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경제위기와 하는 척하기

道雨 2022. 7. 20. 09:50

경제위기와 하는 척하기

 

 

 

경제가 위기다. 고인플레이션, 고금리, 고환율 ‘3고 쓰나미’가 닥치고 있다.

늘공(직업공무원)들로 짜인 경제팀의 대응을 보면, 현실인식은 안이하고 정책대응은 무딘 것 같다. 먼지 쌓인 서랍 구석에서 꺼내 와 재활용한 것 같은 정책들을 내밀고 있다.

 

서민 물가 안정을 경제정책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며 감세를 추진했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유류세 감면으로 세수감소액은 8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수입산 소고기, 닭고기 등의 관세를 낮췄고, 특정 품목은 부가가치세를 낮췄다. 하지만 이런 조처가 인플레이션을 완화하는 데 얼마나 효과를 얻었는지는 발표하기 민망한 정도로 알려져 있다.

 

민생과 경제를 제대로 챙기지 않는다는 비판 속에,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은 30%대 초반까지 떨어졌다. 윤 대통령은 부랴부랴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직접 주재하면서 경제를 챙기겠다고 나섰다.

지난주에는 제2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통해 고금리 대응 정책을 밝혔다. “금리 인상은 물가 상승을 억제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이지만, 그 부담이 사회적 약자에게 전가돼서는 안 될 것”이라고 밝힌 것은, 정책 측면에서 맥을 잘 짚은 것 같다.

 

고금리에 따른 민생정책은 크게 보면 세가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책. 코로나19 국면에서 지원됐던 대출 만기가 돌아오고 있다. 이번 발표를 보면 상환이 어려운 차주는 원금감면 등 채무를 조정해줄 계획이다. 30조원 규모 새출발기금을 설치해 부실채권을 매입하게 된다. 고금리 대출을 저금리 대출로 전환해주는 방안도 마련됐다.

 

두번째는 주택을 산 차주의 대출이자 부담 완화다. 신규 취급액 기준으로 변동금리 대출 비중이 80%를 넘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금리 상승은 차주의 상환부담을 빠르게 증가시킨다. 이에 40조원 규모 안심전환대출을 이용해 변동금리 주택담보대출을 고정금리 대출로 전환해줄 계획이란다. 대출 만기를 연장해 상환부담을 경감하는 계획도 포함돼 있다.

 

세번째 정책은 청년계층을 위한 채무조정 계획이다. 청년들의 신속한 회생 및 재기를 위해 신청 자격에 미달하더라도 이자를 감면해주거나 상환을 유예해줄 계획이다. 구체적으로는 34살 이하 저신용 청년의 소득과 재산을 고려해 이자 30~50%를 감면해준다. 여기에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2조원 규모 개인연체채권을 매입해 청년계층 채무 원금 감면을 지원하게 된다.

 

이러한 금융지원 정책은 문제점이 없지 않다. 예컨대 청년층 지원 관련해서만 봐도 이른바 ‘빚투’까지 탕감해줘야 하느냐는 문제제기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현재 국면에서는 일련의 선제 정책이 필요하다. 금융지원은 대출 자체가 부실화됐을 때 금융시스템에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을 예방한다는 의미가 있다. 주택담보대출의 경우도 선진국보다 변동금리가 많은 대출 관행을 교정한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런 필요에도 불구하고 금융정책 역시 실행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재정이 뒷받침돼야 한다. 채무나 이자를 조정하려면 누군가는 반드시 손해를 봐야 한다. 일단 새출발기금 30조원, 안심전환대출 40조원이 필요하다. 일부는 준비돼 있지만 새롭게 기금을 마련하거나 예산을 편성해야 하는 항목이 여럿이다.

 

애석하지만 현재 윤석열 정부의 재정 공간은 형편없이 좁아져 있다. 위기의 순간에 필요한 재정 소요는 늘었는데, 감세를 고집하고 건전 재정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수는 줄인다면서 적자국채를 발행할 계획도 없다.

 

한국자산관리공사의 새출발기금을 이용해 소상공인·자영업자의 부실채권을 인수하려면 공채를 발행해 자금을 마련해야 하고, 공채를 발행하려면 정부 출연을 통해 기본자산을 확충해야 한다.

주택담보대출 차주의 변동금리를 고정금리로 전환해주기 위해서는 내년에 최소 20조원의 예산이 편성돼야 한다. 하지만 이런 재정지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재정전략회의에서도 전혀 논의되지 않았다.

 

일부 정책은 은행의 자발적 협조를 요청하는데, 지금이 쌍팔년도도 아니고 배임 위험 때문에 금융당국에 협조하고 싶어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금융당국의 요청을 대놓고 거부할 수 없는 은행들은 협조하는 척하며 넘어가려 할 것이다.

 

말만 많고 어떻게 실행할지 구체적인 예산계획은 없는 이 상황에서, 다들 노력하는 척만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우석진 |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