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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의결권, 쿠팡 핑계 말고 폐기해야

道雨 2021. 2. 22. 18:54

복수의결권, 쿠팡 핑계 말고 폐기해야



최근 쿠팡의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상장 추진 이유가 복수의결권 때문인 것처럼 일부 언론을 통해 호도되고 있다. 복수의결권 도입을 추진해온 여당과 정부는 이때다 싶은지, 3월부터 국회에 제출된 법안 논의에 착수한다고 한다. 쿠팡 상장 추진을 두고 말이 무성하지만, 과연 복수의결권 때문인지는 면밀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쿠팡의 증권신고서를 보면, 김범석 의장이 보유한 클래스B의 주식에 클래스A에 비해 주당 29배의 차등의결권이 부여된 것은 사실이다. 이 때문에 김 의장이 복수의결권이 허용되지 않는 국내 증시를 포기하고, 뉴욕 증시에 상장 신청을 한 것 아니냐는 주장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상장 신청을 한 Coupang LLC는 한국 쿠팡 지분을 100% 보유한 미국 델라웨어주에 설립된 미국 법인이다. 이 Coupang LLC가 Coupang Inc로 전환해 상장을 한다는 것이지, 자회사인 한국 쿠팡이 상장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간 쿠팡은 적자로 인해 소프트뱅크나 비전펀드로부터 대규모 증자자금을 수혈받아 왔고, 주요 주주들도 미국 기관투자가들이다. 그럼에도 아직도 적자 상태이다. 따라서 Coupang LLC의 본사로 미국을 선택하고 상장을 하는 이유는, 투자 유치와 함께 외국인과 기관투자가들과의 분쟁이 발생할 경우 자신들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복수의결권 때문이 아니라 애초부터 미국 상장을 예정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다음으로 네이버나 다음카카오와 같은 성공한 국내 기업들은 한국이 복수의결권을 허용하지 않아도 국내 증시에 상장했고, 지금까지 아무런 문제없이 잘 운영하고 있다. 경영여건을 고려했을 때, 국내 증시가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홍콩 등의 세계 일부 증시들도 차등의결권을 허용했지만, 이들 나라 주요 유니콘 기업들은 미국 상장을 택했다. 자본조달 용이성 등에서 미국이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이 복수의결권을 허용하면 미국 증시에 상장할 기업들이 한국에 상장할 것이라는 주장은 희망사항일 뿐이다.

 

 

미국은 제도적으로 100% 자회사 지분을 보유토록 하고 있어, 복수의결권의 오남용 문제가 제한적이다. 허점이 많은 한국 출자구조와는 다르다. 따라서 쿠팡의 사례를 가지고 한국 비상장 벤처기업에 복수의결권을 허용한다면, 투자 활성화보다는 재벌의 편법적 세습과 경제력 집중에 악용되는 부작용이 훨씬 크리라 본다. 복수의결권이 있는 비상장 벤처기업들에 어떤 겁 없는 투자자가 섣불리 투자를 할 것인지는 생각하나 마나이다.

 

자본의 속성은 그리 순진하지 않다. 쿠팡 사례를 가지고 국내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은 국민 호도행위일 뿐이고, 벤처기업법 개정안은 폐기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럼에도 정부와 여당이 이를 추진하겠다면, 공청회나 토론회를 통해 충분한 논의를 거쳐야 한다.

 

 

권오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책국장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102220300105&code=990100#csidx30b0a69e253d5b38e39c2d3c8e02d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