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북·중·러 ‘북방 삼각관계’의 귀환

道雨 2022. 9. 19. 09:34

북·중·러 ‘북방 삼각관계’의 귀환

 

 

 

 

냉전은 진영의 대결이었다.

한반도에서도 북한, 중국, 소련의 북방 삼각과 남한, 미국, 일본의 남방 삼각이 대립했다.

 

냉전이 끝나자, 진영도 무너졌다. 한국은 탈냉전 이후 중국과 러시아와 협력적 관계로 전환했고, 북방 삼각관계도 느슨해졌다.

그런데 최근 미-중 전략경쟁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으로, 30여년 만에 다시 북방 삼각관계가 꿈틀거리고 있다. 이 새로운 질서 변화는 한반도 정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북방 삼각관계는 세개의 양자관계로 이루어져 있다.

 

중-러 관계는 푸틴-시진핑 체제에서 점차 ‘사실상의 동맹’ 관계로 진화하고 있다. 1970년대 이후 소련과 미·중의 대결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미국과 중·러의 대결로 전환했다. 양국 정상회담도 빈번해졌고, 경제협력 수준도 높아졌다.

2021년 중국은 러시아에서 원유의 16%, 석탄의 15%, 천연가스의 10%를 수입했는데, 2022년 들어 에너지 수입이 급격히 늘었다. 러시아는 유럽으로 향하던 가스관을 닫고, 이제 중국으로 가스관을 연결하고 있다.

군사 분야에서, 특히 최신 전투기와 미사일 방공시스템 등 전략무기 협력이 늘고, 양국이 주도하는 군사훈련의 규모가 커졌다.

 

북-중 관계는 남북, 북-미 관계가 악화하면서, 더욱 긴밀해지고 있다.

2018년 봄을 우리는 남·북·미 삼각관계의 선순환으로 기억한다. 당시 북-미 관계는 남북의 특사회담으로 가능했다.

그러나 당시 북한은 또 하나의 삼각관계에 신경을 썼다. 바로 북·미·중 삼각관계다.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나서면서, 북한은 중국과의 관계를 튼튼히 했다.

북한은 미-중 전략경쟁을 유리하게 활용하려고 했지만, 2019년 2월 하노이 회담이 실패하자, 중국에 편승했다. 이후 북-중 관계는 과거에 보기 어려운 전략적 협력으로 돌아섰다.

 

북-러 관계도 달라졌다. 탈냉전 시대에 러시아는 남북 균형 외교를 유지해왔으나, 앞으로는 아니다. 북-러 관계로, 국제사회의 북한 제재 정책은 한계를 드러낼 것이다. 러시아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으로 존재하는 한, 북한의 전략 도발에 대한 유엔의 추가 제재는 어렵다.

코로나 상황이 끝나고, 북한의 국경이 열리면 북-러 경제관계도 달라질 것이다. 북한은 러시아의 에너지가 필요하고, 러시아는 북한의 노동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런 협력은 현행 유엔 결의에서 제재 위반이다. 제재 위반에 대해 할 수 있는 조치가 추가 제재인데, 북한과 러시아 모두 추가 제재를 무시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은 1960년대 중국과 소련이 분쟁을 겪을 때, 실리 외교로 이익을 본 경험이 있다. 현재 남북 관계와 북-미 관계가 악화하면서, 북한은 중국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었는데, 러시아의 등장은 새로운 북방 삼각관계의 역동성을 의미한다.

세개의 양자관계의 역동성과 별개로 삼자 협력도 늘어날 것이다.

앞으로 중·러가 주도하는 군사훈련에 북한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다. 지정학적 중간지대인 한반도에서, 북방과 남방의 군사질서가 대립하면 그만큼 긴장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한반도 질서에서 북방 삼각관계의 귀환은 매우 중대한 변화다. 그동안 남·북·미 삼각관계로 문제를 해결하던 시대가 끝났다. 북한은 남방의 문을 닫고,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생존을 추구할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북방의 문이 닫히고 있고, 신남방정책도 길을 잃었다. 일부에서는 현재의 정세를 신냉전으로 해석하고, 진영을 선택하자고 주장한다.

동의하기 어렵다.

북한은 남방을 포기하고 북방에서 활로를 찾을 수 있을지 몰라도, 우리는 북방을 포기하기 어렵다.

 

진영이 이익을 보장하지도 않는다. 미국이 주도하는 공급망의 진영화는 미국 제조업의 부흥을 위해서지, 결코 진영 내 이익 조화를 의미하지 않는다.

 

세계화 시대의 종말은 복합적인 경제위기를 의미한다. 광물과 에너지 가격의 상승, 생산의 국내화에 따른 비용 상승, 그리고 국제적인 분업체계의 혼란이 만들어내는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난다고 해소되지 않는다.

 

복합위기의 시대에 진영의 경계에 선 국가들은 균형을 잡으며 국익을 추구한다. 인도는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철저하게 실리를 선택하고, 튀르키예는 지정학적 위치를 활용해서 중재 외교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세계적인 지정학적 중간국가들 역시 진영의 경계를 넘나들며, 이익을 추구한다.

 

우리도 진영에 갇히면, 미래가 없다. 냉전 시대의 대한민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무장지대가 남북을 가르고 세계를 가르는 분단의 단층지대로 변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김연철 | 전 통일부 장관·인제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