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道雨 2021. 12. 2. 18:19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 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 지음, 박세연 옮김

 

 

[들어가며] 모든 민주국가에 던지는 경고

 

 

@ 오늘날 민주주의의 죽음

 

냉전 기간 및 그 이후 전 세계에서 일어난 민주주의 죽음 가운데 75%는 군부 쿠데타에 의한 것이었다.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 도미니카공화국, 가나, 그리스, 과테말라, 나이지리아, 파키스탄, 페루, 태국, 터키, 우루과이, 이집트의 민주주의가 그렇게 죽었다.

이들 사례에서 민주주의는 군부의 무력과 강압으로 순식간에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군인이 아니라 국민이 선출한 지도자의 손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도 있다. 민주적 절차를 거쳐 당선된 대통령이나 총리가 권력을 잡자마자 그 절차를 해체해버리는 것이다. 히틀러는 순식간에 민주주의를 해체해버렸다.

 

더 많은 경우 민주주의는 눈에 잘 띄지 않는 방식으로 서서히 허물어진다. 대부분의 국가가 정기적으로 선거를 치름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는 다른 형태로 죽어간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는 물론, 조지아, 헝가리, 니카라과, 페루, 필리핀, 폴란드, 러시아, 스리랑카, 터키, 우크라이나에서도 선거로 추대된 지도자들이 민주주의 제도를 전복했다.

선거로 시작된 민주주의 붕괴는 위험하면서도 미묘한 방식으로 이뤄진다. 시민들은 예전과 다름없이 투표를 한다. 선출된 독재자는 민주주의 틀은 그대로 보존하지만, 그 내용물은 완전히 갉아먹는다.

이러한 경우 쿠데타나 계엄령 선포, 혹은 헌정 질서의 중단처럼 독재의 경계를 넘어서는명백한 순간이 없기 때문에 사회의 비상벨은 울리지 않는다. 사람들 대부분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다.

 

 

@ 잠재적 독재자가 권력을 잡으면

 

기성 정당이 두려움과 기회주의, 혹은 판단 착오로 인해 극단주의자와 손을 잡을 때 민주주의는 무너진다.

선거를 통해 권력을 장악한 독재자의 시나리오에서 가장 비극적인 역설은, 그가 민주주의 제도를 미묘하고 점진적으로, 그리고 심지어 합법적으로 활용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죽인다는 사실이다.

 

@ 다른 나라 민주주의의 교훈

 

도널드 트럼프는 대중의 불만은 물론 극단주의 선동가와 손을 잡은 공화당 덕분에 깜짝 승리를 일궈냈다.

민주주의가 건강하게 돌아가고 오랫동안 이어지기 위해서는 성문화되지 않은 규범이 헌법을 뒷받침해야 한다.

그 두 가지 규범이란 정당이 상대 정당을 정당한 경쟁자로 인정하는 상호 관용과 이해, 그리고 제도적 권리를 행사할 때 신중함을 잃지 않는 자제를 말한다.

관용과 절제의 규범은 미국 민주주의를 보호하는 연성 가드레일로 기능하면서, 당파 싸움이 파멸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막아주었다.

미국 민주주의의 가드레일이 흔들리고 있다. 민주주의 규범 침식은 당파적 양극화에서 비롯되었다.

극단적인 양극화가 민주주의를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다.

 

 

[1] 민주주의자와 극단주의자의 치명적 동맹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 브라질의 제툴리우 바르가스, 페루의 알베르토 후지모리,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와 같은 아웃사이더 정치인들 모두 내부로부터, 그리고 선거나 강력한 정치인과의 연합을 통해 권좌에 올랐다.

기존 엘리트 집단은 인기 있는 아웃사이더를 받아들여도 얼마든지 제어할 수 있으며, 나중에 자신들이 권력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믿었으나, 그들의 예상은 어긋나고 말았으며, 두려움과 야심, 그리고 판단 착오라는 치명적 실수로 파멸의 길로 들어서고 말았다.

 

@ 노련한 정치인들의 순진함

 

이탈리아와 독일의 시나리오는 대중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아웃사이더 인물(무솔리니, 히틀러)인 독재자를 권력의 자리에 앉힌 치명적 연합의 대표적 사례다.

악마의 거래는 기성 정치 세력이 아웃사이더에게 정당한 도전자의 자격을 부여할 때 아웃사이더에게 유리하게 흘러간다.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또한 정치 아웃사이더였으나, 주요한 정치 내부자의 결정적인 도움을 받았다.

