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위대한 피터 두시’와 전용기 탑승 금지 사건

道雨 2022. 11. 18. 09:29

‘위대한 피터 두시’와 전용기 탑승 금지 사건

 

 

 

백악관 브리핑룸에는 눈에 확 띄는 기자가 있다.

앉아서도 남들보다 머리가 하나 더 있어 보일 정도로 크다. 금발을 착실히 뒤로 넘긴 모습도 인상적인 그는 앞줄에서 대변인과 설전에 빠지는 경우가 잦다.

바로 <폭스 뉴스>의 기린아 피터 두시다.

 

이 극우 방송의 최전방 공격수는 언론 브리핑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그 참모들 속을 후벼 파는 기회로 삼는 데 명수다. 15일 대선 출마를 선언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그의 활약상에 감동해 “위대한 피터 두시”라고 부른 바 있다.

 

두시의 싸움닭 같은 태도는 코로나 감염으로 못 나오다가 브리핑룸으로 복귀한 올해 1월10일 장면에 잘 담겼다. 그는 젠 사키 당시 백악관 대변인에게, 자기는 백신을 3회 접종받고도 감염됐다며, 대통령이 코로나를 “비접종자의 전염병”이라고 말한 게 사리에 맞냐고 따졌다. 또 “당신도 3회 접종받고도 감염됐잖냐”고 몰아붙였다.

사키 대변인은 자기는 증상이 가벼웠다고 했다. 또 접종자 입원율과 치사율이 비접종자보다 훨씬 낮다는 데이터를 제시했다.

두시는 그래도 감염되는 것은 사실이라며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백악관의 접종 독려에 말꼬리 잡기에 집중한 것이다.

 

두시는 바이든 대통령에게도 빈정거리는 어투로 신경을 건드리는 질문을 하기 일쑤였다. 백악관에선 두시가 일부러 대통령이나 대변인을 당황하게 하는 것 아니냐는 불평이 터져 나왔다.

 

그런 관측이 맞다면 바이든 대통령은 제대로 걸려들었다. 올해 1월24일 두시는 대통령 주재 인플레이션 대책회의를 취재했다. 그는 기자들이 퇴장하는 어수선한 상황에서 고개를 돌려 건들대는 자세로 “중간선거를 앞뒀는데 인플레이션이 정치적 부채라고 생각하냐”고 소리쳤다.

약이 오른 바이든 대통령이 혼잣말하듯 “진짜 멍청한 개××네”라고 한 게 그대로 영상에 담겼다. 쌓인 불만 탓에 무심결에 욕이 새어 나온 듯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동남아 방문 때 <문화방송>(MBC) 기자의 전용기 탑승을 금지했다는 소식에, 바이든 대통령의 욕설 사건과 무엇이 비슷하고 무엇이 다른가 하는 의문이 생겼다. 둘 다 최고 권력자가 언론에 격하게 불만을 터뜨린 경우라서다.

 

둘 다 일어나선 안 될 일이지만 전후 상황까지 고려하면 전용기 탑승 금지 사건이 훨씬 심각하다. 그건 무엇보다 취재 자체를 제한한 ‘업무방해’다.

 

사후 수습과 태도도 천양지차다. 발끈해서 감정을 토설한 바이든 대통령은 곧 두시에게 전화해 사과했다. 사고 치고, 욕먹고, 사과하는 과정까지 스스로 책임진 셈이다. 물론 두시는 그날 저녁 백악관을 배경으로 한 생중계에서 즐겁게 무용담을 늘어놨다.

 

윤 대통령은 ‘뉴욕 발언’으로 바이든 대통령처럼 욕설 논란이 제기된 상황에서, 사과는커녕 매까지 들었다. 전용기 탑승 금지 명목으로 ‘국익’을 내세운 대목은, 깨끗이 사과한 미국 대통령과 너무 대조적이다. <문화방송> 기자가 국익에 현실적인 위협이라면 아예 대통령실 출입을 막아야 하잖나?

 

국익을 자기 체면과 동일시하고, 전용기를 사유재산쯤으로 여기는 건 아닐까? ‘짐이 곧 국가’라는 식의 사고방식이라면 사태가 좀 이해된다.

 

민주국가의 으뜸가는 공인은 가장 신랄한 질문과 비판을 감수해야 한다. 초등학생 생일날 마음에 드는 친구들만 초대하듯 언론을 상대하면 곤란하다. 바이든 대통령은 두시의 고약한 질문을 무시하곤 하지만, 그를 취재 현장에서 내쫓으라고 하지는 않는다.

‘취재 거부의 자유’는 딱 그 정도여야 한다.

 

 

 

이본영 |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