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전 부처의 산업부화와 이태원 참사

道雨 2022. 11. 10. 09:25

전 부처의 산업부화와 이태원 참사

 

 

 

이태원 참사가 발생하기 이틀 전인 10월27일 정부는 윤석열 대통령 주재 비상경제민생회의를 개최했다. 그 회의는 생중계됐다. 강원도지사발 레고랜드 사태로 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진 와중이라, 금융시장 안정대책을 논의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정작 의제는 중장기 과제인 산업육성 정책이라 한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모든 부처가 산업부가 돼야 한다’는 대통령의 발언이었다. 산업부, 정확히 산업통상자원부는 정부의 지원을 통해 산업을 육성하는 것이 주된 업무다. 1960~70년대 산업화 초기에 중추적 역할을 했지만, 그 후에는 점차 그 역할이 줄어들었고 또 줄여야 한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였다.

이런 와중에 모든 부처가 산업부처럼 되라는 대통령의 지시는, 한국의 시간을 반세기 전으로 돌리는 것일 뿐 아니라, 우리 사회를 위험하게 만드는 발언이다.

 

모든 부처는 각자 고유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고, 국방부는 나라를 지켜야 하고, 국토교통부는 국토의 균형발전과 교통안전을 책임져야 한다. 환경부는 국민의 쾌적한 삶과 환경의 지속가능성을 살펴야 하고, 고용노동부는 고용촉진과 산업안전을 책임져야 한다.

 

여러 부처가 있다는 것은 사회가 지향해야 할 다양한 가치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국가는 각 부처의 정책들을 모아서 이 가치들의 균형과 공존을 이룬다.

그런데 모든 부처가 산업부처럼 되라고 하는 것은, 부처의 고유한 목표와 가치를 산업육성이라는 목표의 하위에 두라는 지시나 마찬가지다.

 

대통령의 이 발언이 그저 산업육성을 강조하는 차원에서 한 것일 뿐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대통령의 발언과 메시지는 부처와 관료들에게는 실로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중앙정부 고위공무원들의 안테나는 늘 대통령실로 향해 있다. 대통령의 관심이 무엇인지를 살피고,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도 되는 일, 할 수 있는 말과 해서는 안 되는 말을 가린다.

 

국무총리는 이태원 비극이 참사냐 사고냐, 희생자냐 사망자냐라는 간단한 질문도 답을 못 했다. 거의 모든 국민이 참사고 희생자라고 생각하지만, 대통령실이 그것을 선뜻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무총리조차 이 단순한 질문에 대답할 수 없는 것이 대통령과 관료의 관계다.

 

대통령의 말은 정부가 지향하는 가치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모든 부처가 산업부처럼 되라고 했으니, 아마 부처들은 나름의 산업육성 지원책과 규제 완화책을 내놓을 것이다. 환경부는 환경산업 육성책을, 국방부는 방위산업 육성책을, 복지부는 복지서비스기업 지원책을, 교육부는 디지털 교육서비스업 지원책을 보고할지도 모른다.

부처의 관심이 여기에 쏠려 있으면, 노동자의 안전, 교육의 형평성, 환경의 지속가능성, 문화의 포용성 같은 가치는 부지불식간에 희생되거나 뒷전으로 밀린다.

 

정부 지원을 통한 산업육성 정책은 민간주도 경제를 만들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목표와 상충된다. 왜 이런 모순이 발생했을까?

많은 사람이 지적하듯 ‘자유시장경제’라는 구호만 있을 뿐, 복잡한 경제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구체화된 정책이 없기 때문이다.

 

빈 공간이 있으면 결국 무엇인가로 채워지게 마련이고, 그 내용은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것으로 채워지기 일쑤다. 과거에 봐왔던 것, 주변에서 흔히 들었던 것으로 채워진다. 정부 지원을 통한 산업육성, 환경과 안전에 대한 규제 완화를 통한 기업 지원이 그것들이다. 그래서 산업육성 정책이 정책의 공백을 자연스럽게 메운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나라의 경제를 튼튼하게 하고 민생을 지키는 길이라고 착각한다.

 

한국 사회는 산업화 과정에서 기업과 산업의 성장이라는 가치에 이미 지나치게 경도돼 있던 사회다. 21세기 한국에 더 필요한 가치는 안전과 포용, 환경과 형평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부가 과거의 가치에 골몰할 때 이런 가치들은 소홀히 된다.

 

신념에 찬 대통령의 발언을 들으며, 이태원과 같은 참사가 또 발생하지 않을지, 산업 현장에서 더 많은 죽음이 발생하지 않을지 걱정됐다.

대통령이 이 비극에 진심으로 공감하고 책임을 회피하지 않으려 하는 모습, 그것이 기울어진 가치의 균형을 바로잡는 첫발이며 부처와 관료들에게 주는 신호가 될 것이다.

 

 

 

박복영 | 경희대 교수·전 청와대 경제보좌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