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기울어진 노사관계 외면한 노동시간 유연화, 위험하다

道雨 2022. 12. 13. 10:26

기울어진 노사관계 외면한 노동시간 유연화, 위험하다

 

 

 

고용노동부 의뢰로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을 검토해온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12일, 연장근로 정산 기간을 ‘월 단위’ 이상으로 늘리는 방안을 뼈대로 하는 권고안을 발표했다. 현재 ‘1주 12시간’인 연장근로 한도를 월, 분기, 반기, 연 단위로 관리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특정 시기에 일을 몰아서 시킬 수 있어 집중근로에 따른 과로 위험이 커진다.

‘노동시장 개혁’이라는 미명 아래, 재계의 숙원인 ‘노동시간 유연화’를 밀어붙여, ‘주 52시간제’를 무력화하려는 의도라고밖에 볼 수 없다.

 

장시간 노동에 대한 비판을 의식한 듯, 연구회는 노동자에게 근로일 사이 ‘11시간 연속휴식’을 보장하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이렇게 하더라도 한주에 최장 69시간을 몰아서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휴일 없이 일할 경우 한주 노동시간이 80.5시간까지 늘어난다. 노동시간 총량이 같더라도 특정 시기에 몰아서 일을 하면 몸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다.

 

고용노동부 고시는 뇌·심혈관계 질환 발병 전 1주일 이내의 업무시간이 발병 전 12주간의 평균보다 30% 이상 증가한 경우, ‘단기 과로’로 분류해 질병과 업무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한다. 연구회의 권고안은 선택근로제 정산 단위를 3개월로 확대하는 등, ‘몰아서 일하기’의 길을 터주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노동부와 연구회는 ‘노사 합의’와 ‘자율적 선택’을 강조한다. 연장근로 정산 기간을 확대하려면 과반수 노조 또는 ‘과반수 노동자를 대표하는 자’(근로자대표)와의 서면합의를 거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처럼 노사관계가 사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상황에서 노사 합의는 허울에 그칠 공산이 크다.

한국의 노조 조직률은 14%로, 다른 선진국과 견줘 턱없이 낮다. 근로자대표 제도도 대표를 뽑는 절차 등이 전혀 마련돼 있지 않아 민주적 정당성이 취약하다. 사용자 뜻대로 ‘노동시간 선택권’이 오남용될 우려가 크다는 얘기다.

 

정부는 그동안 유럽 국가들의 노동시간이 유연하다는 점을 들어 우리도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그 나라들의 연간 노동시간은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짧다.

지난해 한국의 노동시간은 1915시간에 이르지만, 독일은 1349시간, 프랑스는 1490시간에 불과하다. 한국의 노동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199시간이나 길다.

 

지금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노동시간 유연화가 아니라 노동시간의 단축이다.

 

 

 

[ 2022. 12. 13  한겨레 사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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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장근로 몰아치기 가능하게…재계 요구대로 ‘노동개악’

 

 

미래노동시장연구회 권고안
사실상 정부안 확정 밑그림

 

 

 

윤석열 정부 노동시장 개혁 방안 마련을 위한 전문가 집단인 미래노동시장연구회(이하 연구회)가 발표한 권고안은, 윤 대통령의 대선 공약과 정부의 국정과제를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이뿐만 아니라 파견법제 개선, 파업 때 대체근로 허용 등 경영계 숙원 사항들도 후속 과제에 포함돼, 노골적인 친정부·친기업 행보라는 비판이 쏟아진다.

 

12일 발표한 연구회의 권고안을 보면, 핵심 내용에 해당하는 연장근로시간 관리 단위 월·분기·반기·연 단위 확대는, 지난 6월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노동시장 개혁 방안의 핵심 과제로 꼽았던 내용이면서, 경영계의 대표적인 건의사항이었다. 지난 6월, 당시 주 단위로 관리되던 연장근로(주 12시간)를 월 단위(월 52시간)로 관리 단위를 늘리고, 이를 한 주에 몰아 쓰면 주 92시간 노동이 가능하다는 비판이 잇따랐는데, 이번에 연구회는 ‘11시간 연속휴식 보장’을 옵션으로 내세워 정부의 발표를 사실상 확정했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은 “미래의 노동시장을 연구한 것이 아니라, 정부의 국정과제를 연구한 것”이라고 밝혔다.