 

히틀러와 무솔리니, 차베스 모두 흡사한 여정을 거쳐 권력의 자리에 올랐다. 그들 모두 대중의 관심을 사로잡는 기술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기성 정치인들이 경고신호를 무시하고 권력을 쉽게 넘겨주거나(히틀러와 무솔리니) 혹은 정치 무대에 들어오도록 문을 열어주었기(차베스) 때문에 권좌에 오를 수 있었다.

@ 민주주의를 지키는 건 국민이 아니다

 

많은 나라들이 대중선동가의 위협에 직면했지만, 그들은 그 인물이 권력의 자리에 오르지 못하도록 잘 막아냈다.

극단주의자나 선동가가 대중의 인기를 얻었을 때 기성 정치인들은 힘을 합쳐 그들을 고립시키고 무력화한다. 정치 엘리트 집단, 특히 정당이 사회적 거름망으로서 기능할 수 있는가이다. 정당은 민주주의의 문지기인 셈이다.

 

@ 독재자를 감별하는 법

 

많은 독재자는 권력의 자리에 오르기 전에 고유한 조짐을 드러낸다. 가령 히틀러는 쿠데타에 실패했고, 차베스 역시 무장봉기에 실패했다. 무솔리니의 검은셔츠단은 의회 폭력에 가담했다. 아르헨티나의 후안 페론은 대통령이 되기 26개월 전에 쿠데타에 성공했다.

 

일부의 독재자는 처음에는 민주주의 규범을 성실히 따르다가 나중에 본색을 드러낸다.

 

예일 대학 교수인 린츠는 오랜 연구를 통해 민주주의가 왜, 그리고 어떻게 죽어가는지를 들여다보았다. 저서 민주주의 정권의 몰락

 

잠재적인 독재자를 감별할 수 있는 네 가지 경고신호

1) 말과 행동에서 민주주의 규범을 거부

2) 경쟁자의 존재를 부인

3) 폭력을 용인하거나 조장

4) 언론의 자유를 포함하여 반대자의 기본권을 억압하려는 정치인

 

이러한 기준 중 하나라도 충족한다면 그를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한다. 주로 포퓰리즘 아웃사이더가 전제주의 리트머스 테스트에서 양성반응을 보인다.

 

포퓰리스트는 기성 정치에 반대한다. 그들은 자신이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면서, 부패하고 음모를 꾸미는 엘리트 집단과 전쟁을 벌이겠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기존 정당 체계의 가치를 부정하면서, 기성 정치인들을 비민주적이고 비애국적인자들로 매도한다.

포퓰리스트는 엘리트 집단을 처단해서 권력을 국민에게 되돌려주겠다고 약속한다.

 

포퓰리스트가 선거에서 이길 때 그들은 종종 민주주의 제도부터 공격한다. 예를 들어 남미의 경우 1990년에서 2012년까지 볼리비아, 에콰도르, 페루, 베네수엘라에서 선출된 15명의 대통령 중 다섯 명이 포퓰리즘 아웃사이더였다. 이들 다섯은 알베르토 후지모리, 우고 차베스, 에보 모랄레스, 루시오 구티에레스, 라파엘 코레아이다. 이들 모두 민주주의 제도를 허물어뜨렸다.

전제주의 행동을 가리키는 네 가지 주요 신호

 

