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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대결 향후 10년이 분수령, ‘중견 강국 연대’로 완충해야

道雨 2022. 6. 7. 09:14

미-중 대결 향후 10년이 분수령, ‘중견 강국 연대’로 완충해야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1993년 10월 첫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지도자회의를 준비하면서 현인그룹의 사전 브리핑을 받았다. 12개국 정상이 참여하는 이 회의에서 2020년까지 아·태 지역에 자유롭고 개방된 무역·투자 공동체를 만드는 비전을 발표한다는 게 핵심이었다. 이 회의에는 김영삼 대통령과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도 참석하기로 돼 있었다.

클린턴 대통령은 당시 현인그룹에 이런 질문을 던졌다. “그들(중국)이 더는 우리가 필요하지 않을 때가 되면 우리에게 ‘바이 바이’라고 하지 않을까?” 중국이 세계시장과 교역을 할 기회를 잡아 혜택을 누리고 난 뒤 미국을 배신하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었다.

현인그룹 의장이었던 프레드 버그스텐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명예이사는 이렇게 회상했다. “클린턴은 중국을 끌어안는 도박을 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미국은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우월적 지위가 절정에 있었고, 중국은 여전히 경제 발전의 초기 단계였다.”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 클린턴의 의구심은 현실이 됐고, 워싱턴의 정치지도자들은 당시 결정이 커다란 실수였다고 후회하고 있다. 미-중 관계가 이렇게 파국 직전 단계까지 이른 데는, 근본적으로 중국의 경제·군사력이 미국을 위협할 만큼 급성장했기 때문이다. 특히, 민군 겸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첨단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미국의 경제패권, 나아가 군사패권까지 위협하는 것으로 미국은 받아들인다.

 

 

 

미국이 첨단기술 전반에서 여전히 앞서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중국은 일부 분야에선 이미 미국을 추월하고, 나머지 분야에서도 맹렬히 추격하고 있다. 하버드대와 베이징대가 각각 두 나라 기술력을 비교 분석한 보고서에 이런 점이 잘 나타나 있다.

하버드대 벨퍼센터는 지난해 12월 “중국은 일부 분야에서 이미 세계 1위가 됐고, 현재 추세라면 다른 분야에서도 10년 안에 미국을 따라잡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구체적으로, 5G는 중국이 앞선 것으로, 인공지능(AI)은 거의 동급의 경쟁자로 평가했다. 양자정보과학은 미국이 전반적으로 우위이지만, 양자통신 부문은 중국이 추월했다. 반도체도 미국이 우위이지만, 반도체 제작과 칩 설계 부문에서는 중국이 근접했다. 녹색에너지기술은 미국이 개발자였지만, 생산과 이용 측면에서는 중국이 압도한다.

베이징대 국제전략연구원은 올해 1월 “중국은 (미국과의 경쟁에서) 기술적으로 다수의 분야에서 ‘뒤따라가기’를, 소수의 분야에서 ‘나란히 가기’를, 극소수 분야에서 ‘앞지르기’를 하는 태세를 갖추었다”고 평가했다. 중국은 통신기술, 항만·기계, 철도·교통 등 분야에서 미국을 앞설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평가한 반면, 정밀화학·반도체·항공엔진·바이오 등 분야에선 격차가 큰 것으로 평했다. 양자정보·인공지능 등 신흥기술 분야는 경쟁 관계에 있는 것으로 봤다.

미-중 패권 경쟁은 앞으로 10년이 분수령이 될 것으로 많은 전문가는 예상한다. 중국이 지금까지 추세대로 경제 발전과 기술 개발을 지속한다면, 10년 뒤쯤이면 미국의 지위를 위협할 수 있다. 국가 간 기술 이전은 시간의 문제이지 결코 막을 수 없다는 걸 역사는 말해준다. 이를 잘 알기에 미국이 중국 견제, 나아가 중국 약화시키기에 박차를 가하는 것이다.

두 나라를 모두 잘 아는 전문가로 평가받는 케빈 러드 전 오스트레일리아(호주) 총리는 저서 <피할 수 있는 전쟁: 미-중 간 재앙적 충돌의 위험>에서 “2020년대는 미-중 관계에서 결정적 10년이 될 것이다. 두 나라 전략가들은 모두 이것을 알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2020년대는 위태로운 시기가 될 것”이라며 “두 나라가 공존의 길을 찾는다면 세계는 더 나아지겠지만, 실패한다면 전쟁의 가능성이 놓여 있는 길로 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중 패권 경쟁은 둘 사이에 낀 나라들이 받을 타격이 더 크다. 전쟁 같은 극단적인 시나리오를 배제하고 경제적 측면만 따져봐도 그렇다. 두 강대국이 보호주의로 돌아설 경우, 우리처럼 무역으로 먹고사는 나라들은 후폭풍이 클 수밖에 없다. 이런 예측은 국제통화기금(IMF) 보고서에서도 확인된다.

