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그런데, 경찰은 안 돼

道雨 2022. 11. 10. 09:58

그런데, 경찰은 안 돼

 

 

 

 

일부 검사들을 빼면 검경 수사권 조정이라는 큰 뜻에 반대했던 이는 별로 없었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이 형사소송법을 졸속으로 처리할 때도, 무소불위한 검찰의 권한을 줄인다는 대전제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그럼 이제 경찰의 권한이 커질 텐데, 경찰은 잘할까?

누군가 묻는다면 내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검찰은 나빠. 그런데 경찰은 안 돼.”

 

편견에서 나온 말이라는 걸 안다. 나쁘지도 않고 안 되지도 않는 경찰관이 있다는 것도 안다. 경찰이 안 된다고 했지, 검찰은 된다고, 법원은 된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검찰이 우리 사회에 끼친 해악이 너무 커서 검찰의 권한 일부분을 경찰에 넘기는 게 대안처럼 보이지만, 세상일이 그렇게 단순하면 얼마나 좋을까. 시민에게 중요한 건 검찰이든 경찰이든 그들이 가진 권한의 크기가 아니라, 그들이 시민과 사회를 위해 짊어지는 책임의 크기라는 걸, 156명의 희생을 치른 뒤에 다시 깨닫는 중이다.

 

서울 한복판에서 156명이 희생되고, 경찰 수뇌부의 “난 몰랐다”는 고백 퍼레이드가 이어졌다. 참사가 발생한 10월29일 밤 10시15분에서 2시간가량이 지난 30일 0시14분에, 그것도 등산을 마친 뒤 캠핑장에서 자느라 문자와 전화를 받지 못하다 첫 보고를 받았다는 경찰청장, 29일 저녁 8시36분에 퇴근한 뒤 3시간이 흐른 밤 11시36분에 상황보고를 받았다는 서울경찰청장, “압사할 것 같다”는 첫 112 신고가 접수된 29일 저녁 6시34분부터 100건 가까운 신고가 들어오는 동안 112상황실을 비웠다가 밤 11시39분에야 복귀했다는 서울경찰청 상황관리관(인사교육과장), 밤 9시24분 집회관리를 마치고 설렁탕집에 갔다가 9시47분에 나온 뒤 800m 떨어진 거리를 차로 이동하면서 1시간 이상을 길에서 소모한 용산경찰서장….

‘이 조직은 안 되겠구나’ 말고 다른 어떤 진단을 내릴 수 있을까.

 

뒤늦었지만 고백이라도 해서 다행인가 싶었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서울에 없었다. 상황실에 없었다. 이태원에 없었다. 여기에 ‘보고가 없었다’가 따라붙는다. 이걸 이렇게 바꿔보면 어떨까.

“참사 현장에 늦게 도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늦게 파악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고의로 의식적으로 직무를 포기한 게 아니다.”

 

시민에게 하는 말일까. 아닐 것이다.

근무지 무단이탈, 직무의 의식적인 포기는 그동안 법원이 직무유기죄나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를 판단하는 기준이었다. 그들은 지금 피의자로서 스스로를 변호하는 중이다. 세월호 참사 당시 해양경찰청장(업무상 과실치사상),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 센터장(직무유기) 등이 이런 변론을 펼쳐 무죄 선고를 받았다. 같은 비극을 겪었지만, 깨달음마저 다 같은 건 아니다.

 

“압사당할 것 같다”는 112 신고가 끊임없이 이어지던 그 시간 경찰 수뇌부는 대통령과 대통령실만 바라보고 있었다. 29일 밤 서울경찰청장의 퇴근 전 마지막 무전은 ‘집회 관련 격려’였다고 한다. 용산경찰서장은 ‘집회관리’가 끝난 뒤에야 저녁을 먹었다고 했다. 이날 경찰의 관심은 온통 대통령 반대 집회에 쏠렸다. 이날뿐만이었을까. 윤석열 정부는 국정과제 첫머리에 ‘범죄로부터 안전한 사회 구현’을 담았고, 경찰청장은 지난 8월 취임 직후 ‘마약과의 전쟁’을 전략과제 1호로 선포했다.

 

그런데 어쩌나. 충심이 부족했는지 대통령은 이제 경찰, 정확히는 경찰 수뇌부를 내치려 한다. 대통령은 7일 “납득이 안 된다”는 말까지 써가며 경찰을 질타했고, 다음날 경찰청 특별수사본부는 경찰청장과 서울청장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경찰 수뇌부가 늘 해오던 방식, 문제가 생기면 아래로 책임을 전가하는 방식으로 일선 경찰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중이다.

 

인사권자가 가리키는 방향대로 움직였을 뿐이라고, 경호의 최고 단계라는 ‘심리경호’까지 한 게 무슨 잘못이냐고, 그래서 억울하다면, 역시 경찰은 안 된다고 말할 수밖에.

인사권자에게 충성하느라, ‘국민의 생명·신체 및 재산의 보호’(경찰관 직무집행법 2조 1항)라는 존재 이유를 잊어버린 경찰, 경찰은 그래서 안 된다.

 

 

 

박현철 | 콘텐츠기획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