1) 민주주의 규범에 대한 거부(혹은 규범 준수에 대한 의지 부족) * 헌법을 부정하거나 이를 위반할 뜻을 드러낸 적이 있는가?
* 선거제도를 철폐하고, 헌법을 위반하거나, 정부 기관을 폐쇄하고, 기본적인 시민권 및 정치 권리를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는가?
* 권력을 잡기 위해 군사 쿠데타나 폭동, 집단 저항 등 헌법을 넘어선 방법을 시도하거나 지지한 적이 있는가?
* 선거 불복 등 선거제도의 정당성을 부정한 적이 있는가?
2) 정치 경쟁자에 대한 부정 * 정치 경쟁자를 전복 세력이나 헌법 질서의 파괴자라고 비난한 적이 있는가?
* 정치 경쟁자가 국가 안보나 국민의 삶에 위협을 주고 있다고 주장한 적이 있는가?
* 상대 정당을 근거 없이 범죄 집단으로 몰아세우면서, 법률 위반(혹은 위반 가능성)을 문제 삼아 그들을 정치 무대에서 끌어내려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는가?
* 정치 경쟁자가 외국 정부(일반적으로 적국)와 손잡고(혹은 그들의 지시에 따라) 은밀히 활동하는 스파이라고 근거도 없이 주장한 적이 있는가?
3) 폭력에 대한 조장이나 묵인 * 무장단체, 준군사조직, 군대, 게릴라, 혹은 폭력과 관련된 여러 조직과 연관성이 있는가?
* 개인적으로 혹은 정당을 통해 정적에 대한 폭력 행사를 지원하거나 부추긴 적이 있는가?
* 폭력에 대한 비난이나 처벌을 부인함으로써 지지자들의 폭력 행위에 암묵적으로 동조한 적이 있는가?
* 과거나 다른 나라에서 벌어진 심각한 정치 폭력 행위를 칭찬하거나 비난을 거부한 적이 있는가?
4) 언론 및 정치경쟁자의 기본권을 억압하려는 성향 * 명예훼손과 비방 및 집회를 금지하거나, 정부 및 정치조직을 비난하는 등 시민의 자유권을 억압하는 법률이나 정책을 지지한 적이 있는가?
* 상대 정당, 시민 단체, 언론에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협박한 적이 있는가?
* 과거에 혹은 다른 나라의 정부가 행한 억압 행위를 칭찬한 적이 있는가?

 

@ 정당이라는 문지기

 

잠재적 독재자를 걸러내야 할 1차적 책임은 민주주의 문지기인 정당과 그 지도자들에게 있다.

 

1) 잠재적인 독재자를 선거 기간에 당내 경선에서 배제하는 것이다. 선거에서 이길 가능성이 아무리 높다고 해도, 극단주의자를 고위직 후보자로 공천하려는 유혹을 떨쳐내야 한다.

2) 정당의 조직 기반에서 극단주의자를 제거한다.

3) 반민주적인 정당이나 후보자와의 모든 연대를 거부한다. 다양한 사례에서 민주주의가 붕괴한 이유는 [주류]정당이 이념적 스펙트럼에서 반대쪽으로 이동한 것이 아니라, 극단주의자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기 때문이다.

4) 극단주의자를 체계적으로 고립시킨다. 잠재적인 독재자를 정상인으로 보이게끔 만들거나 공식적으로 지지하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5) 극단주의자가 유력 후보자로 떠오를 때 주요 정당들은 연합 전선을 형성해야 한다.

 

용기 있는 지도자는 급박한 순간에 민주주의와 국가를 당의 이익보다 앞세우고, 또한 유권자에게 무엇이 더 중요한지 분명히 밝혀야 한다. 리트머스 테스트에서 양성반응을 보인 정당이나 정치인이 강력한 선거 후보로 떠오를 때 대안은 그리 많지 않다. 연합을 통해 민주 세력을 집결함으로써 극단주의자가 권력을 차지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길이다.

 

 

 

[4] 합법적으로 전복되는 민주주의

 

경제가 어려워지고 정정이 불안했던 페루에서, 후지모리는 포퓰리즘을 앞세워 국민의 분노를 자극했고, 자신이야말로 변화를 향한 유일한 대안임을 강조했다. 그리고 선거에서 승리했다.

그는 페루를 자신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싶어 했다. 그리고 의회를 우회하는 방법을 모색했다.

의회와의 갈등이 심각해졌고, 후지모리는 TV에 출연해서 의회를 해산하고 헌법을 무효화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깜짝 당선 후 2년이 지나기 전에 후지모리는 별 볼일 없는 아웃사이더에서 독재자로 거듭났다.

 

@ 대중선동가에서 독재자로

 

민주주의 규범을 허무는 선동적 지도자와 위기를 느낀 기성 정치 세력 사이에 고조되는 갈등의 결과로 민주주의는 붕괴한다.

 

대중선동가는 비판자를 적이나 체제 전복자, 심지어 테러리스트라며 도발적으로 비난한다.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페루의 후지모리, 이탈리아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에콰도르의 라파엘 코레아, 터키의 에르도안 등이다.

정권에 반대하는 인물이 테러 집단과 연관이 있고, 언론이 가짜뉴스를 퍼뜨린다는 주장을 대중이 진지하게 받아들일 때, 독재자는 그들에 대한 탄압을 쉽게 정당화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대중선동가의사례를 살펴보면, 많은 이들이 결국에는 말을 넘어 행동으로 옮겨 간다. 이들은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사회를 분열시키고, 공포와 적대감, 그리고 불신을 부추긴다.

