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우리 정치에 감동이 없는 이유

道雨 2022. 6. 30. 09:41

우리 정치에 감동이 없는 이유

 

우리 정치에서 언제부턴가 감동이란 걸 찾기 어렵다. 역대급 비호감 대선 탓일까, 정치가 지금처럼 무미건조하고 국민들 가슴을 휑하게 하던 시대도 드물다. 대선 승패를 떠나 정치 자체가 너무 왜소해졌다.

정치로 감동한 기억을 굳이 꼽자면 2016~2017년 촛불정국 정도가 아닌가 싶다. 대다수 국민들은 촛불의 대의에 공감하고 동참했다. 그 이후론 별로 기억이 없다.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 연설 정도인데, 말 그대로 한여름 밤의 꿈 같은 일이었다. 지난해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이준석 대표의 젊은 반란은 나름 신선했다.

 

대선에서 승리한 대통령에게 집권 초는 국민을 감동시킬 절호의 기회다. 하지만 현재로선 기대난망인 것 같다. 취임 전부터 대통령실 용산 이전으로 평지풍파를 일으켰다. 주말 쇼핑, 영화 관람, 애완견 산책은 감동과는 거리가 있다. 5·18 기념식 참석 정도가 그나마 울림이 있었다.

갓 취임한 대통령이 제일 잘할 수 있는 게 인사인데, 기대와 너무 달랐다. 서오남과 검찰, 지인들로 채워지면서 감동이랄 게 없었다. 야당과는 무엇을 도모하기보다 짓밟는 데 열심이다. “탈원전 5년간 바보짓”, “민변이나 검찰이나 같은 것”이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거친 발언들은, 아직도 대선 승리에 취해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야당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선거 연패 이후 진정성 있는 모습을 찾기 어렵다. 눈치보기와 견제구, 계파 싸움만 있고, 용기와 결단, 헌신과 단합은 없다. 이재명 의원은 전당대회 출마를 놓고 여론 떠보기와 잠행을 계속할 뿐, 지도자다운 희생과 결단, 정정당당함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설사 대표가 돼도 이런 식이면 이후를 기약하기 힘들다.

하루하루 삶의 문제가 급하고 현실은 더욱 복잡해졌는데 감동 주는 정치가 무슨 필요냐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정치가 감동까지는 아니더라도 냉소와 분노, 무관심을 조장해선 곤란하다. 지금 정치는 나라의 잠재력과 건강성을 갉아먹고 있다.

 

감동 없는 정치의 원인은 대략 세 가지다.

첫째, 내로남불이야말로 정치를 황폐화시키고 냉소를 부추기는 주범이다. 윤석열 정권 초기 모습을 보면서 문득 정권마다 ‘내로남불 총량의 법칙’이 있는 것 아닌가 싶었다. 현 정부 출범 50일이지만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자아도취적 자기합리화가 너무 많다. 매번 정권은 차곡차곡 일정량의 내로남불을 쌓다가 어느 순간 임계점에 이르러 폭발하곤 한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정점에 두고 온갖 곡예를 부리는 검찰 인사가 대표적이다.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 시절 목도했던 편법과 무리수가 버전을 바꿔가며 되풀이되고 있다. 검찰총장 ‘패싱’ 말라고 그리 외치더니, 이제는 아예 총장을 비워두고 맘대로 한다. 전 정권이 민변 출신으로 다 채웠으니 우리가 검찰로 채우는 게 뭐가 문제냐는 건 ‘배째라식’ 내로남불이다.

‘네가 하면 정치보복이요, 내가 하면 정의구현’이라는 이른바 ‘신 적폐청산’도 문제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산업부 블랙리스트 사건, 분당 백현동 아파트 의혹 사건 등, 전 정권을 겨냥한 의혹 제기와 수사는 결국 정점을 향해 갈 가능성이 높다. 내로남불식 적폐청산은 항상 정의의 이름으로 내달리지만, 결국은 스스로 판 함정에 빠지기 쉽다.

둘째, 이른바 ‘손님 실수 정치’는 여야 적대적 공생의 핵심 기제다. 윤 대통령이 지금 야당의 실수로 집권했고, 이제는 야당몰이로 정권 기반을 다지려 한다. 야당 역시 집권당 실수를 파고들어 살길을 찾으려 한다. 이재명 의원이 당대표에 출마한다면, 아마도 윤석열 정권 견제를 큰 명분으로 내세울 것이다. 내가 잘해서 모두가 좋아지는 덧셈이 아니라, 상대방 발목을 잡아서 이득을 보는 뺄셈 정치가 만연하니 정치에 감동이 없다.

셋째, 팬덤 정치는 순기능도 있지만 지나칠 경우 대다수에겐 냉소와 무력감을 불러일으킨다. 팬덤의 배타성과 공격성이 클수록 정치는 더 삭막해진다. 이런 팬덤 뒤에 숨은 정치인에게선 용기와 결단, 치열함을 엿볼 수 없다.

내로남불, 손님 실수, 팬덤 정치라는 세 가지 폐해를 극복해야 한다. 힘들지만 누군가는 첫발을 떼야 한다. 거기서부터 감동이 있는 정치도 시작된다.

정치가 삭막해질 때면 떠오르는 이가 노무현이다. 노무현 시절은 그래도 국민이 감동을 먹고 사는 시대였다. 지도자부터 지지자, 시민에 이르기까지 명징함과 헌신, 결의가 있었다. 다시 노무현에게 돌아가야 한다. 너무 멀리 와버렸지만 노무현의 정수를 찾아 나서야 한다.

 

 

백기철 | 편집인

kcbae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