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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세 없는 기본소득’, 비전 혹은 환상

道雨 2021. 2. 22. 09:38

증세 없는 기본소득’, 비전 혹은 환상

 

기본소득은 모두에게 조건 없이 돈을 지급하기 때문에 많은 돈이 든다. 예컨대 연 100만원의 기본소득을 위해서는 사회복지예산의 약 4분의 3을 오로지 기본소득에만 써야 한다. 추가 예산이 불가피하다. 따라서 기본소득의 실현은 재원조달의 성공에 달려 있다.

이런 면에서 최근 이재명 경기지사가 밝힌 기본소득의 재원조달 방법은 매우 중요한 정책으로, 이를 꼼꼼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는 ‘중단기적으로 연 100만원 기본소득에 필요한 50조 예산은, 증세 없이 일반 예산 절감과 조세감면 축소를 통해 가능하고, 장기적으로 월 50만원의 기본소득은 국민의 동의를 전제로 기본소득 특별세와 같은 증세를 통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먼저 증세 없이 기본소득이 가능하다는 주장을 보자.

세출 조정을 통해 25조원을 마련할 수 있다는 주장은 어느 항목을 손댈 것인가를 밝히지 않는 한, ‘정치적 수사로 치장된 무계획’에 불과하다. 정치인은 할 수 있다고? 그렇다면 왜 25조원보다 더 적은 규모의 재난지원금을 위해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세출 조정이 아닌 국채발행에 의존했을까?

50조의 조세감면을 절반 이상 축소하겠다는 주장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이 가능하다면 왜 지금까지 안 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기존 수혜자들의 반발 때문이다. 나라살림연구소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8년 사이 조세특례제한법과 개별법상의 조세감면은 연평균 1.9%와 7.4% 증가했다. 감소한 경우는 2013년 한해뿐이었는데 약 5000억원에 불과했다.

 

‘증세 없는 기본소득’의 또 다른 문제는 그것이 실제로 진행될 경우 발생할 불공정성에 있다. 기본소득 재원이 예산절감을 통해 마련될 경우, 그 1순위는 저소득층을 위한 현금 및 현물 급여가 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이 경우 기본소득 금액이 현재의 보조보다 낮아, 저소득층이 더 가난해지는 ‘기본소득의 역설’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필자의 연구에 따르면, 이 경우 빈곤층의 가처분소득이 약 6~16% 감소한다.

혹자는 기본소득을 위해 조정되는 예산에는 기초연금(15조원), 생계 및 의료 급여(13조원)가 포함되지 않을 것이라 하지만, 이를 그대로 유지한 채 25조원 수준의 조정이 가능해 보이지는 않는다.

 

조세감면 축소도 마찬가지이다. 고소득층과 대기업 위주일 것이라는 통념과 달리, 조세지출의 수혜자는 중·저소득자인 경우가 69%, 중소기업이 72%이다.

결론적으로 증세 없이 당장의 기본소득이 가능하다는 주장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해 보이지도 않는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에게 ‘낮은 수준의 기본소득’조차 증세를 통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음을 일깨워준다.

 

그렇다면 목적세를 통해 기본소득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주장은 어떠한가?

증세의 성패는 현재의 기본소득 논의가 말하고 있지 않는 바로 그것, 즉 누가 얼마나 더 내야 하는가에 달려 있다. 월 50만원의 기본소득을 위해서는, 법인을 포함한 모든 경제주체가 모든 유형의 세금을 지금보다 80% 더 내야 가능하다. 이는 부자뿐 아니라 중산층, 심지어 빈곤층 역시 상당한 세 부담을 감내해야 함을 뜻한다. 이것이 이재명 지사가 국민적 동의를 언급한 이유일 것이다.

 

문제는 현재의 정치경제적 환경이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어디에서도 복지를 위한 대규모 증세를 기획한 사례를 찾기 힘들다. 만성화된 저성장 국면에 대규모 증세는 경제적으로 바람직한 선택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정치적 측면이다. 증세의 정치적 실현 가능성은 중산층이 이를 얼마나 지지하는가에 의존한다. 따라서 ‘90% 이상의 가구가 내는 세금보다 받는 기본소득이 많다’고 해서 항상 정치적으로 실현 가능한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복지에 있어 중산층은 자신이 저소득층보다 상대적으로 덜 혜택을 받는다고 인식하기 때문에, 복지 목적의 증세에 반대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대규모 복지재원을 위해서는 중산층의 소득에 대한 상당한 수준의 과세가 불가피한데, 중산층은 여기에 매우 민감하다.

 

결론적으로 독일이나 일본의 부가세 증세처럼, 복지를 위한 증세라 하더라도 계층마다 이해관계가 엇갈려 추진이 어려워질 수 있다. 따라서 중산층에게 유리하단 점을 강조하는 것만으로, 기본소득을 위한 대규모 증세가 가능해질 거라 주장하는 것은 안일한 발상으로 보인다. 이 지사가 더 현실적이며 설득력 있는 재원확보 방안을 내놓아야 하는 이유이다.

 

최한수 ㅣ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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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83840.html#csidx081e01f8feceba89195c5fbd21a539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