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계급사회’의 예감
과거에 이런 시기는 없었던 것 같다. 경제는 나빠지는데 수도권 집값은 끝을 모르고 오르고, 빚을 더 내어 집을 사게 해달라는 요구가 빗발친다. 일자리는 사라진다는데 재테크 열풍은 최고조다. 취업절벽 앞에서 ‘잃어버린 1년’을 보냈다는 청년들은 만나면 주식과 가상화폐 투자 이야기를 나눈다. 벼락부자가 되지 못하면 벼락거지가 되고 말 것이라는 생각이 온 나라를 휘감고 있다.
다들 왜 이럴까? 우리는 지금 되돌이킬 수 없는 새로운 계급사회로 진입하고 있고, 모두가 이를 예감하고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지금 상층 계급에 진입하지 못하면, 후손까지도 영영 뒤처지고 말 것이라는 초조함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최근의 몇가지 사회적 논쟁을 되돌아보자. 새로운 계급사회를 상징하는 장면들이 곳곳에 들어 있다.
첫째, 인천국제공항공사에서의 정규직 전환 과정이다. 정부가 협력업체 소속이거나 파견직이던 노동자들이 본사에 낮은 처우로 입사해 고용불안을 줄여주려 했다. 그런데 기존 정규직 직원들이 ‘불공정하다’면서 강력하게 반발했다. 공공기관 입사를 준비하던 취업준비생들도 ‘새치기’라면서 불만을 터뜨렸다.
역설적으로 이 논쟁은 공공기관 취업이 얼마나 큰 특권인지를 전 국민에게 알려줬다. 실제로 정년이 보장되고 매년 호봉 승급이 보장되는 공공기관 정규직 일자리는, 매년 보장된 수익률을 올려주는 안전자산과 같다. 저성장 시대가 오니 더욱 빛나는 자산이다. 공공기관 일자리는 단순한 일자리를 넘어 새로운 신분이 됐다.
둘째, 대학입시 전형을 놓고 벌어진 논란이다. 자유로운 활동과 경험을 통한 학습을 권장하겠다며 도입했던 새로운 입시제도는 불공정 시비의 대상이 됐다. 학부모와 학생들은 정해진 과목만 열심히 공부해서 수능 점수 하나로만 대학에 가게 해달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지식 역시 새로운 계급의 경계선을 긋는 요소다. 디지털 전환으로 경계선은 더욱 진해졌다.
이른바 명문 대학 졸업장은 일종의 지식 자격증이 됐다. 지식은 입증할 수 없지만 졸업장은 입증할 수 있다. 지식은 누구나 얻을 수 있어 희소성이 없지만, 졸업장 같은 자격증은 희소성을 국가가 관리해주기까지 한다.
셋째, 부동산 투자 공정성 논란이다. 엘에이치 임직원들의 투기 의혹으로 분노가 폭발했지만, 이미 부동산은 모두에게 초미의 관심사였다. 어느 지역이 먼저 개발이 되는지, 누가 먼저 분양을 받는지, 누가 얼마나 대출을 받을 수 있는지, 누가 세금을 얼마나 더 내는지에 대한 관심이 극단적으로 팽창한 상태였다.
부동산 소유 여부야말로 새로운 계급의 핵심적 경계선이 되어가고 있다. 데이터로도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 근로소득의 불평등은 산업화 이후 빠르게 커졌지만, 최근 몇년 동안 눈에 띄게 완만해지고 있다는 게 정설이다. 그러나 부동산과 금융자산으로부터 얻는 소득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자산으로부터의 소득불평등은 더 가팔라지고 있고, 상위 10%에서 1%로, 1%에서 0.1%로 더 집중되고 있다. 과거와 달리 이제는 아무리 능력이 있고 노력을 해도 일을 해서 얻는 근로소득으로는 상승에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이런 사회에서 사람들의 관심이 공무원 시험으로, 입시 사교육으로, 부동산 투자로 몰리는 것은 자연스럽다. 묵묵히 일하기만 하거나, 위험을 감수하고 창업하고, 남을 위해 봉사하기만 하는 사람들이 겪을 암울한 미래가 눈앞에 그려지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 방향을 바꿀 수 있을까? 상층 계급이 될 기회를 공정하게 가지면 될까? 의문이다. 승자와 패자 사이의 격차가 커지고 승자의 비율이 줄어드는 사회라면, 공정한 규칙이란 사실 부수적이다.
‘신계급사회’를 향해 달리고 있는 우리 사회 방향을 뒤집는 일이 핵심이다. 집과 땅에서 나오는 불로소득과, 학벌에 따른 차별과, 공공기관 담장 안팎의 격차를 없애는 게 그 내용이다.
사람들은 바람보다 먼저 눕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세상의 흐름에 밀려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흐름이 바뀐다는 믿음이 생기면 또 다른 방향으로 에너지를 쏟기 마련이다. 굳은 의지로 일관된 방향의 바람을 만들어내는 일을 정부가 정책을 통해서 해야 한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외쳤던 문재인 정부의 시간은 아직 남아 있다. 새로운 계급이 형성되지 않도록 만들고, 사람들이 이를 믿도록 만드는 데 남은 모든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이원재 ㅣ LAB2050 대표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87871.html#csidxa3df132d45a6b6cbf19483bc2b0bd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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