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훈의 ‘정치공작’ 발언, 영화 ‘내부자들’과 똑같았다
‘가짜 수산업자’ 금품제공에 연루된 사람들
100억원대 사기 혐의로 구속 기소된 ‘가짜 수산업자’로부터 금품을 받은 의혹으로, 이동훈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이 경찰 수사를 받았습니다.
이 전 위원은 서울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에서 수사를 받고 나온 후, 기자들에게 ‘여권 정치공작설’을 주장했습니다.
이 전 위원은 “자신에게 여권 정권의 사람이란 사람이 찾아온 적이 있다”면서 “ ‘Y(윤석열 지칭)를 치고 우리를 도우면 없던 일로 만들어 주겠다. 경찰과도 조율이 됐다’ 그런 식으로 얘기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저는 ‘안 하겠다. 못하겠다’고 했다. (그 이후) 제 얼굴과 이름이 언론에 도배됐다. 윤석열 전 총장이 정치참여를 선언하던 그날이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공작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준석 국민의당 대표는 이 전 위원의 주장에 대해 “정권을 도우면 없던 일로 해주겠다고 회유를 했다니 충격적인 사안이다”라며 “당 차원의 진상규명에 나서겠다”고 밝혔습니다.
금품수수 의혹이 갑자기 정치 공작으로 바뀌어 정치권 싸움으로 확산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전 위원의 주장을 그대로 믿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습니다.
이동훈은 금품수수 의혹부터 밝혀야
기자들은 이동훈 전 위원에게 “룸살롱 접대 몇 차례 받으셨는지?”라며, 가짜 수산업자로부터 금품과 향응을 접대받았는지 진위여부를 물었습니다. 하지만 이 전 위원은 답변을 회피했습니다.
이 전 위원이 정치 공작을 주장하려면, 먼저 자신이 가짜 수산업자로부터 금품을 받았는지 여부를 확실히 밝혀야 했습니다.
금품수수 의혹은 유야무야 넘어가고 갑자기 '정치 공작'이라고 주장한다면 흔히 말하는 ‘물타기’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이동훈의 사퇴는 윤석열 정치 참여 선언 전
이 전 위원은 여권 인사가 자신을 회유하다가 실패하자, 윤석열 전 총장의 정치 참여 선언 날에 자신의 이름이 언론에 도배됐다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주장처럼 윤 전 총장이 정치 참여를 선언한 6월 29일 이 전 위원의 금품수수 의혹이 터졌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그가 사퇴한 날은 6월 20일이라는 것입니다.
이 전 위원은 윤 전 총장의 대변인으로 임명된 지 불과 열흘 만에 사퇴했습니다. 당시 그의 사퇴를 놓고 여러 가지 말들이 있었지만, 금품 수수 의혹을 제기한 언론은 없었습니다.
만약 이 전 위원이 떳떳했다면 굳이 대변인에서 사퇴할 이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오히려 대변인 자리에 있으면서 ‘정치 공작’을 주장하는 편이 더 효과적이었습니다.
이 전 위원은 대변인 임명 열흘 만에 사퇴한 이유부터 밝혀야 합니다.
‘가짜 수산업자’ 금품제공에 연루된 사람들
이동훈 전 위원은 ‘정치 공작’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번 사건은 검찰, 경찰, 언론인들이 가짜 수산업자로부터 금품을 받은 추악한 범죄로 봐야 합니다.
가짜 수산업자로부터 금품을 제공받은 의혹을 수사를 받거나 입건된 사람들을 보면, ‘이동훈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 ‘ 부부장 검사’, ‘전 포항남부경찰서장’, ‘엄성섭 TV조선 앵커’, ‘종합일간지 기자’, ‘종편 기자’등입니다.
수사 대상자 중에는 이 전 위원을 포함해 언론인들이 4명입니다. 여권 성향의 언론인을 여권 정치인이 회유를 한다면 가능하겠지만, 야권 성향으로 분류된 언론인들, 그것도 한 두 명이 아닌데, 이 전 위원에게만 정치 공작을 펼쳤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따릅니다.
설사 여권에서 정치 공작을 펼치려고 했다면, 윤 전 총장이 대선 출마를 선언하거나 선거 직전이 오히려 효과적이었을 것입니다.
이 전 위원은 가짜 수산업자로부터 금품을 제공받았는지 여부와 접촉해 온 여권 정치인이 있다면 그가 누군지 밝혀야 합니다.
영화 '내부자들'과 똑같았던 ‘정치 공작’ 발언
▲영화 ‘내부자들’에서 ‘조국일보’ 논설주간이 검찰 수사를 받고 나오면서, 기자들에게 ‘정치 공작’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모습
이동훈 전 위원이 정치 공작이라고 주장하는 모습만 보면, 마치 영화 <내부자들>에서 논설주간 이강희(백윤식)가 검찰 수사를 받고 나오면서 기자들에게 ‘안상구(이병헌)가 알 수 없는 조직으로부터 사주를 받은 정치 공작과 연관이 있다’는 대사와 너무나 흡사합니다.
극 중 이강희는 ‘조국일보’ 정치부장 출신으로, 논설 주간이라는 언론의 힘을 이용해, 재벌, 정치인과 결탁해 비리를 저지른 인물입니다.
이강희는 비자금 문제로 재벌이 궁지에 몰리자 “어차피 대중들은 개 돼지입니다. 뭐하러 개 돼지한테 신경을 쓰고 그러십니까. 적당히 짖어대다 알아서 조용해질 겁니다”라고 말합니다.
이강희의 대사는 2016년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이 기자들과의 식사자리에서 인용해 논란이 됐습니다.
영화 ‘내부자들’에서 이강희는 “말은 권력이고 힘이다”라고 합니다. 이번 ‘가짜 수산업자 게이트’에서도 다수의 언론인들이 언론 권력의 힘을 이용해 금품을 제공받은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이동훈 전 위원은 ‘정치 공작’을 주장하기 전에, 언론인 출신으로 언론 권력을 이용한 적이 있는지 스스로 물어보고, 국민 앞에 밝혀야 합니다.
[ 임병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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