 

*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12일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 호텔에서 노동시간 관리단위와 임금체계 개편을 핵심 내용으로 한 권고문을 발표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11시간 연속휴식 보장이 전제된다 하더라도, 주 최대 80.5시간, 1주에 하루를 쉬어도 69시간 근무가 가능하고, 연장근로 관리 단위 확대로 연장근로가 특정 기간에 집중되면 과로에 따른 질병 위험성도 높아진다.

‘뇌심혈관계 업무상 질병 인정기준’은 발병 전 4주 동안 평균 주 64시간을 일한 경우 업무와 질병의 관련성이 강하다고 판단한다. 노동부는 이 기준을 근거로 특별연장근로 인가 때 주 64시간을 최장 노동시간으로 삼는데, 연구회의 권고대로 근로기준법 개정이 추진되면, 뇌심혈관 질환을 유발하는 장시간 노동을 합법적으로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밖에도 연구회가 권고한 △선택적 근로시간제(정산 기간을 평균해 주 52시간을 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노동자가 출퇴근 시간을 선택할 수 있는 제도) 정산 기간 전 업종 3개월로 확대 △근로시간 저축계좌제(연장근로를 저축해 휴가로 쓰는 제도) 도입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 근로시간 규제 제외 △부분근로자대표제 도입 △임금체계 개편 추진 등도 윤 대통령 공약이나 정부 국정과제 등과 겹친다.

 

* 미래노동시장연구회 노동시장 개편안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애초 정부는 지난 6월만 하더라도 시급한 과제인 근로시간과 임금체계 개편만 먼저 연구회에 대안 검토를 맡기고, 나머지 노동시장 개혁과제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를 통해 논의한다는 방침이었다.

그러나 이번 연구회 권고에는 후속 과제로 주로 경영계가 요구해왔던 파견법제 개선,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개정 관련 내용을 포함시켰다.

 

파견법과 관련해 연구회는 “(파견업무) 대상과 기간 조정, 고용안정 도모, 사용사업주 책임 강화 등 파견제도 전반의 개선 방안 마련”을 권고했다. 파견허용 업종을 늘리고, 현재 2년인 파견 기간 역시 늘려야 한다는 경영계의 요구는 반영된 반면, 노동계가 주장해왔던 불법파견 처벌 강화 등은 권고에서 빠졌다.

 

노사 관계에서 예민한 주제인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도 후속 과제로 포함시켰다. “노동조합 설립·운영, 단체교섭 구조, 대체근로 사용 범위, 사업장 점거 제한 등 법·제도 전반을 개선”해야 한다는 권고인데, 이 가운데 대체근로 사용 범위 확대, 사업장 점거 제한 등은 경영계가 줄기차게 요구해왔던 내용이다.

정부가 연일 민주노총 등 노조에 대한 강경한 메시지를 쏟아내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실제 입법으로 추진한다면 노정 관계는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7월18일 출범한 연구회는 노동법·경제·경영·보건 등 대학교수 12명으로 꾸려졌다. 이른바 ‘보수’ 일색으로 꾸려진 위원회는 아니었지만, 권고의 내용은 기업의 요구가 많이 반영됐다. 논의 과정에서도 경영계·전문가 간담회는 여러번 있었지만, 노동계와의 공식적인 간담회는 열리지 않았다.

 

민주노총은 성명에서 “평생 적게 받고 많이 일해 자본(기업)의 곳간을 채우라는 것”이라며 “노골적인 친기업 행보”라고 비판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노동위원회도 논평을 내어 “사용자들이 요구한 연장노동시간 관리단위 확대 등은 매우 구체적이고 실효적인 내용인 반면, 노동자의 건강권 보장과 휴식·휴가 등의 조치는 매우 추상적이고 개괄적”이라며 “이 권고문이 누구의 이익을 대변하고자 하는 것인지 확인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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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 주84시간 몰아붙이기, 결국 과로사 늘어날 것"

