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소는 누가 옮기나

道雨 2022. 12. 13. 10:44

소는 누가 옮기나

 

 

 

중심부와 주변부 국가 간 불평등한 관계를 파헤친세계체제론’으로 잘 알려진 역사사회학자 이매뉴얼 월러스틴은 1990년대 초, 소에 빗대어 세계의 이데올로기를 간결하게 정리한 적이 있다. 대학원 시절 얻은 유물이다.

 

 

봉건주의: 소 두 마리가 있다. 귀족이 우유를 가져간다.

 

사회주의: 소 두 마리가 있다. 정부가 데려가 다른 소들과 함께 큰 외양간에 넣는다. 정부가 우유 한컵을 준다.

 

순수 공산주의: 소 두 마리를 이웃과 공유한다. 누가 가장 소가 필요한가 이웃과 다투느라 돌보지 못한 소들이 다 굶어 죽는다.

 

옛소련 공산주의: 소 두 마리가 있다. 정부가 우유를 다 가져간다. 당신이 우유를 다시 조금 훔쳐 와 암시장에 내다 판다.

 

페레스트로이카(고르바초프 개혁정책): 소 두 마리가 있다. 마피아가 우유를 다 가져간다. 당신이 우유를 다시 조금 훔쳐 와 “자유 시장”에 내다 판다.

 

관료주의: 소 두 마리가 있다. 정부가 소들을 데려가서 한 마리는 총으로 죽이고, 다른 소한테서 우유를 짠 다음 배수구에 버린다. 그러고는 당신에게 소를 잃어버린 이유를 설명하는 문서를 작성하라 요구한다.

 

자본주의: 소가 한 마리도 없다. 담보로 제공할 소가 한 마리도 없기에 은행이 소를 살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

 

미국 자본주의: 두 마리 소 모두 유독한 스테로이드로 퉁퉁 부었다. 소들은 사유화된 공원에서 풀을 뜯으며 오존층을 파괴하는 엄청난 장내 가스를 배출하고, 결국 과다한 자외선 노출로 죽은 뒤, 교활하고 원칙 없는 마케팅 전략으로 겉으로만 그럴듯해 보이는 위험한 가공육으로 상품화된다.

당신은 그걸 사기 위해 의도적으로 저평가된 농장을 고금리로 저당 잡히는데, 발암물질을 먹고도 의료보험이 없어 제때 치료받지 못해 죽을병에 걸린다.

기업의 고위 관리직은 당신에게 가공육을 팔아 번 돈으로, 노동자 임금이 낮고 자원이 저렴한 해외의 너른 평야에서 자유롭게 키워진 유기농 소고기를 사 먹는다.

 

 

지금부터는 이에 대한 오마주이다.

 

한국 자유주의: 소가 있는 사람과 소가 없는 사람이 있다. 소가 있는 사람은 가끔은 죄를 짓고도 법치에서 벗어날 자유가 있고, 소가 없는 사람은 밤낮없이 이웃 소를 돌볼 자유가 있다.

 

한국 반노동주의: 원래는 안정되게 고용되어 임금을 받고 소들을 옮겼다. 그런데 운수사가 수레가 깨져도 소들이 죽어도 다 당신 책임이라는 통에 사장이 되고 만다.

소 떼를 옮기는 일이 너무 힘들고 연료, 보험료, 차 할부금 등으로 남는 게 너무 적어 일을 중단하니 귀족노조라고 비난한다.

당신은 혼란스럽다. 사장이라 하지 않았던가?

또 귀족노조는 원래 공산주의자 레닌이 주변부 국가와의 불평등 교환을 통해 부를 쌓은 중심부 선진국의 노동자가 중산층화하여 혁명의식을 잃은 것을 비난하기 위해 만든 말이 아니던가? 항상 과로하며 우유를 조금 얻었을 뿐인데 귀족이라니, 이 나라는 봉건주의 국가인가?

게다가 강제로 일을 하라는 명령까지 내린다. 당신은 더 혼란스럽다. 강제 노역이라니, 여기는 공산주의 국가인가?

그렇다면 왜 사장으로 오분류된 노동자를 빈곤에 빠뜨리고, 때로는 죽음에 이르게 하는 화물운송업의 다단계 알선 구조는 정리할 생각조차 않는지, 당신은 의문스럽다.

또 그마저 중단하겠다는 안전운임은, 왜 얼룩소를 옮길 때만 적용되고, 누렁소, 흰 소, 검은 소한테는 적용되지 않는지, 그건 더욱 의문스럽다.

비좁은 수레에 화가 난 황소가 내려와 길가의 사람들을 밟아 죽일 수도 있다. 인플레이션이 너무 심해 우유 살 돈이 모자라 아이를 낳고 키울 자신이 없다.

 

당신은 이제 너무 지쳤다. 소 떼 운송을 포기하고, 차라리 도심에 출몰한다는 멧돼지 사냥을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그럼 소는 누가 옮기나.

관료주의에 충실한 관료가 알아서 하겠지.

 

 

 

이주희 |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