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한국 부패사의 핵심은 제대로 된 처벌의 부재

道雨 2021. 4. 14. 09:11

한국 부패사의 핵심은 제대로 된 처벌의 부재

지난 4·7 재보선에서 가장 큰 이슈가 된 것은 후보자들의 도덕성 문제였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친 결정적 이슈는 엘에이치(LH) 사건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후보자에 대한 지지율에서 극적인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어떠한 네거티브도 여론의 향방을 크게 바꾸지 못했다. ‘과정에서의 공정’이 국정 비전의 한 축이었기에 정부·여당에 준 타격이 적지 않았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했을까?

 

1948년 정부 수립 후 발생한 가장 큰 부패사건은 중석불 사건이었다. 중석을 수출해 번 돈은 산업발전을 위한 기자재 수입에만 사용하게 되어 있었음에도, 특정 기업이 양곡과 비료를 수입할 수 있도록 허가해 5배가 넘는 수익을 올리게 한 것이다. 기업이 번 돈은 정부·여당으로 흘러들어갔고, 터무니없이 비싼 값에 식량과 비료를 구입한 국민들에게 모든 손해가 돌아갔다. 1952년 발생한 이 사건은 정치적 배후는 밝혀지지 않은 채, 1957년 해당 기업인에게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한국비료의 사카린 밀수 사건은 1960년대를 뒤흔든 대표적 부패사건이었다. 이미 군사정부 시기에 4대 의혹 사건을 미봉했던 박정희 정부와 특정 재벌의 결탁으로 발생한 사건이었다. 정치깡패 김두한이 국회에 오물을 뿌리는 에피소드를 일으키기도 했던 이 사건은, 한국비료의 지분을 정부에 양도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국내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또 다른 사건은 코리아게이트 수사 과정에서 밝혀졌다. 당시 발표된 ‘프레이저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 정부의 대리인이 미국으로부터 양곡을 수입하는 과정에서 리베이트를 받았고, 그 돈이 미국 의회 의원들에 대한 로비 자금으로 흘러갔다는 것이다. 아울러 보고서에는 한국에 투자하는 미국의 기업으로부터도 리베이트가 해외의 비밀금고로 송금되었다는 점도 기술되었다. 그러나 코리아게이트로 처벌받은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이러한 권력형 비리 사건은 1980년대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권력자와 재벌의 결탁이 전두환 정부뿐만 아니라 민주화 이후 노태우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서도 재현되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에 발생한 부패사건에서 더 중요한 건, 새로운 형태의 부패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출발은 1978년에 폭로된 현대아파트 특혜분양 사건이었다. 재벌이 건설하는 아파트를 분양하는 과정에서 원래 목적인 무주택 사원들에 대한 분양이 아니라, 고위공직자, 국회의원, 기업인, 언론인 등에게 특혜분양이 이루어진 것이다. 부패의 구조가 복잡하게 진화한 것이다. 이 사건으로 처벌받은 사람은 없었고, 특혜분양도 취소되지 않았다.

민주화 이후에도 1991년의 수서 택지 사건, 2000년의 분당 파크뷰 사건, 최근에는 부산 엘시티(LCT) 사건 등 다양한 특혜분양 사건이 이어졌다.

 

한국 현대사를 통해 한편에서 민주화와 산업화를 통한 대한민국의 진화가 이루어졌다면, 다른 한편에서는 부패의 진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권력의 중심부와 재벌 사이의 불법적 관계를 통해 정치자금을 만들어내고 권력자의 부를 축적하는 방식에서, 부패의 범위가 소위 사회지도층으로 불리는 계층으로 광범위하게 확산된 것이다.

부패의 대상도 현금에서 부동산과 주식의 비공개 정보를 이용해 부당한 이득을 취하도록 방식이 바뀌었다.

 

민주화가 되다 보니 절차와 여론이 중요시되었고, 이 과정에서 공직자는 물론 사회 여론을 만들어내는 언론과 전문가들이 부패의 사슬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엘에이치 사건의 조사과정에서 직원들뿐만 아니라 공직자, 국회의원, 전문직 종사자들이 함께 등장한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부패를 근절하려면 무엇보다도 이해충돌방지법 제정이 필요하다. 아울러 정부 정책의 입안·실행 과정을 철저하게 기록함으로써 정부의 투명성을 높이는 과정 역시 필요하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부패사건에 대한 엄정한 수사와 처벌이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나타난 수많은 부패사건이 끊임없이 계속되는 이유는, 사건 처리 과정에서 사건의 진상은 묻혔고, 그 누구도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다는 데 있다.

 

아울러 부패 문제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지인한테 비밀정보를 받아 부당한 이익을 얻으면서도, 그것이 불법이며 불공정한 과정이라는 의식이 없다. 그러다 보니 문제에 대한 비판보다는 비밀정보의 획득에서 소외되어 있는 자신을 탓하게 된다. 더 이상 비밀정보의 누설이 없어지는 사회도 만들고 싶어하지 않는다. 이러한 의식이 없어지지 않는 한 지금까지 대한민국이 성취한 민주화와 산업화는 모래성처럼 무너질 것이다.

 

박태균 ㅣ 서울대 국제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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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90824.html#csidxc500fc1aac01419b4b5a7932c8cb2c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