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바이든에게 중국 균열의 전략무기 되나?
권위주의 정권 비판과 인권 강조. 조 바이든 행정부 취임 이후 미국 대외정책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나서 아주 원칙적이고 강하게 말한다. 정책으로도 드러난다.
그는 지난 4일 ‘세계에서 미국의 자리’라는 대외정책 연설에서 “중국의 커지는 야망과 우리의 민주주의를 해치고 와해하려는 러시아의 결의를 포함한 진전되는 권위주의의 새로운 순간에 대처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자유 수호, 기회 옹호, 보편적 권리 지지, 법치 존중 및 존엄으로 모든 사람을 대하는 미국의 가장 소중한 가치에 뿌리를 둔 외교를 시작해야만 한다”고도 강조했다. “버마 군부가 자신들이 장악한 권력을 포기해야만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이 관여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사건 정보보고서를 공개하는 한편, 빈 살만을 상대로 인정하지 않고 압박을 가하고 있다. 사우디는 “버림받은 자이고,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는 후보 시절 그의 강경한 견해가 바뀌지 않았다고 젠 사키 대변인은 전했다. 미국이 자신에게 고분고분한 동맹국에는 자유와 인권의 잣대를 다르게 적용한다는 비판도 머쓱하게 한다.
이는 1970년대 후반 지미 카터 행정부의 ‘인권외교’ 혹은 ‘도덕외교’를 상기시킨다. 두 행정부를 둘러싼 공통점이 있다.
첫째, 국내 정치 상황에 대한 반작용이다. 카터는 리처드 닉슨의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정치에 대한 불신과 혐오 속에서 당선됐다. 바이든 역시 인종갈등 등 트럼프의 몰가치적인 정치 행태로 극심한 미국의 분열에 직면했다.
둘째, 미국의 지위를 둘러싼 지정학적 변화이다. 카터는 닉슨독트린에 의한 미국의 철수를 이어받았다. 베트남전을 종결짓고, 아시아 방위는 아시아인들의 손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닉슨독트린은, 세계적으로 과잉 전개된 미국 국력을 철수하고 정리하는 전략이었다.
바이든 역시 트럼프가 추진한 미국의 철수를 더 정교화해야 하는 상황이다. 미국은 냉전 붕괴 이후 자유주의 국제질서 패권을 추구하며, 중동에서 분쟁에 지나치게 개입하는 등, 국력을 과잉 전개한 후유증을 앓고 있다. 트럼프가 동맹국들에 방위비 분담을 강요하고 중동 철군을 추진한 배경이다.
셋째, 미국에 주적의 단일화와 중국이 갖는 전략적 의미의 변화이다. 카터는 닉슨이 추구한 미-중 화해를 통한 ‘반소 미-중 연대’를 완성했다. 카터에게 중국은 소련이란 주적에 대항하는 우군이 됐다. 그런 중국이 트럼프 이후에는 미국의 주적으로 변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규정한 ‘열강 경쟁’(GPC) 전략은 중국을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파괴하는 수정주의 세력으로 본다.
권위주의 비판과 인권 강조는 국내 정치 상황을 다독이고, 과잉 전개된 미국 국력의 철수 앞에서 동맹국들을 재배열하고, 명확해진 주적의 급소를 찌르려는 미국의 전략적 무기이다. 카터의 인권외교는 실패한 이상주의 정책으로 흔히 치부되나, 워싱턴의 외교안보 주류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 외교안보 주류들의 표준적인 견해를 대변하는 로버트 게이츠 전 국방장관은, 소련 붕괴의 씨앗은 카터 시절에 뿌려졌다고 평가한다. 그에 따르면, 유럽의 전후 국경선을 인정하는 대신에 기본적인 인권 조항을 수용한 헬싱키조약을 바탕으로 “카터 행정부의 선전과 비밀공작이 소련 붕괴를 가져온 체제 균열을 야기했다고 믿는다. (…) 당시에는 비웃음을 받고 논란이 많았지만, 보잘것없던 변화의 씨앗은 치명적인 열매를 맺어 제국의 파괴에 기여했다.”
카터는 중동에서 ‘이집트-이스라엘 평화협정’ 체결로 중동협상을 시작했고, 이란에서는 권위주의적인 샤 국왕 체제를 압박해 물러가게 했다. 동아시아에서는 박정희 정권을 압박해 몰락하는 데 영향을 줬고, 주한미군 철수나 북한과의 대화를 처음으로 추구했다. 무엇보다도 반소 미-중 연대를 완성했다. 바이든은 중동에서 이란과 화해를 추구하며 사우디를 압박하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미얀마 군부정권에 대한 압박 강도를 높일 태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국과의 체계적인 대결을 준비하고 있다.
바이든은 지난 2월7일 <시비에스>(CBS) 회견에서 미-중이 “분쟁할 필요는 없으나 극심한 경쟁이 있을 것”이라며 “나는 트럼프가 했던 방식으로는 하지 않을 것이고, 우리는 국제적인 통행 규칙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에게 인권은 카터처럼 장기적으로 미국의 주적을 균열 내는 전략적 무기가 될 수 있을까?
정의길 ㅣ 국제부 선임기자
Egil@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84927.html#csidx9517aaad692757a9d79ebf5b0ad10c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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