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경계를 넘는’ 순간

道雨 2022. 10. 28. 09:38

‘경계를 넘는’ 순간

 

 

 

“냉전이 해체된 이후 민주주의 붕괴는 대부분 군인이 아니라 선출된 지도자의 손에 의해 이뤄졌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지도자가 민주주의를 파괴할 때, 쿠데타나 계엄령 선포 같은 ‘경계를 넘는’ 명백한 순간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의 비상벨은 울리지 않고, 사람들 대부분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 못하며, 자신이 여전히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고 믿는다.”

 

트럼프 정부 출범 초기부터 미국 민주주의의 위험을 말했던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 하버드대 교수가 2018년 펴낸 <민주주의는 어떻게 무너지는가>라는 책 서문에 나오는 구절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얼마 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생각했다. 아무리 선출된 지도자가 하는 행위라고 하더라도, 어떻게 사람들 대부분이 모를 수 있을까?

 

저자들은 말한다.

 

“선출된 독재자는 사법부를 비롯한 중립기관들을 자신의 입맛대로 바꾸거나 무기로 활용하고, 야당 정치인과 판사, 비우호적인 언론인을 체포하거나 추방하며, 대형 언론사를 폐쇄하고, 민간영역을 매수하며, 정치게임의 규칙을 바꿔서 경쟁자에게 불리하게 운동장을 기울인다. 선거를 통해 권력을 장악한 독재자의 시나리오에서 가장 비극적인 역설은, 그가 민주주의 제도를 합법적으로 활용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죽인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체포나 매수, 협박당하는 정치인이나 언론인, 비판적 의견을 공표한 일부를 제외한 시민 대부분은 ‘여전히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의문은 남는다.

적어도 경계를 넘는 그 순간에는 위법하거나 위헌적인 일이 발생하지 않을까?

어떻게 합법적인 방법만으로 민주주의 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을까?

 

저자들의 답은 이렇다.

 

“많은 독재정권의 민주주의 전복 시도는 의회나 법원의 승인을 받았다는 점에서 ‘합법적’이다. 심지어 사법부를 효율적으로 개편하고, 부패를 척결하고, 혹은 선거절차를 간소화한다는 명분으로 민주주의를 ‘개선’하려고까지 한다. 신문은 똑같이 발행되지만, 정권의 회유나 협박은 자체 검열을 강요한다. 시민들은 정부를 비판할 수 있지만, 세무조사를 받거나 소송을 당하게 된다.”

 

그런데 검찰 기소, 법원 판결, 세무조사, 의회 입법은 모두 합법적인 행위다. 검사와 판사, 국세청 직원, 국회의원이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하는 합법적 행위를 하는 것일 뿐.

 

저자들의 주장처럼 합법적인 방법으로 민주주의를 죽일 수 있다고 하더라도, 사전에 시민들이 알아차릴 징후는 없을까? ‘경계를 넘는 그 순간’이 오기 전에 말이다.

 

저자들은 경계를 넘기 전에 두 단계가 있다고 한다.

 

‘민주주의 기반이 아무리 튼튼하다 해도 극단적 선동가는 어느 사회에나 있기 마련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시험은 이러한 인물이 등장하는가가 아니라, 정치지도자와 정당이 나서서 이러한 인물이 당내 주류가 되지 못하도록 차단하고, 이들에 대한 지지와 연합을 거부하고, 필요하다면 다른 당의 민주주의 후보자를 지지하거나 경쟁세력과 연대함으로써 이들이 권력을 잡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는가이다. 기성 정당이 두려움과 기회주의, 혹은 판단 착오로 인해 극단주의자와 손을 잡을 때 민주주의는 무너진다.’

 

그리고 그다음 단계는 이러하다.

 

‘일단 잠재적 독재자가 권력을 잡으면 민주주의는 두번째 중요한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그가 민주주의 제도를 전복하지 못하도록 제어할 수 있는가?

그런데 기존 헌법상 제도만으로는 실질적 제어가 불가능하다.

정당체제와 시민사회가 작동해야 하고, 더불어 두가지 민주주의 규범이 필요하다.

정당이 상대 정당을 정당한 경쟁자로 인정하는 상호 관용과 이해, 그리고 제도적 권리를 행사할 때 신중함을 잃지 않는 자제. 이 두가지 규범이 무너질 때 헌법에 명시된 권력분립은 우리의 기대와 달리 민주주의 보호막으로 기능하지 못한다. 독재자는 민주주의 제도를 정치 무기로 삼아 마음껏 권력을 휘두를 수 있다.’

 

또 저자들은 말한다. 선출된 독재자는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하는 게 아니라, 양극화된 정당정치를 토양으로 오랜 기간에 걸쳐 만들어진다고.

 

우리 정치가 지금 어느 단계에 있는지에 관한 판단은 모두 다를 수 있겠지만, 경계를 넘는 그 순간이 오기 전에 관용과 자제의 규범이 작동되기를 바란다.

 

 

 

서복경 | 더가능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