 대한민국 경제 규모는 세계 10위권 수준인데, 그 덩치에 맞지 않게 '나만 잘살겠다'고 배출을 늘린 것이다. 참 창피한 일이다. 온실가스는 개인 단위로 보면 전 세계 상위 10%가 50%를 배출한다. 결국 잘 사는 사람들이 책임져야 하는 문제다. 우리도 온실가스 배출량을 스스로 줄이고 대대적 산업 전환을 해야 하는 데 아무 준비를 하지 않았다. 내년 협약이 성공적으로 이뤄진다면 안타깝게도 우리는 가장 큰 고통을 당할 수 있다."
- 실제 기후 문제가 우리 정치에서 의제화가 제대로 된 적은 없었다.
"현 정부도 '그린뉴딜'을 말하지만 국가 의제 1순위는 아니다. 그린뉴딜이라는 것도 서양이 만든 프레임 안에서의 생존 방안에 불과하다. 이제 유럽연합 차원에서 화석연료로 생산한 제품에는 탄소세를 부과하겠다는 시대가 됐다. 우리 제품 경쟁력은 가격에서 나온다. 탄소세를 맞게 되면 우리 경쟁력은 추락하게 된다. 기후위기가 본격화했을 때 우리 기업과 정부, 국민 피해는 심각할 것이다."
- 현 정부는 태양광 사업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여론이 긍정적이라고 보긴 어렵다.
"에너지 전환은 생존 문제다. 보수 언론은 원자력, 원자력, 원자력만 말한다. 경제성이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지난 10년 태양열 패널 가격은 85% 떨어졌다. 지난 10년 동안 가격이 이렇게 떨어진 에너지는 없다. 원자력의 경우 막대한 설비비용이 투입된다. 재생 에너지 가격은 10년 이내 50% 더 감소할 것이다. 가격이 떨어진다는 것은 기술력과 투자가 집중되고 있다는 뜻이다. 전 세계가 이 분야로 산업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보수 언론은 원자력이 200조 원 이익이 남는 시장이라고 과장하는데, 그러면 미국, 캐나다, 일본, 프랑스 등은 왜 원자력을 포기하나. (보수 언론 주장은) 나라 말아먹겠다는 소리다."
- 정부는 현재 신규 화력 발전소 7기를 짓고 있는데?
"석탄 발전에 투자하는 건 결국 좌초자산(stranded asset : 시장 환경의 변화로 자산 가치가 떨어져 상각되거나 부채로 전환되는 자산)이 될 것이다. 대한민국은 좌초자산을 가장 많이 가진 나라다. 우리나라 보수 세력은 과거 성공적 방식만 고수하면서 대응을 전혀 못하고 있다."
- 재생에너지 등으로 에너지 전환에 대한 에너지 관료들 인식은 어떠한가?
"나도 공무원이었고 그 세계 주류 안에 나름 들어가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대한민국 관료 집단이 우리 공동체 가치를 위한 전진적 집단인지 의문이 있다. 기존 시스템을 유지하려는 조직이다. 때때로 관료를 포함한 대한민국 주류 세력들이 너무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자기 것만 생각한다. 공동체를 위해 희생해도 될까 말까인데… 결국 시민뿐이다. 시민이 깨어있어야 한다. 시민들이 산업을 전환하라고 외쳐야 한다."
"지구는 우리가 없어도 생명 만들 수 있어"
- 아직은 시민들도 (기후위기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진 않는 분위기다.
"그런 생각이 든다. 기후위기를 우리가 경험했던 흔한 위기 하나로 보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미세먼지? 코로나19? 그것과도 질적으로 다른 위기다. 지금까지 위기는 장기적으로 '회복 가능한' 성질의 것이다. 인류에게 위험이 없던 적이 있던가? 그러나 기후위기는 회복이란 게 없다. 일례로 마트에 갔더니 기후위기로 먹을 게 없는 상황을 생각해보라. 지금이야 재난지원금 등 공적 자금을 풀며 위기 극복 시도를 계속하고 있지만 기후위기가 닥치면 마트에서 먹을 게 영영 사라진다. 계산 불가능한, 문명이 붕괴할 위험인 거다. 유럽이 심심하고 한가해서, 혹은 있어 보이려고 기후위기를 의제 1순위에 올려놓겠나?"
- 온실가스는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게 아닌가?
