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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 우왕좌왕 외교, 병자호란 부른 인조보다 우려스럽다

道雨 2022. 8. 8. 11:30

윤 대통령 우왕좌왕 외교, 병자호란 부른 인조보다 우려스럽다

 

 

* 영화 <남한산성>에서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인조와 신하들이 항복이냐 계속 싸울 것이냐를 두고 논쟁하는 장면. CJ 엔터테인먼트 제공

 

 

 

중국 대륙의 제국들과 장기간 긴밀한 관계였던 한반도는 어떻게 중국의 일부가 되지 않았을까.

 

오드 아르네 베스타 예일대 교수는 <제국과 의로운 민족>에서 지식과 정체성을 그 이유로 꼽는다. 조선 엘리트들은 명·청 제국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국으로부터 독립적 상태를 유지할 방안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한반도의 사람들이 일찍부터 중국과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중요했다.

‘의로운 민족’이란 외세에 저항한 의병 등에서 나타나는 ‘의’(義)의 개념이 한반도인들의 민족 정체성의 토대가 되었음을 뜻한다.

 

한반도는 거의 대부분 시기 동안 내정의 자주성을 유지했지만, 중국 대륙의 제국은 동아시아 패권을 둘러싸고 다른 강대국과 경쟁하는 경우에는 한반도에 군사적·정치적으로 개입하려 했다. 임진왜란 시기 명의 출병, 병자호란,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청일전쟁, 한국전쟁 등이 그런 사례들이다.

 

노르웨이 출신 역사학자인 베스타 교수는, 강대국의 관점이 아닌, 제3세계 인민들의 경험을 중시하는 냉전사와 중국 국제관계 연구자로 유명한데, 한반도가 중국의 영향을 일방적으로 받는 곳이 아니며, 중국에 특별한 영향을 미치는 곳임을 강조한다.

 

이런 역사의 관성은 수교 30주년을 앞두고, 악화하고 있는 한중관계에도 작용하고 있다. 중국이 사드와 ‘칩4 동맹’ 문제에서 한국을 거세게 압박하는 것은, 한국의 사드 추가 배치나 반도체 동맹 참여가 미-중 사이에서 전략적 균형을 미국 쪽으로 훨씬 기울게 할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한국이 쿼드 가입을 추진하거나 한·미·일 군사협력을 강화한다면, 같은 이유로 중국은 거센 위협이나 보복을 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은 한국과의 외교에서 미국과의 ‘제국 간’ 대결을 주요하게 고려하고 있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강조할수록 ‘팽창과 위계’라는 제국의 특성이 강해지고, 중국이 ‘전통적 세력권’으로 여기는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경향이 강해진다.

 

대만 문제도 한중 관계에서 점점 더 ‘위험한’ 이슈로 등장할 것이다. 중국 지도부는 언제나 대만 통일을 목표로 삼았지만, 마오쩌둥 시기에는 건국, 덩샤오핑~후진타오 시기에는 경제성장이라는 중요한 성과가 있었다. 중국이 강대국이 되었지만, 초고속 성장이 끝나가고, 불평등과 인구 감소 등이 심각해진 지금, ‘대만 통일 실현’은 시진핑 주석의 통치정당성을 떠받치는 핵심 ‘공약’인 셈이다.

 

중국의 군사력도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강해졌다.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을 ‘명분’으로 대만을 포위하는 군사훈련을 시작한 중국은, 앞으로 ‘대만 침공 예비 훈련’에 가까운 군사적 압박과 ‘봉쇄’를 지속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더러 대만 문제가 ‘중국의 내정’임을 인정하라는 압박도 거세질 것이다.

 

미-중 사이 선택을 강요받는 이런 사안들에서 한국이 어떤 결정을 하느냐는, 한국의 미래뿐 아니라 세계질서에도 큰 변수가 된다. 사안들의 의미와 여파를 제대로 파악하고, 원칙을 명확히 정한 뒤에는, 어느 쪽의 압박과 위협에도 쉽게 흔들려서는 안 된다. 그래야 한국을 좌지우지하려는 강대국들의 압력을 줄일 수 있다.

 

퓨리서치의 올해 여론 조사에서 한국인의 80%가 중국에 비호감을 표하면서, ‘국내 정치에 대한 중국의 간여’를 가장 주요한 원인(54%)으로 꼽은 것은 어떤 의미일까. 중국이 한국을 ‘종주국-속국’ 관계로 대하려 한다는 여론의 우려를 읽을 수 있다.

 

한국은 ‘전환시대의 준비’를 정밀하게 해나가야 한다. 한국이 수출한 부품과 중간재를 활용해 중국이 완제품을 세계로 수출하는 한-중 경제 공생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다. 중국의 기술 발전과 자급자족을 강조하는 정책,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결과다.

북-중-러 공조가 긴밀해지면서, 북핵·미사일 문제 해결에서 중국의 의미 있는 협력을 기대하는 것은 지금으로써는 어렵다. 중국에 대한 과도한 시장·원자재 의존을 줄이고, 평화를 지키면서 대화 복원을 준비하는 한국의 일관된 정책이, 조용하되 정교하게 진전되어야 한다.

 

* 1992년 8월24일 중국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이상옥 외무부 장관과 첸치천 중국 외교부장이 한중 외교관계 수립에 관한 공동성명에 서명한 뒤 악수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윤석열 대통령이 대만 방문 뒤 한국에 온 펠로시 미 하원의장과 접견 대신 통화를 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우왕좌왕 행보는 국제적으로도 조롱거리가 되었다. 중국 자극을 우려한 외교였다고 해도, 전날 밤 연극 관람과 뒤풀이 사진을 공개하고, 접견 여부에 대한 대통령실의 발언이 계속 바뀌는 등, 외교 컨트롤타워가 작동하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는 사태가 벌어졌다.

 

얼마 전에는 한덕수 국무총리가 “중국 경제가 거의 꼬라박는 수준으로 가고 있다”고 큰소리를 쳤지만,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될 경우에 대비한 경제적 준비는 없다고 우려하는 이들이 많다.

 

지금의 국제질서 변동은 명·청 교체기에 비유되곤 한다. 당시 명에 대한 의리에 얽매인 인조의 무능 외교가 병자호란의 참화를 불렀고, 인조가 청의 홍타이지에게 삼궤구고두(세번 절하고 아홉번 머리를 조아림)를 하는 치욕을 당했다.

 

구범진 서울대 교수는 만주어 사료까지 종합적으로 연구한 <병자호란, 홍타이지의 전쟁>에서 조금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병자호란 전야 조선 조정은 나름대로 청의 침공 정보를 파악하고 지구전 방어 전략을 준비했으나, 조선의 복속을 황제 즉위의 핵심 명분으로 여긴 홍타이지가 친정에 나섰고, 청군이 초고속 진군 작전을 써서 조선의 허를 찔렀다는 것이다.

 

한반도가 대륙의 제국에 대응하는 것은 그만큼 어렵다.

목소리를 높이지만 대책이 없고, 원칙 없이 우왕좌왕하는 윤 대통령의 외교는 인조보다 더 무책임하고 우려스럽다.

 

 

 

박민희 |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