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아무것도 하지 않는 정부라는 착각

道雨 2022. 12. 7. 10:41

아무것도 하지 않는 정부라는 착각

 

 

 

2022년이 간다.

정치의 시계로 보자면,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문재인 정부 출범으로 시작된 5년의 주기가 종료되고, 윤석열 정부 시대가 시작된 해였다.

새 정부와 대통령이 어떤 모습을 보여왔는지, 거기서 드러나는 윤석열 정부의 성격은 무엇인지, 어떤 역사가 진행 중인지를 냉철히 짚어봐야 할 시점이다.

 

그동안 윤석열 정부를 특징짓는 말로 빈번히 등장한 것이 ‘무능’과 ‘무위’였다. 무능이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무위란 아무 일도 하지 않음을 뜻한다. 이런 시각으로 현 정부를 이해하는 것은 착각일 뿐 아니라 위험하다. 우리 사회의 현안을 이해하고 해결할 능력과 의지가 없다는 뜻이라면 맞다. 하지만 윤 정부는 다른 무엇인가를 하고 있고, 그 점에서 무능하지 않다. 이걸 놓치면 안 된다.

 

윤석열 정부가 지금까지 보인 모습에서 세 가지 점이 두드러진다. 검찰국가·경찰국가의 수립과 이념적 극우 성향의 강화, 반노동 기업 중심 체제의 공고화 의지가 그것이다.

정부, 언론, 재벌의 동맹체는 정치권력, 이데올로기, 계급 관계에 각각 관련되는 세 꼭짓점을 잇는 삼각형을 완성해가는 과정에 있다.

 

 

첫째, 검찰국가·경찰국가로의 변화가 진전되고 있다. ‘검찰공화국’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공화국의 본질은 자의적 지배의 부재와 모든 시민의 자유다. 그런데 지금 한국 정치의 현실은 권력자들의 자의적 법 집행, 친정부 시민만의 자유 아닌가.

대통령실과 정부 요직들이 검찰 출신으로 채워진 가운데, 정부는 이태원 참사부터 노동자 파업까지 모든 사안을 범죄 수사와 처벌의 관점에서 다루고 있고, 경찰 조직도 여기에 종속되거나 가세하는 형국이다. 이것은 공화국이 아니다.

 

둘째, 집권세력의 과격 우파 색채가 짙어지고 있다. 많은 대통령 직속 또는 국무총리 직속 위원회의 중요 직책이 극우 정치인과 유튜버, 호전적인 뉴라이트 인사들로 채워졌다. 나아가 과거에는 그래도 괜찮은 보수 정치인에 속했던 여권 정치인들까지도 이런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야당 정치인이나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시민들을 ‘종북’, ‘주사파’, ‘공산주의자’로 부르며 적대시하는 광경이 이젠 드물지 않다. 이런 것은 제대로 된 보수 정부가 아니며, 많은 보수 유권자를 대변하지도 않는다.

 

셋째, 노동자와 서민들의 생존 요구를 정부는 따뜻하게 품는 대신, 철저히 기업과 부자의 편에서 공격하고 있다. 지난여름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유최안씨가 가로×세로×높이 1m 철창 안에서 저임금과 회사의 탄압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을 때, 정부는 노동자만 불법으로 단정 짓고 경찰특공대 투입을 예고하며 위협했다. 최근 화물연대 파업에 대해서도 정부는 마치 이적단체를 대하듯 적대시하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이런 장면들은 훨씬 더 공세적인 노동 개악의 예고편에 불과하다.

 

이 같은 반노동, 극우, 검찰국가의 세 얼굴은 한 몸에 붙어 있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은 노동자들의 집단 운송거부가 “북핵 위협과 마찬가지”라면서 “정부가 할 일은 범죄로부터 국민을 지켜내는 일”이라고 했는데, 세부 쟁점에서 시비를 따지는 차원을 훨씬 넘어 여기서 충격적인 것은, 노동자들의 생존권 문제를 경청하고 현명하게 풀어가야 할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정치지도자가, 자국민을 ‘적국’에 비유하거나 범죄자로 간주하는 태도다.

 

노동, 복지, 젠더, 기후, 외교, 문화 등 모든 면에서 거대한 백래시가 진행되고 있다.

 

지금까지는 보수 정치권 외부에서 들어온 집권 세력이 권력 기반을 정비하고 통치술을 익히는 데 시간이 필요했고, 대통령 지지율이 낮았기 때문에 그 체제의 성격이 징후적으로만 드러났다. 하지만 이제 다를 것이다. 반노동 우익 검찰국가로 공고화될 것인지, 보다 포용적인 보수 정부로 달라질 것인지 선택의 갈림길에 다가가고 있다.

 

이처럼 위중한 시대 상황에서 국회 제1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모습은 실망스럽다.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편승하려는 정치, 비전의 리더십도 없이 준비되지 않은 폭로만 터뜨리는 정치로 국민적 신뢰를 얻을 수 없다. 정부·여당의 잘못에 대한 시민들의 비판과 저항이 무능한 야당 정치인들의 생명을 연장하는 영양제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든다면, 국민은 행동을 주저하고 희망을 잃게 될 것이다.

 

2023년 새해는 달라져야 한다. 정치 개혁과 대안을 위한 토론을 본격화해야 한다.

 

 

 

신진욱 |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