국제통화기금은 지난해 미-중 간 첨단기술 분야의 교역이 중단되는 ‘기술 디커플링(분리)’이 현실화할 경우, 시나리오별로 주요국 경제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추정했다. 대상 국가는 미·중과 한국·일본·유로지역·인도 등 6곳이다.

시나리오는 미-중 간 디커플링,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중국 간 디커플링을 상정하고, 각 나라는 같은 블록 내에서만 교역을 하는 경우와 두 블록 모두 교역이 가능한 경우 두가지로 구분해 추정했다.

그 결과, 미-중 간 디커플링이 이뤄지고 각 나라는 같은 블록에서만 교역이 허용될 경우, 미국과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감소율이 각각 3%, 4%가량으로 추정됐다.

그런데 오이시디와 중국 간 디커플링이 이뤄질 경우에는 상황이 많이 달랐다. 미국은 감소율이 1%대에 그쳤지만, 중국은 무려 8%나 됐다. 미국으로선 동맹·우호국과 연합해 중국과 디커플링하는 게 최소 비용으로 큰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는 미-중 간 또는 오이시디-중국 간 디커플링이 이뤄져도, 두 블록과 모두 교역이 허용될 경우에는 국내총생산이 소폭 증가했다. 우리나라가 중국을 대체하는 어부지리 효과를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같은 블록 내에서만 교역이 허용될 경우에는 우리나라가 입을 타격이 매우 컸다. 미-중 간 디커플링 때는 국내총생산 감소율이 6%나 돼, 조사 대상국 중 피해가 가장 컸다. 오이시디-중국 간 디커플링 때도 감소율이 5%였다.

일본은 두 시나리오에서 우리보다 피해가 2배 정도 작았다. 인도는 미-중 디커플링 때에는 -1%였지만, 오이시디-중국 디커플링 때는 0%였다.

이는 한국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일본·인도에 견줘 매우 높은 데서 기인하는 현상이다. 이런 예측은 앞으로 우리나라가 어떻게 접근해야 할 것인지에 상당한 시사점을 준다.

최근 몇년 새 미국 중심으로 ‘경제안보’ 논리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윤석열 정부도 경제안보를 대외정책의 기조로 채택했다. 그런데 경제안보는 기본적으로 미-중 간 패권 다툼에서 승리하려는 강대국의 논리가 배어 있다. 두 나라는 서로 상대국을 제압해 패권을 차지하는 게 국익에 유리하다.

반면에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사정이 다르다. 보호무역주의를 초래하는 경제안보보다는 무역자유화를 주장해야 한다. 경제와 안보를 디커플링하는 게 국익을 최대화하는 길이다.

이를 위해 우리나라는 이해관계와 능력이 유사한 ‘중견 강국’들과 연대 외교를 통해 미·중의 완충 역할을 해야 한다. 아시아에선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과 인도·일본·호주, 유럽에선 독일·프랑스, 북미의 캐나다 등이 그런 곳들이다. 이들과 다자협력과 지역통합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에서도 중국까지 포용하는 규범을 만들어야 한다. 이미 아세안과 인도가 그런 목소리를 내고 있다.

유럽연합도 경제안보 논리 대신 ‘개방적·전략적 자율성’을 대외정책 기조로 채택하고 있다. 이는 미국과 최대한 협력하되, 대중국 정책에서는 가능한 한 자율성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중국에도 국제 규범을 받아들이도록 압박을 해야 한다.

미-중 경쟁은 우리에게는 기술력과 산업경쟁력을 유지·확대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우리는 미국과의 기술 협력을 통해 원천 기술에 접근할 수 있지만, 중국은 미국의 제재로 기술 접근에 제약이 따르기 때문이다. 예컨대, 반도체·배터리 같은 분야는 세계시장에서 더 확고한 입지를 다질 수 있다. 중국에 뒤처져 있는 인공지능·클라우드·빅데이터·항공우주 등에서도 추격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행운의 시간이 얼마나 남아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지금 미-중 관계는 19세기 말~20세기 초 영-독의 패권 경쟁과 유사한 측면이 많다. 당시 기술혁신(2차 산업혁명)이 한창 진행되는 가운데, 국가 주도 경제와 권위주의 체제의 신흥 강국인 독일이 대영제국의 패권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관세 부과, 기술 표준 설정, 기술 탈취, 제3세계 인프라 투자 등 곳곳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두 나라의 경제적 상호의존도도 매우 깊었지만,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대재앙을 막지는 못했다.

지금 미·중은 마주 달리는 기차처럼 위험한 질주를 하고 있다. 1세기 전 우리는 힘이 없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 산업에서 미·중도 무시하지 못할 레버리지(지렛대)를 갖고 있다. 우리 같은 나라들이 진영 대결이나 각자도생에만 매몰된다면 비극의 역사는 다시 반복될 것이다. 

 

박현 | 논설위원  hyun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