 

민주주의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협상과 양보·타협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후퇴는 피할 수 없고, 승리도 언제나 부분적이다. 대통령이 발의한 법안은 의회 승인을 얻지 못하거나, 사법부의 반대로 무산될 수 있다.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정치인은 이런 제약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해한다.

 

반면 아웃사이더들에게, 특히 선동 성향이 강한 독재자들에게 이와 같은 민주주의 속성은 견디기 힘든 속박이다. 잠재적 독재자는 민주주의라고 하는 일상적인 정치 과정에서 인내심 부족을 드러낸다.

 

@ 심판 매수

 

대부분의 경우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은 점진적으로 이뤄지기에, 시민들 대부분이 알아채지 못 한다.

민주주의 붕괴는 특히 초반에 단편적인 형태로 일어난다. 개별적인 사건만 놓고 본다면 어느 것도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보이지 않는다.

 

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려는 독재자의 시도는 종종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뤄진다. 독재자는 의회 승인을 얻고, 대법원으로부터 합법 판결을 받는다. 가령 부패와의 전쟁, 부정선거방지법, 민주주의 의식 개선, 국가 안보 강화와 같은 시도는 대부분 합법적이며, 심지어 공공의 이익을 위한 노력으로 비춰진다.

 

잠재적 독재자는 승리를 위해 심판을 매수하고, 상대편 주전이 경기에 뛰지 못하도록 막고, 그리고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경기 규칙을 바꾼다. 상대편에게 불리하게 경기장을 기울이는 것이다.

 

다양한 사법기관들, 가령 법원과 검찰, 정보기관, 국세청, 규제 기관들은 중립적인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한다. 이 기관들이 본연의 독립성을 유지할 때 행정부의 권력 남용을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한다. 하지만 정권의 충신들이 이들 기관을 장악할 때, 이러한 제도는 권력을 제어하기 위한 수사와 고발을 차단함으로써, 잠재적 독재자에게 도움을 준다.

 

심판 매수는 보호막 이상의 기능을 한다. 독재자는 법률을 차별적으로 적용함으로써, 정적을 처단하고 동지는 보호하는 강력한 무기를 손에 넣는다.

세무 기관을 앞세워 야당 인사와 기업인, 언론인을 공격한다. 경찰은 야당 지지자의 시위는 탄압하면서도 친정부 인사의 폭력은 묵인한다. 정보기관을 이용해 정부 비판자를 감시하고, 이들을 협박할 근거를 찾는다.

심판 매수는 주로 공직자나 비당원 관료를 해고하고, 충신으로 채우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페루 국가정보원은 수백 명에 달하는 야당 정치인과 판사, 의원, 기업인, 언론인 및 편집자 들이 뇌물을 주고받고, 매춘을 하는 등 다양한 불법 행동을 몰래 촬영해서 그 영상으로 이들을 협박했다. 대법관 세 명과 헌법재판소 재판관 두 명, 그리고 상당히 많은판사와 검사에게 매달 집으로 현금을 배달하는 방식으로 이들을 매수했다. 매수에 실패한 판사는 해임의 목표물이 된다.

 

심판 매수를 위한 가장 극단적인 방법은 대법원을 해체하고 새로운 대법원을 구성하는 것이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정권에서 새로 구성된 대법원은 이후 9년 동안 정부에 반대하는 판결을 하나도 내놓지 않았다.

 

독재자는 민주주이 게임의 심판을 매수했고, 정적을 공격하는 강력하면서도 합법적인창을 차지했다.

 

@ 경쟁자, 매수하거나 탄압하거나

 

어떤 독재자들은 정권에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주요 선수들이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방법을 택하였다.

 

잠재적 정적을 다루는 가장 쉬운 방법은 매수다. 후지모리 정권은 비판자들, 특히 언론계 인사를 매수하는 데 능했다.

현대의 독재자는 정적에 대한 탄압을 합법으로 포장한다. 이를 위해 심판 매수는 대단히 중요하다.

 

독재정권은 종종 명예훼손이나 모욕죄 혐의로 소송을 함으로써, 반정부 성향이 강한 언론을 합법적으로 경기에 뛰지 못하게 막는다. 에콰도르의 라파엘 코레아, 터키의 에르도안, 러시아의 푸틴 등이다.