주52시간 유연화 방안 발표에 정치권 비판 쏟아져... "노동개혁 아닌 개악"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강조한 '노동개혁'의 밑그림이 나왔다. 하지만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긴 노동시간을 더 줄이긴커녕 오히려 더 늘려, 최대 주 69시간 근무가 가능한 방향을 두고, 노동계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고용노동부 의뢰로 노동개혁 방안을 연구해온 '미래노동시장연구회(아래 연구회)'는 12일 서울시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주52시간제(기본 근로시간 40시간 + 최대 연장 근로시간 12시간)을 업종과 기업 특성에 맞춰 유연화하고, 연공서열 중심의 임금 체계를 성과 중심으로 바꾸는 내용의 권고문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연장근로시간 관리 단위는 현행 1주(12시간)에서 월(52시간), 분기(140시간), 반기(250시간), 연(440시간) 단위로 나뉘며 일주일에 최대 69시간 일할 수 있다.

연구회는 연장근로시간 관리 단위를 월 단위 이상으로 할 경우 근로일 간 11시간 연속휴식을 부여하고, 또 근로자대표와 서면합의를 받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좌장인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도 장시간 노동을 우려하는 질문에 "예외적이고 극단적인 상황이기 때문에 빈번하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하지만 연구회 자체가 교수진으로만 꾸려지는 등 전반적으로 노동자들의 현실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연구회 권고문을 두고 "문재인 정부에서 노동시간 단축을 위해 만들어진 1주 12시간 한도의 연장근로시간 제한과 유연근무제도를 사실상 무력화시키는 방향성"이라고 총평했다. 그는 "노동자가 특정 주에 바짝 몰아서 갑자기 주52시간 일해도 단기과로"라며 "실근로시간 단축을 어떻게 할지는 생각하지도 않는 이 정부의 노동시장 개혁은, 나라 전체를 산재 공화국, 과로사 공화국, 피로사회로 만들겠다는 선언"이라고도 했다.



"정부, 엉뚱한 곳에서 답 찾아... 노동개혁 아닌 개악"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인 같은 당 이수진 의원(비례대표)는 "얼마 전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SPL사업장은, 올해만 42일간 특별연장 근로 인가를 승인받은 상습적인 장시간 노동 사업장이었다"고 짚었다. 이어 "장시간 노동은 노동자의 생명·안전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장시간 노동 문제를 해소하고 입법목적을 수호하려는 정부의 역할과 책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하지만 정부는 엉뚱한 곳에서 답을 찾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의원은 "노동자들의 건강권과 일·생활 균형이라는 측면에서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결 대책들이 만들어지고 시행돼야 한다"며 "실노동시간을 확실하게 줄이지 않거나 유연화에 버금가는 안정화 대책이 확실하게 추진되지 않는다면, 노동개혁이 아니라 '노동개악'이 분명하다"고 했다. 또 연구회 권고문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적정임금 보장과 최소휴식시간제 전면 도입, 실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포괄임금제 폐지,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시간제도 전면 적용 등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노무사 출신 이기중 정의당 부대표는 연구회의 권고문을 두고 "사장 마음대로 하는 탄력근로제"라고 평했다. 그는 "이 제도가 현실화하면 휴게시간 빼고 주 84시간이다. 연단위로 하면 10주간 주 7일 12시간 근무가 가능해진다"며 "크런치모드(업무 마감시한에 맞춰 장기간 초과노동을 계속하는 행태를 뜻하는 말로 IT업계에서 흔히 쓰임)의 합법화라고 할 수 있다. 여전히 윤 대통령의 주120시간에는 미치지 못하니 아쉬우시겠나"라고 했다.

이 부대표는 "연구회가 하자는 대로 하면 과로사가 늘어난다"며 "문재인 정부 시절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손잡은 탄력근로제 확대로 '바쁠 때 바짝' 주64시간 일하는 게 가능했는데, 윤석열은 주84시간까지 몰아붙이려나 보다"라고 일갈했다. 이어 "사용자와 근로자간의 '자유로운 합의'라든가 하는 말은 현생엔 적용되지 않는 법전 속의 문구일 뿐"이라며 "웬만한 직장인들은 알텐데 저분들은 모르는 걸까, 모르는 척 하는 걸까"라고 덧붙였다.

 

 

박소희(s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