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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수·김봉진도 하는데 이재용은…

道雨 2021. 3. 3. 09:48

김범수·김봉진도 하는데 이재용은…

 

 

카카오 김범수, 배달의민족 김봉진 창업자가 열흘 간격으로 재산의 절반 이상을 기부하겠다는 파격적인 약속을 했다. 1년 반 전 삼성과의 만남이 떠올랐다. 2019년 8월 말 이재용 부회장의 뇌물공여 사건에 대한 대법원 선고가 임박했을 때다. 의견을 묻길래 “이 부회장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부회장은 1·2심 재판에서 변화를 약속했는데, 진정성이 부족해 보였다.

문제의 핵심은 경영권과 부의 승계다. 30년 가까이 이어져 온 불법·편법 승계 논란을 단번에 종식시킬 수 있는 결자해지가 필요했다. 삼성은 이 부회장도 고민 중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말뿐이었다. 이후 대법원의 유죄 판결과 파기환송심의 실형선고가 이어졌다. 만약 재산의 상당 부분을 사회를 위해 내놓는 결단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언론은 두 사람의 기부에 대해 “새 기부문화”, “부의 대물림 변화”라며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기존 재벌과 직접 연결짓는 것에는 매우 신중한 모습이다. ‘신발을 신은 채 가려운 곳을 긁는’ 격이다. 기존 재벌도 애써 거리를 둔다. “회장에게 물어보지 않았다”거나, “카카오·배민 같은 플랫폼기업과는 다르다”거나, “우린 이미 거액의 상속세를 냈다”는 등 방어적 태도 일색이다.

 

플랫폼기업과 제조업 중심의 재벌은 차이가 크다. 제조업은 자체 경쟁력이 핵심이다. 반면 플랫폼기업은 다수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서 연결고리 역할을 하며 가치를 창출하기 때문에, 관련 산업 생태계의 활성화가 중요하다. 사업 성패가 다른 사업자와 소비자를 플랫폼에 얼마나 참여시키냐에 달려있다 보니, 사회 변화와 흐름을 중시한다.

김범수는 평소 “재벌과는 다르다”고 말해왔다. 경영 세습, 황제경영 등 재벌의 관행에 비판적이다. “재벌도 변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에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기부 역시 그 결과물로 봐야 한다.

“삼성이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한 데는 우리 사회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안기부 엑스파일 사건, 변칙 상속 의혹 등으로 곤경에 처한 삼성이 2006년 2월 발표한 대국민사과 내용이다. 15년이 흘렀지만 삼성으로 상징되는 기존 재벌은 사회 변화와 국민의 바람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여전히 부족한 것 같다.

 

기존 재벌에게 기부는 특별한 의미를 더한다. 20조원에 달하는 이건희 회장의 유산 중에서 삼성생명 주식(4151만주·20.76%)의 가치는 2월말 기준 3조원이 넘는다. 그 대부분은 2008년 삼성특검 때 임직원 명의의 차명주식이 드러난 것으로, 상속세를 안냈다. 이재용 부회장의 10조원대 재산의 핵심은 삼성전자·물산(옛 에버랜드)·에스디에스 주식이다. 이 모두 20여년 전 헐값인수의 산물로, 일부는 배임 혐의로 기소까지 됐다.

 

다른 재벌의 처지도 비슷하다. 최태원 회장의 에스케이㈜ 주식 2029만주(5조3천억원), 정의선 회장의 현대글로비스 주식 873만주(1조7천억원)도 일감 몰아주기, 주식 헐값인수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원죄’를 풀지 않고는 재벌에 대한 국민의 부정적 인식이 확 바뀌기는 어렵다.

 

빌 게이츠 등 미국 부자들의 기부를 통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은 우리에게 큰 부러움의 대상이다. 미국 기부 문화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게 아니다. 20세기초 ‘철강왕’ 카네기와 ‘석유왕’ 록펠러는 막대한 재산을 사회를 위해 내놓아 ‘미국 기부문화의 선구자’로 불린다. 하지만 기업경영을 할 때는 ‘강도 귀족’으로 불릴 정도로 악명이 높았다. 돈을 벌기 위해 독점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심지어 노동자 탄압도 서슴지 않았다. 이들의 악행은 미국이 세계 최초로 독점규제를 도입한 배경이 됐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은퇴 뒤 ‘기부 천사’로 변신했다. 한국의 재벌 총수도 이런 전화위복의 기회를 만들지 못할 이유가 없다.

 

필자는 얼마 전부터 80년 역사의 한국 재벌체제가 대 전환점을 맞고 있다고 강조해 왔다. 난공불락 같았던 경영 세습과 황제경영에 잇달아 쩍쩍 균열이 가고 있다. 고 조양호 한진 회장의 대한항공 등기이사 선임 실패, 이재용 부회장의 4세 세습 포기, 서정진 셀트리온 명예회장의 자진 정년퇴임과 소유-경영 분리가 대표적이다. 김범수·김봉진의 기부도 그 신호 중 하나이다.

‘포스트 재벌’이 재벌의 종언으로 귀착될지, 아니면 내부 모순을 극복하고 업그레이드된 ‘신 재벌’의 등장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김범수, 김봉진은 기존 재벌과 다른 벤처기업인이다. 기존 재벌 중에서도 ‘신 재벌’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결단’이 나왔으면 좋겠다. 

 

 

곽정수 ㅣ 논설위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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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85072.html#csidx9d28ddacbd97a7a89b5b9cca313b6d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