주요 언론사가 공격을 당할 때 다른 언론사들은 자세를 낮추고 자체 검열을 하게 된다.

 

선출된 독재자는 야당을 지지하는 기업 경영자도 공격 대상으로 삼는다. 야당은 후원이 바닥나면서 점점 힘을 잃어갔고, 실제로 많은 정당이 소멸의 길을 걸었다.

 

또한 선출된 독재자는 예술가, 지식인, 팝스타, 스포츠 선수 등 문화계 인사의 입도 틀어막으려 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독재 정권은 문화계 유명 인사와 좋은 관계를 맺고 협력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회유를 통해 혹은 필요하다면 협박을 통해 영향력 있는 인사의 입을 틀어막는 시도는 독재 정권이 잠재적인 저항에 대처하는 중요한 방법이다.

주요 언론인과 기업가들이 매수되거나 경기장 밖으로 쫒겨날 때 저항 세력은 힘을 잃는다.

 

@ 운동장 기울이기

 

독재자들은 게임의 규칙을 바꾼다. 헌법과 선거 시스템, 그리고 다양한 제도를 바꿈으로써 저항 세력을 약화하고, 경쟁자에게 불리한 쪽으로 운동장을 기울인다. 불공정한 선거구 획정, 즉 게리멘더링이나 선거권 제한도 이에 해당한다.

 

@ 그들은 국가위기를 즐긴다

 

선출된 독재자는 심판을 포획하고, 정적을 매수하거나 무력화하고, 게임의 법칙을 바꿈으로써 권력 세계에서 경쟁력을 확보한다. 점진적이고 합법적인 방식으로 이뤄지기에 전제주의로의 흐름이 항상 경고등을 울리는 것은 아니다. 국가의 민주주의가 해체되고 있다는 사실을 시민들은 뒤늦게 깨닫는다.

 

잠재적 독재자는 자신의 반민주적 조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경제 위기나 자연재해, 특히 전쟁과 폭동, 테러와 같은 안보 위협을 구실로 삼는다.

 

독재자는 권력을 집중시키고, 권력을 자주 남용한다. 전쟁과 테러는 기치 아래 군중을 결집시키는효과를 만들어낸다. 국가 위기 상황에서 정권에 대한 여론의 지지는 극적으로 높아진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미국 애국법에 서명했다. 그러나 이는 9.11 테러가 한 달 전에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절대 통과되지 못할 법안이었다.

 

대부분의 헌법은 국가 위기 시 행정부 권한의 확대를 허용하고 있다. 전시에 쉽게 권력을 강화하고 시민의 자유를 제한 할 수 있다. 그렇게 집중된 권력이 잠재적 독재자의 손에 넘어갈 경우 상상하기 힘든 사태가 벌어진다.

잠재적 독재자와 국가 위기가 결합할 때 민주주의는 치명적인 위협을 받게 된다.

 

어떤 독재자는 스스로 위기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필리핀의 마르코스, 독일의 히틀러, 러시아의 푸틴, 터키의 에르도안 등이 안보 위기를 이용해 권력을 강화했다.

 

헌법의 제약으로 발목이 잡힌 선동가에게, 국가 위기는 민주주의 제도에 따른, 불편하고, 때로는 위협적인 견제와 균형 시스템을 해체하기 위한 상징적 기회다. 독재자는 위기의 순간에 음모를 꾸미고, 정적으로부터 권력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막을 쌓는다.

 

[5] 민주주의를 지켜온 보이지 않는 규범

 

균형과 견제를 기반으로 삼는 미국의 헌법 체계는, 지도자가 권력을 함부로 독식하거나 남용하지 못하도록 설계되었고, 미국 역사 대부분의 기간 동안 성공적으로 기능했다.

 

아무리 잘 설계된 헌법이라고 해도 때로는 실패한다. 독일의 1919년 바이마르 헌법은 국가 최고 법률가들에 의해 치밀하게 설계되었으나, 바이마르 헌법과 공화국은 1933년 히틀러의 권력 강탈에 무너지고 말았다.

 

아무리 잘 설계된 헌법도 그 자체로 민주주의를 보장하지 못한다.

모든 헌법은 불완전하다. 수많은 공백과 애매모호함이 존재한다.

헌법 조항은 여러 다양한 뜻으로 해석될 여지가 농후하며, 이를 악용할 위험이 있다.

헌법 조항의 문구를 있는 그대로 기계적으로 해석할 경우, 법의 취지를 훼손할 위험이 있다.

