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관련자’ 이한열, 당신을 위한 변론

道雨 2022. 6. 30. 09:51

‘관련자’ 이한열, 당신을 위한 변론

 

‘민주화운동 관련자’와 ‘민주화운동 유공자’ 중에
 
*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이한열동산에서 지난 9일 오후 열린 제35주기 이한열 추모식 참석자들이 추모비에 헌화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변호사라 변론을 많이 하지만, 죽은 사람을 위한 변론은 생소하다. 그것도 6·29 민주화선언 즈음 민주화의 상징적 인물을 변론하자니 서글픈 마음까지 든다. 하지만 민주유공자법 제정을 둘러싼 ‘운동권 셀프입법’ 논란에 분명히 반박하고자 한다.

 

얼마 전 김세진·김귀정 열사 등 민주화운동 공로자 19명에게 국민훈장 등이 수여됐다. 늦었지만 잘된 일이다.

그런데 6월항쟁의 상징인 이한열은 민주화운동의 공로를 인정받았을까? 아니다. 아직 그는 ‘관련자’일 뿐이다. 박종철도 단순히 ‘관련자’다.

‘민주화운동 관련자’, “이게 무슨 소리야, 훈장 받지 않았어?” 하는 분이 많을 것 같다. 훈장은 배은심 어머니, 박정기 아버지가 자식들 죽은 뒤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공로로 그분들 이름으로 받으셨다. 아들들은 여전히 ‘관련자’에 머무르고 있다. 대다수 민주화운동 ‘관련자’들은 공로를 인정받지 못하고 잊혀가고 있다.

 

이한열과 희생자들이 ‘관련자’가 된 사연은 이렇다. 김대중 정부 때 유공자로 인정하는 법 제정을 시도했다. 유선호 의원 등 106명이 1998년에 발의했다. 하지만 힘이 부족해 ‘관련자’로 격을 낮추는 타협을 했고,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법’이 제정됐다.

이 타협 당시 많은 국회의원들이 배은심 어머니에게 힘이 부족해 타협할 수밖에 없지만 힘이 생기면 꼭 민주유공자법을 제정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16대 국회 때부터 현재 21대 국회까지 그 법은 20년 넘게 발의와 임기 만료 폐기를 반복하며 여전히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이 단독으로 과반을 차지한 21대 국회에서는 소관 상임위 소위원회에서 논의조차 안 했다. 민주화세대는 당대표, 비대위원장, 원내대표 등 힘 있는 자리들을 차지했다. 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약속을 믿었던 배은심 어머니는 안타깝게도 ‘관련자’ 아들 곁으로 가셨다. 힘 있는 분들이 빈소에서 무슨 말로 용서를 구했을까.

 

어떤 분들은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했으면 됐다고 할지도 모른다. 유족들의 문제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관련자’란 단지 민주화와 연관성이 있다는 의미에 불과하고, 사회적 가치 평가를 전혀 담고 있지 못하다. 온당치 않다.

2018년 보훈처 여론조사에서는, 민주화운동이 헌정질서에 기여했다는 응답이 77.6%, 유공자 예우에 찬성한다는 응답이 69.2%에 이르렀다. ‘유공자’로서 제도적으로, 법적으로 예우해야 옳다. 이를 통해 민주화운동의 가치도 함께 인정받을 수 있다. 희생자 몇사람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다. 제도적 가치 인정을 통해 민주주의의 후퇴를 방지하기 위한 안전판 역할을 할 것이다.

3·1운동과 4·19혁명이 헌법 전문에 명시돼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듯이, 6·10항쟁이 헌법에 명시되면 확실한 안전판이 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2018년 3월 헌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전문에 6·10항쟁의 민주이념 계승을 명시했다.

이렇게 보면 유족들의 문제가 아니다. 민주화세대 전체의 세대적 과제다. 우리 시대의 시대적 과제다. 힘 있는 분들에게만 맡겨둘 일이 아니다.

 

* 지난 1월11일 오전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민주의 길, 배은심 어머니 사회장’ 영결식에서 참석자들이 헌화하고 있다. 광주/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이 법의 유공 대상자는 사망자와 부상자로 아주 협소하다. 예상하기로 대상자가 800명 조금 넘는다. 그 중 130여명은 민주화운동 당시 돌아가셨다. 이원욱 의원이 셀프입법이라고 비판하며 자신은 받지 않겠다고 했다는데, 미안하지만 그는 이 법 적용 대상이 아니다. 부상자가 아니지 않은가. 현재 국회의원 가운데 셀프입법을 할 수 있는 민주화운동 유공자는 없다. 셀프입법이라는 덧씌우기는 명백히 잘못됐다.

소요 예산도 국회 예산정책처 추산에 따르면 연평균 12억원(1인당 아님)이 들 것이라고 한다. 교육지원도 1992년 이전 출생 자녀만 해당되는데, 1992년생이 벌써 만 30살이라 대부분 교육지원을 받을 시기가 훨씬 지났고, 1992년 이전 출생 자녀를 둔 6·10항쟁 세대는 거의 없을 것이다.

하도 사방에서 비판을 해서인지, 민주유공자에 대한 예우는 이름만 있고, 실제는 앙상하니 거의 없다. 이한열은 유공자로 지정돼도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다. 그는 약관을 갓 넘긴 나이에 산화해 배우자와 자식이 없다. 부모님도 돌아가셨다. 이 법에서 예우해드릴 유가족이 없다. 우리 공화국의 민주화를 위해 희생한 데 대해 그에게 그저 공을 인정해줄 뿐이다. 많이 늦었지만, 배은심 어머니와의 약속이 지켜지길 고대한다.

 

김남주 | 변호사·이한열기념사업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