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플랫폼, 규제와 진흥의 줄타기

道雨 2022. 3. 16. 09:24

플랫폼, 규제와 진흥의 줄타기

 

아파트 정문이 내려다보이는 집에 살다 보니, 저녁의 한적함을 잊은 지 오래다. 치킨, 피자, 족발 등을 배달하는 오토바이가 끊임없이 붕붕거리며 드나든다. 주말엔 ‘아점’부터 야식 배달까지 한층 기세를 올려, 모처럼 펴든 책을 덮게 한다. 당연한 듯 인도에 올라와 스치듯 지나가고, 주행 중인 차 앞으로 머리를 들이미는 배달 오토바이에 깜짝깜짝 놀란다. ‘소음 적은 전기오토바이로 교체하고, 속도제한기까지 달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하고 혼자 생각해본다.

이런 불편이 디지털 플랫폼 산업이 만들어내는 ‘외부효과’일 텐데, 주문 플랫폼, 배달 플랫폼, 음식점 주인, 배달 노동자 가운데 누굴 붙들고 따져야 할지 모호하다.

 

소음 같은 성가심이야 참고 넘어간다지만, 그러기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 플랫폼에 생계가 얽힌 이들이다.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며, 디지털 플랫폼은 한층 깊숙이 우리 삶에 파고들었다. 스마트폰 화면을 몇번 터치해 음식과 식재료를 주문하고 쇼핑을 하며, 구인·구직, 콘텐츠 구독 등 많은 일을 하게 됐다.

플랫폼 덕분에 삶이 편리해졌다. 새로운 일자리와 판로가 생기고, 여러 혁신적인 기업도 생겨났다. 그와 동시에 플랫폼의 힘은 세지고, 여기에 상품과 노동을 공급하는 이들은 불리해졌다.

 

대선 국면에서 <한겨레>가 내보낸 정책 점검 보도 ‘플랫폼에 포획된 삶’ 편을 보면, 플랫폼에서 사업하는 이와 노동하는 이의 현실이 잘 드러나 있다. 배달의 민족, 쿠팡이츠, 요기요 같은 주문 플랫폼을 이용하는 자영업자는, 매출 가운데 수수료와 배달료로 나가는 돈이 20~30%에 이른다고 한다. 재료비, 인건비, 임대료를 제하면 장사해서 남는 게 거의 없는 실정이다.

무엇보다 신용카드 수수료가 매출의 0.2%인데, 배달앱 수수료가 13.8%(주문 및 결제 수수료)인 게 납득이 안 된다. “사채보다 더 나쁜 거예요”란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지만, 이용을 중단할 수도 없다. 입점 음식점 주인의 67%는 “플랫폼을 이용하지 않으면 영업을 지속하기 어렵다”고 한다.

배달 플랫폼은 조리 시간이 좀 남은 호출을 먼 거리에 있는 노동자에게 반강제로 배정한다. ‘시간이 돈’인 라이더가 먼 거리 배정을 몇차례 거절하면, 플랫폼은 한동안 호출을 끊는 식으로 응징한다.

음식배달, 대리운전, 퀵서비스 등에 종사하는 플랫폼 노동자는 1년 새 3배나 늘었지만, 플랫폼은 이들을 자신이 고용한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기에, 노동권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절반 가까운 플랫폼 노동자가 고용보험, 산재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다.

 

모두가 노출을 위해 경쟁하는 플랫폼에서 칼자루를 쥔 쪽은 플랫폼 기업이다. 네이버, 쿠팡, 옥션, 지마켓 등 누구든 물건을 팔 수 있는 오픈마켓 플랫폼의 지난해 거래 규모는 82조원에 이른다.

여기 입점한 ‘셀러’(판매자)가 머리를 짜내 상품 노출을 늘리고 판매 실적과 평판을 쌓아 놓아도, 플랫폼이 6개월~1년에 한번 상품 노출 ‘로직’을 일방적으로 바꾸면, 그간의 노력은 물거품이 된다.

플랫폼의 일방적인 거래조건 변경, 들쭉날쭉한 배달료, 상점의 매출이 확 줄어드는 배달앱 주문 거리 제한 같은 문제를 따지면, 플랫폼 기업은 “컴퓨터가 하는 거라 모르겠다”며, 알고리즘 뒤로 숨는다.

디지털 플랫폼 기업이 재벌급으로 덩치가 커지고, 산업의 트렌드를 주도해가면서, 이 산업의 규범을 세우려는 노력이 국내외에서 이어지고 있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와 의회의 반독점 규제 강화 움직임이나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디지털시장법’(DMA)이 대표적이다.

페이스북, 아마존, 애플, 넷플릭스, 구글로 대표되는 빅테크(대형 기술기업)와 플랫폼 기업의 독점적 행태,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알고리즘의 편향성과 불투명성, 이용자 데이터 주권과 프라이버시 침해, 건강한 정보 질서 교란이 더는 방치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윤석열 당선자가 선거에서 승리한 10일, 주식시장에서 네이버와 카카오 주가가 8% 남짓 치솟았다. 플랫폼 ‘갑질’ 방지에 초점을 맞춘 문재인 정부와 달리, 윤 당선자가 기업의 자율 규제 등 규제 최소화를 약속한 데 따른 기대가 반영됐다고 한다.

 

규제는 양면성이 있다. 적절한 규제는 건강한 생태계를 만들어내지만, 적으면 강자의 횡포가 횡행하고, 과하면 혁신이 질식한다.

코로나 이후 디지털 플랫폼 경제로 ‘거대한 가속’이 벌어진 가운데 출범하는 새 정부가, 규제와 진흥의 줄타기를 어떻게 해 나갈지 지켜볼 일이다.

 

 

이봉현 | 경제사회연구원장·논설위원

bh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