법체계에 본질적으로 내포된 개념적 공백과 의미의 모호함 때문에, 헌법 조항에만 의존해서는 민주주의를 잠재적 독재자의 횡포로부터 지켜낼 수 없다.

 

미국 민주주의의 헌법적 보호 장치는 (···) 반민주적 지도자에 의해 쉽게 악용될 위험이 있다.

미국 사회의 경제적 풍요, 탄탄한 중산층, 활발한 시민사회 등 다양한 요인이 함께 민주주의를 지켜주었다.

 

모든 성공적인 민주주의는 비공식적인 규범에 의존한다.

사회의 다양한 영역에서 성문화되지 않은 규범은 반드시 필요하다. 선수들 사이에서 합의된 규범이 경기가 혼란으로 빠지는 것을 막는다.

 

민주주의가 오랫동안 건강하게 기능하는 국가의 경우, 성문화되지 않은 규범이 성문화된 헌법을 지속적으로 강화한다. 성문화되지 않은 규범이 민주주의를 보호하는 완충적인 가드레일로 기능한다.

 

규범은 개인의 성향을 초월한 것이며, 공동체 및 사회 내부에 널리 공유된, 모든 구성원이 인정하고, 존중하고, 강화하는 행동 규칙에서 비롯된다.

 

민주주의 수호에 가장 핵심 역할을 하는 두 가지 규범은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를 들 수 있다.

 

@ 상호 관용, 혁신적이고 놀라운 규범

 

상호 관용이란, 정치 경쟁자가 헌법을 존중하는 한 그들이 존재하고, 권력을 놓고 서로 경쟁을 벌이며, 사회를 통치할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개념이다. 경쟁자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거나, 그 주장을 혐오할 수 있음에도, 그들을 정당한 존재로 인정해야 한다.

상호 관용은 자신과 다른 의견도 인정하는 정치인들의 집단 의지를 뜻한다.

정치 경쟁자가 적이 아니라는 생각은 혁신적이고 놀라운 개념이다. 상대 당이 적이 아니라, 돌아가면서 권력을 차지하는 경쟁자라는 인식이다.

 

상호 관용의 규범이 힘을 발휘하지 못할 때 민주주의는 위기를 맞이한다. 한 진영이 경쟁자를 위협적인 존재로 바라볼 때, 선거에서 그들에게 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그리고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필요한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며, 그 과정에서 전제적인 방안까지 고려할 것이다.

 

잠재적 독재자들(프랑코, 히틀러, 무솔리니, 마르코스, 카스트로, 피노체트, 푸틴, 차베스, 에르도안 등)은 정치 경쟁자에게 국가적 위협 세력이라는 낙인을 찍음으로써, 그들의 권력 집중을 정당화했다.

 

@ 제도적 자제, 오래된 전통의 규범

 

자제란, ‘지속적인 자기통제, 절제와 인내’, 혹은 법적 권리를 신중하게 행사하는 태도를 뜻한다. 또한 법을 존중하면서도 동시에 입법 취지를 훼손하지 않는 자세를 말한다. 자제 규범이 강한 힘을 발휘하는 나라에서 정치인들은 제도적 특권을 최대한 활용하려 들지 않는다.

 

민주주의가 등장하기 이전에 유럽의 많은 군주는 권력 행사를 자제했다. 군주제가 자제를 필요로 했듯이 민주주의도 자제를 요구한다.

 

민주주의를 무한히 이어지는 경기라고 생각한다면, 상대를 완전히 짓밟아서는 안 되며, 상대를 적대시 하지 말아야 한다. 상대팀이 떠나면 더 이상 경기는 없다.

정치에서도 간교한 계략을 삼가고, 예의와 페어플레이 정신으로, 파괴적인 공격을 삼가야 한다.

 

1952년 수정헌법 제22조가 추가되기 전까지, 미국 헌법의 어떤 조항도 대통령이 최대 두 번의 임기로 물러나야 한다고 명시하지 않았다. 다만 조지 워싱턴이 1797년에 두 번의 임기를 마치고 자리에서 내려온 것이 선례로 남았을 따름이다. 워싱턴의 선례를 따른 첫 대통령인 토머스 제퍼슨은 이렇게 말했다.

 

(···) 나는 훌륭한 전임자가 남긴 건전한 선례를 무시하면서까지 두 번의 임기를 연장한 첫 사례가 되고 싶지는 않다.

