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능력주의는 폭군이다

道雨 2021. 12. 1. 09:19

능력주의는 폭군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내전 중이다. 일상이 곧 전쟁이다. 이 나라처럼 사회 집단 간의 갈등이 심각한 나라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빈부, 이념, 정당, 종교, 세대, 성별, 학력 영역에서 한국은 갈등과 차별이 가장 자심한 나라로 뽑혔다.

 

올해 초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여론조사기관 입소스와 영국 킹스칼리지 런던정책연구소가 공동으로, 세계 28개국 성인 2만3천명을 대상으로 수행한 연구 결과는 실로 충격적이다. 한국은 사회 집단 간 갈등을 측정하는 ‘문화전쟁’ 지표 12개 항목 중 무려 7개 항목에서 1위를 차지했다. 단연 압도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갈등이 심한 나라’로 꼽힌 것이다.

 

한국은 문화전쟁의 나라, 일상적 내전의 나라, 최악 갈등의 나라이지만, 놀랍게도 한가지 이념에는 모두가 동의한다. 바로 능력주의다. 좌파도 우파도, 보수도 진보도, 부자도 빈자도, 청년도 노인도, 여성도 남성도, 엘리트도 대중도, 능력주의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갈가리 찢어진 대한민국을 묶어주는 유일한 통합의 이데올로기가 능력주의다.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부와 권력을 보상받는다는 이념은 허구적이지만, 이처럼 마력을 지녔다.

 

언제부턴가 능력주의에 강력하게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하버드대학에서 정치철학을 가르치는 마이클 샌델 교수다. 그는 최근에 나온 책에서 “능력주의는 폭군”이라고 단언한다.(한국어판 제목은 <공정하다는 착각>이지만, 원어 제목인 “The Tyranny of Merit”를 그 뜻에 맞춰 옮긴다면 <능력의 폭정> 혹은 <능력주의는 폭군이다> 정도가 온당할 것이다.)

능력주의가 미국 사회를 오늘날의 이런 야만 사회로 만든 주범이라는 것이다. 능력주의 사회의 승자인 소수 엘리트 집단이 보이는 ‘오만’과 대다수 대중이 느끼는 ‘굴욕감’으로 미국 사회에는 깊은 골이 파였으며, 특히 백인 저학력 노동자들은 능력주의 사회에서 계급적 증오보다 더 큰 분노와 모멸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것이 폭발한 것이 ‘트럼프 현상’이다.

 

능력주의라는 폭군이 파괴하는 또 다른 대상은 ‘노동의 존엄’이다. 능력주의 사회에서는 더 힘든 일을 하는 사람일수록 그 사회적 가치를 인정받기는커녕 오히려 경멸과 조롱의 대상이 되기 일쑤다.

 

‘절망사’에 대한 샌델의 분석도 충격적이다. 그는 미국 사회에서 기대수명이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현상의 원인을, ‘절망으로 인한 죽음’의 증가에서 찾는다.

샌델은 묻는다. 역사상 유례가 없는 사회적 불평등에 직면하고도, 왜 사회적 약자들은 저항하지 않고, 자살하거나 마약에 빠져드는가. 왜 이들은 불의한 사회에 맞서 싸우지 않고 자기 자신을 ‘응징’하는가. 그것이 결국 오늘날의 미국, 역사상 최악의 불평등 사회를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참으로 서늘한 분석이다.

샌델은 이처럼 능력주의가 사회의 공동선, 노동의 존엄, 인간의 생명을 파괴하는 폭군이라고 주장한다.

 

한국 사회는 어떤가.

샌델의 분석은 기실 미국보다 한국에 더 들어맞는다.

한국 사회가 세계 최고 수준의 갈등을 겪는 문화전쟁의 나라가 된 것이나, 노동의 존엄성이 물리적으로나(세계 최고 수준의 산업재해 사망률), 사회적으로나(힘든 노동에 대한 멸시) 전혀 존중되지 않는 사회가 된 것이나,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을 수십년째 유지하는 나라가 된 것이나 ― 이 모든 현상은 한국 사회가 미국보다도 더 처절한 능력주의의 지옥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의 논리가 극화된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한국에서 만들어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경제학자 정태인은 한국 사회는 자본주의 역사상 가장 불평등한 사회라고 진단하면서, “이 정도 불평등이면 옛날 같으면 혁명이 일어날” 상황이라고 말한다.

샌델을 읽으니 한국 사회에서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를 알 듯도 하다. 능력주의 이데올로기가 혁명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한국인은 불평등과 불의에 직면해도 분노하거나 저항하지 않고, 조용히 자신을 죽인다. 능력주의 이데올로기가 주입한 가르침에 따라, 불행의 원인을 사회구조에서 찾지 않고, 자신의 무능에서 찾는다. 그리고 자신을 응징한다. 이것이 세계 최악의 불평등 국가 한국에서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이다. 이것이 한국에서 자살자가 가장 많은 연유이다.

 

2022년 대선은 능력주의자들의 향연이 되어가고 있다. 모두가 공정을 말하지만, 불평등은 논하지 않는다. 능력주의가 남긴 상처를 치유하지 않으며, 능력주의가 몰고 올 파국을 경고하지 않는다. 능력주의의 폭정을 멈춰 세울 자는 과연 누구인가.

 

김누리 | 중앙대 교수·독문학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21440.html?_fr=mt0#csidx00a4389444346c98e471456ca5a5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