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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담의 난

道雨 2021. 5. 21. 20:33

비담의 난

 

비담(毗曇, ?~ 647년)은 신라 제 27대 선덕여왕 말기의 진골로 추정되는 귀족이다. 성은 (金)이며, 상대등(上大等)을 역임했고, 반란을 일으킨 역신(逆臣)이다. 삼국사기 선덕여왕조, 김유신 열전에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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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출생 연도, 부모 등 출생에 대한 사항 및 업적 등에 대해서는 남은 기록이 거의 없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선덕여왕 재위 말기인 646년 음력 11월 화백회의의 수장좌이자 신라의 최고 벼슬인 상대등에 오른 것으로 나타난다.

 

상대등

신라 제 27대 국왕인 선덕여왕(善德女王)의 재위 말기인 645년 화백회의의 수장인 상대등이 되었다. 선덕여왕 16년인 647년 정월, 비담 염종 등과 함께 “여자 군주는 나라를 다스릴 수 없다.”(女主不能善理)는 기치 하에 반란을 일으켰다. 선덕여왕의 정치를 문제삼아 반란을 일으킨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선덕여왕이 병세가 깊어 진덕여왕을 후계자(후사)로 삼자, 이에 대항하여 왕위 찬탈을 위해 반란을 일으켰다는 설이 유력하다.

 

비담의 난

비담 월성(月城)을 먼저 장악한 김유신에 밀려, 명활산성에 진을 치고 대치하였다. 삼국사기 김유신열전에 따르면, 비담의 반란은 10여 일 만에 진압당했다. 삼국사기 진덕여왕조에 따르면, 비담 염종을 포함한 그의 일족 30명은 정월 17일에 처형됐다. 그러나 비담의 난이 진행되는 도중인 647년 1월 8일, 선덕여왕은 승하하였고, 이어 진덕여왕(眞德女王)이 신라의 제28대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일화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에는 비담의 난과 관련된 일화가 실려 있다. 비담은 명활산성에 진을 치고, 김유신이 이끄는 관군은 월성에 진을 쳤다. 어느 날 밤 큰 별이 월성에 떨어졌다. 이에 비담이 부하들에게 "이는 틀림없이 여주(女主, 여왕을 낮추어 부른 말)가 패할 징조이다."라고 말하자, 반란군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이에 선덕여왕 김유신을 불러 대책을 논의하였다. 김유신은 왕을 안심 시킨 후, 허수아비에 불을 붙인 후 연을 띄워 하늘로 올려 보냈다. 그리고는 "어제 밤에 떨어진 별이 다시 올라갔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이에 관군은 기세를 얻어 반란군을 물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