 

미국 역사상 이 규범을 위반한 유일한 사례는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19403선뿐이었다. 그리고 루즈벨트의 위반은 결국 수정헌법 22조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자제 규범은 특히 대통령제 민주주의에서 그 가치가 높다. 의회 분열은 교착 상태와 기능 장애, 그리고 헌법 질서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자제의 반대는 제도적 특권을 함부로 휘두르는 것으로, 헌법적 강경 태도라고도 하는데, ‘영원히 승리를 빼앗기지 않으려는태도를 의미한다.

이는 민주주의라고 하는 경기가 계속 이어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걱정하지 않고, 오로지 정치 경쟁자를 없애버리기 위한 전투 자세다. 아르헨티나의 후안 페론, 카를로스 메넴 등에 해당된다.

 

헌법적 강경 태도를 위해 사법부를 활용한 경우도 있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친정부인사로 가득한 베네수엘라 대법원은, 6개월 동안 24회의 재판에 걸쳐, 사면법, 예산안 조정, 비상사태 선포 중단 등 의회가 통과시킨 모든 법안을 위헌으로 판결함으로써, 의회가 승인한 모든 법안을 무효화해버렸다.

 

입법부 또한 그들의 헌법적 특권에 탐닉할 위험이 있다.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대통령을 탄핵하거나, 헌법 정신에 어긋나는 입법을 강행하는 것이다.

 

@ 부식되는 민주주의 가드레일

 

정치인이 상대를 정당한 경쟁자로 받아들일 때 그들은 자제의 규범도 기꺼이 실천하려 든다. 또한 경쟁자를 위협적인 존재로 보지 않는 정치인은 상대를 권력 경쟁에서 퇴출시키려는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다. 자제 규범의 실천은 스스로 관용적인 집단이라는 이미지를 줌으로써 선순환을 이뤄낸다.

 

상호 관용의 규범이 허물어질 때 정치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제도적 권력을 최대한 활용하고자 한다. 정당이 서로를 위협적인 적으로 간주할 때 정치 갈등은 심해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선거 패배는 일상적인 정치 과정의 일부가 아니라 재앙이 된다. 패배의 대가가 심각한 절망일 때 정치인들은 자제 규범을 포기하려는 유혹에 넘어간다. 헌법적 강경 태도는 관용의 규범을 허물어뜨림으로써 경쟁자가 위협적인 존재라는 인식을 키운다.

 

그 결과 정치판에서 민주주의 가드레일이 사라진다. 이러한 상황은 합법적으로 극단적인 전술을 활용하는 악순환이 된다.

 

1640년대 영국의 예를 들어보면,

의회의 합법적 거부와 왕의 권력 남용으로 이루어진 악순환의 소용돌이는 결국 전쟁으로 해결될 때까지 끝나지 않았다.”

뒤이어 일어난 내전은 영국 군주제를 허물어뜨렸고, 찰스 1세는 그 대가로 목숨을 잃었다.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민주주의 붕괴 사례들은 기본적인 규범을 무시한 것이 원인이었다.

 

극단적 정치 분열은 민주주의 규범에 위협이 된다. 정치판이 세계관의 차이를 넘어 사회적, 인종적, 종교적 갈등으로 배타적인 진영으로 분열될 때, 그 사회는 관용의 규범을 유지하기 힘들다.

 

정치 집단이 서로 간 공존이 불가능한 이념으로 분열될 때, 특히 구성원끼리 교류가 부족하고 고립이 심해질 때, 정상적인 경쟁이 사라지고 적대적인 투쟁이 시작된다. 상호 관용이 사라지면서 정치인들은 자제의 규범까지 저버리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승리하려는 유혹에 굴복한다. 그리고 결국에는 민주주의 시스템을 전면 부정하는 반체제 집단이 등장한다. 상황이 이러한 국면으로 접어들면 민주주의는 심각한 위기를 맞는다.

 

민주주의 가드레일이 사라지면서 칠레 민주주의는 사망에 이르렀다. 남미의 가장 안정적인 민주주의 국가임을 자부해왔던 칠레는 군부 독재자에게 넘어가고 말았다. 이후 군부는 17년 동안 이 나라를 지배했다.

 

 

*** 책 내용의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도 정치권뿐만 아니라 사회 각 분야에서도 심각한 갈등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얘기하는 핵심은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입니다.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사항인 것 같아, 개인적 의견 없이 책 내용 그대로를 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