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배은망덕’을 장려해야 정치가 산다

道雨 2022. 8. 8. 10:41

‘배은망덕’을 장려해야 정치가 산다

 

 

“감정 온도계에서 측정된 정당 간 적개심은 오늘날 인종적·종교적 적개심보다 훨씬 강렬하다.”

 

미국 정치학자 로버트 퍼트넘이 최근 번역·출간된 <업스윙: 나 홀로 사회인가 우리 함께 사회인가>에서 한 말이다.

 

그는 통혼 문제를 예로 든다. 자식이 반대 정당 열성당원과 결혼하는 걸 반대하는 부모들이 점점 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반대 비율은 1960년에서 2010년에 이르는 사이에 민주당원들 사이에서는 4%에서 33%로, 공화당원들 사이에서는 5%에서 49%로 증가했다고 한다.

 

그는 이런 우울한 결론을 내린다.

 

“지난 50년 동안에 정치적 파벌주의는 종교를 대체하여 미국 내 ‘부족적’ 파벌주의를 형성하는 주요 근거가 되었다.

 

그런 파벌주의엔 증오와 혐오의 날이 서 있다. 미국에서 2019년에 이루어진 한 조사에 따르면, 거대 양당(민주당·공화당) 지지자의 40% 이상이 상대편을 ‘노골적인 악마’로 규정했다. 미국 민주당 지지자의 20%, 공화당 지지자의 16%가 상대편 구성원들이 “그냥 다 죽어버리면… 한 국가로서 더 나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대답했다고 하니, 이게 도대체 무슨 ‘정당 민주주의’라는 건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한국의 정당 간 적개심도 미국 이상으로 심각한 수준이다. 통혼 문제에서도 부모 이전에 본인들이 스스로 정치 성향을 결혼의 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일부 조사에선 미혼 남녀의 57%가 ‘정치 성향이 다르면 소개팅으로 만나기 싫다’고 답했으며, 이를 반영하듯 남녀를 연결해주는 데이팅 앱들은 가입자들이 필수적으로 작성해야 하는 기본 정보 문항에 ‘정치 성향’을 묻는 질문을 추가했다.

 

독자들의 이런 ‘수요’를 감안한 탓인지, 비교적 점잖던 신문들마저 기사 논조와 내용이 날이 갈수록 당파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치닫고 있는 것 같다.

좋다. 모두들 열심히 싸워보자. 다만 한가지 제안을 꼭 하고 싶다.

 

“내 몸엔 민주당의 피가 흐른다”거나 “내 몸엔 국민의힘의 피가 흐른다”는 식으로, 정당과 피를 연결짓는 일은 하지 않으면 좋겠다. 달리 말해, 자신의 정치 성향이 타고난 디엔에이(DNA)라도 되는 양 우기지는 말자는 것이다.

 

이건 매우 중요하다. 상대편을 악마로 보는 건 소속 정당과 정치적 성향이 고정불변의 것이라는 전제가 있기 때문이다. ‘반고정’으로 하면서 ‘이동성’이나 ‘유연성’을 폭넓게 허용하자. 소속 정당과 정치적 성향을 바꿀 만한 이유가 인정되면, ‘배신’이니 ‘변절’이니 하는 어리석은 욕도 하지 말자. 이게 바로 정치에서 증오와 혐오를 억누르면서 상호 소통을 가능케 하는 필수 조건이다.

 

현실은 어떤가?

 

정치인들은 당원이나 지지자들의 충성도를 높이기 위해 상습적으로 부족주의 정서를 자극하는 언어를 구사하고 있다. 그런 언어 중 대표적인 게 바로 ‘배은망덕’이라는 단어다.

배은망덕은 남에게 입은 은덕을 잊고 배반하는 것을 뜻한다. 지난 수년 동안 한국 정치판에서 가장 많이 외쳐진 사자성어가 아닌가 싶다.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가 지적했듯이, “배은망덕은 악행의 근본이다”. 고로 우리 모두 배은망덕을 저지르지 않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자. 단, 그건 사적 영역에 국한된 것임을 분명히 해두자.

 

공적 영역에서 배은망덕이란 있을 수 없다. 물론 공적 인물이 자신의 소임을 저버리면 국민이나 유권자에 대해 배은망덕을 저질렀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이 단어를 그런 식으로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

권력자의 인사권이나 배려에 의해 어떤 공직을 맡게 된 사람이, 그 권력자의 뜻에 맹종하지 않고 반하는 일을 할 때에, 권력자의 추종자들이 비난의 용도로 들고나오는 단어가 바로 배은망덕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게 참 웃기는 말이다. 누구건 공적 영역에서 배은망덕을 입에 담는 것은, 스스로 공사 구분을 하지 않는 부족주의자라는 걸 폭로하는 증거임에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당당하기만 하니, 이 노릇을 어찌할 것인가. 대통령의 인사권에 의해 고위 공직에 오른 사람들은 모두 다 대통령에게 은덕을 입었으니 죽을 때까지 충성해야 한다는 말인가? 왕조 시대도 아니거니와 조폭의 세계도 아닐진대, 이게 무슨 망발인가.

 

이런 시대착오적인 생각이 이른바 ‘줄서기’와 부족적 파벌주의를 키우고, 합리적인 소통을 죽이면서, 반대편에 대한 증오와 혐오를 창궐케 한다. 오히려 배은망덕을 장려해야 다른 부족에 대한 증오와 혐오로 먹고사는 기존 부족주의 정치를 깨는 게 가능해질 것이며, 그 지긋지긋한 지역주의 투표 성향과도 작별을 고할 수 있을 것이다.

 

 

 

강준만 |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