"전혀. 미세먼지는 바람이 불면 사라지지만, 온실가스는 수백 년 동안 계속 축적돼 왔다. 현재 장마 등 저기압은 정체돼 있지만 곧 소멸되거나 이동한다. 만약 지구 온도가 2도 상승했고, 온실가스 배출을 그때부터 줄인다? 소용없다. 개선되지 않는다. 시베리아 지역이 38도까지 올라가는 현상에서 알 수 있듯 지구에 들어왔던 햇빛이 (흰 눈에 의해) 반사되지 않고 그대로 흡수되며 지구 스스로 온도를 높인다. 지난 5억 4천만 년 동안 대멸종 사건이 5차례 있었다. 지구는 그럴 때마다 스스로 지구의 생명을 없앴다."
- 지구가 스스로 문명을 무너뜨린다는 것인가?
"대멸종 사건의 공통점은 먹이사슬 맨 꼭대기에 올라간 종은 단 한 마리도 살아남지 못했다는 것이다. 생태계 자체가 무너진 상태에선 더는 진화를 통해 종이 유지될 수 없다. 그 멋들어진 공룡이 지금은 지구에 단 한 마리도 남아있지 않다. 인간의 무한한 욕망이 지구의 유한함을 넘어서는 순간 지구는 인류를 없애버릴 것이다. 지구는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니다. (웃음) 우리가 없어도 생명을 만들 수 있다. 우리는 지구에 의존적이지만, 지구는 우리에게 의존해야 할 이유가 없다."
- 기후위기 대중 강연을 하면 시민들이 뭘 가장 궁금해하나?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내가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가'였다. 사실 많이 놀랐다. 공동체를 위해 무언가 해야겠다는 의지를 갖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다."
- 그런 질문을 받으면 뭐라고 답하나?
"같이 세상을 바꾸자고 이야기한다. 개인이 일회용품을 쓰지 않는 행위는 물론 가치 있지만 기후 문제는 개인이 변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세상을 바꿔야 하는 문제다. 우리가 더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말하는 국회의원들을 뽑아야 한다. 기후위기를 고민하는 선출직 공무원을 뽑아야 한다. 지난 국회에 비하면 이번 21대 국회는 기후 문제에 비교적 관심이 있다. 미래통합당(현 국민의 힘)은 이 문제에 관심이 없는 듯하고."
- 여전히 경제성장과 환경 사이의 선택지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정부 역시 경제 성장률을 정책의 우선순위로 두고 있는데 경제와 환경이 양립 가능한 것인가?
"탄성력 안에 있는 사회 문제라면 성장과 환경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을 여지가 있지만 우리는 '탄성력을 잃어버리는 세계'를 가정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살아왔던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대량 생산→대량 소비→대량 폐기' 패러다임은 즉각 갖다버려야 한다. 77억 명이 충분히 먹고 쓸 수 있는 생산이 이뤄지고 있는데, 여전히 지구상 어딘가에는 결핍이 존재한다. 성장을 못해서가 아니다. 우리 공동체가 서로 돌보지 않고 나누지 않아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성장과 경제성장률을 이야기하는 건 아직도 배가 부르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시간이 없다. 완전히 다른 세상을 만들 생각을 해야 한다."
- 기후 문제는 당장 변화가 어려운 이슈다. 지치지 않나? 본인의 원동력이 있다면?
"독일의 세계적 사회학자 울리히 벡의 표현 중 '파국적 희망'이라는 말이 있다. 파국적 상황에서 우울함을 긍정 에너지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파국적 상황에 대한 인식이 없었다면, 우리는 이 세계의 문제점을 인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파국적 상황이기 때문에 '우리는 왜 대량생산·소비·폐기 시스템을 유지해야 하는가', '이 시스템이 생존에 필수불가결한가' 등 철학적 질문을 마구 던질 수 있다. 변하지 않는 세상에 좌절을 느낄 때도 있지만, 이런 질문과 고민이 변혁의 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위기가 우리 본질을 근본적으로 성찰하게 한다. 파국 속에서 희망을 찾고 있다. 최악의 상황에서 최선의 길을 찾는 여정, 우리가 경쾌하고 힘차게 나아가야 할 이유 아닐까? 파국적 희망을 꿈꾸자."
김도연(achampspd)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도연님은 <미디어오늘> 기자입니다. 사진은 박영록 자원활동가가 촬영했습니다. 이 글은 <월간참여사회> 2020년 9월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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