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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윤석열’이 잡은 범죄자들, ‘대통령 윤석열’이 다 풀어줬다

道雨 2022. 12. 28. 10:48

‘검사 윤석열’이 잡은 범죄자들, ‘대통령 윤석열’이 다 풀어줬다

 

 

윤석열 대통령 신년 특별사면·복권 논란

 

 

“피고인이 저지른 반헌법적 행위에 대한 엄중한 사법적 단죄를 통하여 무참히 붕괴된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 근간을 굳건히 확립할 필요가 있다.”

 

2018년 9월 이명박 전 대통령의 1심 재판에서 검찰은 징역 20년을 구형했다. 당시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이 전 대통령 구속수사를 지휘했다.

 

27일 단행된 윤석열 대통령의 두 번째 특별사면·복권 대상자들 상당수는, 이처럼 윤 대통령이 검사 시절 ‘반헌법적 행위’ ‘중대 범죄’라며 엄벌을 요구하고 유죄를 받아냈던 이들이다. 그러나 대통령 취임 7개월만에 “국력을 하나로 모아 나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27일 국무회의 발언)며, 이들의 사면·복권을 결정했다.

윤 대통령 지휘를 받아 수사·기소에 관여했던 한동훈 법무부 장관 역시, 국가기관 등이 조직적으로 동원된 여론조작과 민간인 사찰 범죄 등을 “잘못된 관행” “경직된 공직문화” 탓으로 돌리며, 슬그머니 ‘죄질’을 바꿔 사면·복권을 정당화했다.

 

 

 
 

 

 

 

윤 대통령이 사면·감형·복권을 결정한 박근혜 정부 시절 범죄는

 

△국정농단 사건(조원동)

△화이트리스트 사건(김기춘, 조윤선, 박준우, 신동철, 오도성, 정관주)

△블랙리스트 사건(최윤수)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사건(최경환, 남재준, 이병기, 이병호, 이헌수, 안봉근, 이재만, 정호성)

△국정원 통한 불법사찰 사건(우병우)

△국정원 대선 여론조작 사건 수사 방해 사건(장호중, 이제영)

△채동욱 전 검찰총장 뒷조사 사건(서천호) 등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범죄로는

 

△국정원 대선 여론조작 사건(원세훈, 민병환, 유성옥)

△기무사령부 여론조작 사건(배득식)

△사이버사령부 여론조작 사건(옥도경, 연제욱)

△국정원 특활비 횡령 사건(김진모, 장석명)

△국정원 특활비 어용 노조 설립 사건(이채필) 등이 대상이다.

 

 

이날 낮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에서 한동훈 장관은 간략하게 사면·복권 대상자만 밝힌 뒤 자리를 떴다. 질의응답은 신자용 법무부 검찰국장이 맡았다.

신 검찰국장은 윤 대통령과 한 장관이 직접 수사했던 이들이 대거 사면·복권된 이유에 대해 “사면권자인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이 사건 수사를 담당했다고 사면에 포함하지는 않은 것으로 안다”고만 답했다. 직접 수사·기소했던 이들을 일부러 골라서 사면시킨 것은 아니라는 취지다.

여권 인사가 많은 이유에 대해서는 “국민통합 관점에서 균형을 잡고자 노력했지만, 국정농단 사태를 거치면서 형사처벌 받았던 이들이 보수진영 쪽 사람인 경우가 많았다” “국정농단 사건에서 가장 책임이 컸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사면된 점을 크게 고려했다”고 했다.

 

그러나 정치권과 법조계 안팎에선 원칙과 기준 없는 ‘묻지마 사면’이란 평가가 많다. 특히 과거 검찰에서 ‘적폐 수사’를 진두진휘했던 윤 대통령이 취임 첫해에 수사 대상자인 이명박 전 대통령 등을 직접 사면·복권하자, 야권은 “부폐 세력의 부활”이라고 비판했다.

 

 

* 박영수 특별검사(가운데)가 지난 2017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검팀 사무실에 있는 기자실에서 특검보들과 함께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윤석열 당시 수사팀장이 가장 왼쪽에 자리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윤 대통령은 박근혜 정부 첫해인 2013년, 이명박 정부 시절 원세훈 전 국정원 등의 대선 여론조작 사건 수사를 강단 있게 밀고 나가며, 일개 특수통 검사에서 “사람에게 충성 않는” 전국구 강골 검사로 이름을 알리게 됐다.

그해 수원지검 여주지청장으로 좌천됐던 윤 대통령은 국정감사에서 “국가정보원 사건 수사 초기부터 외압이 있었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도 무관하지 않다.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이 ‘야당을 도와줄 일이 있냐’라고 말했다”고 증언하며, 검찰 수뇌부의 축소 수사 지시 등 외압을 폭로했다.

이후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특검팀을 거쳐, 문재인 정부 들어 서울중앙지검장, 검찰총장으로 초고속 승진했다. 이는 정치경험이 전무한 그가 대통령으로 직행하는 발판이 됐다.

 

윤 대통령은 지난 8·15 광복절 특별사면 때도 자신이 수사했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복권시킨 바 있다. 지금의 ‘윤석열’을 만든 과거를, 대통령 고유권한인 사면권 행사를 통해 거듭 원점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보수진영 내 취약한 집권 기반 원인으로 지목되는 ‘윤석열=문재인 정부 검사’ 흔적을 자기 손으로 직접 지우려는 목적도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윤 대통령의 두 번째 사면권 행사를 바라보는 전문가들 평가는 차갑다.

 

정태호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불공정하고 정의롭지 못하다”고 했다. 정 교수는 “작은 도둑들은 남은 형량 하루까지 다 책임지게 하면서, 큰 도둑들은 반성의 기미도 없는데 전부 사면해줬다. 법 집행에 있어 정의를 상실하면 법은 폭력이 될 수밖에 없다. 이번 사면이 국민 통합을 위한 것이라고 하는데, 과연 통합에 실질적인 기여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오히려 정치적인 갈등의 골만 더 가속하는 부작용을 낳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김재윤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복권에 대해 “기준 없는 대통령 사면권의 폐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특별사면은 헌법을 근거로 대통령에게 부여된 절대적 권한인데, 기준이 정해져있지 않다. 이번 사면에 동의할 수 있는 국민이 얼마나 되겠느냐. 제왕적 대통령이 사면권을 남용한다는 지적이 많았는데, 이번 사면도 그와 같다”고 했다.

 

 

 

손현수 기자 boysoo@hani.co.kr 최민영 기자 mymy@hani.co.kr 전광준 기자 light@hani.co.kr 강재구 기자 j9@hani.co.kr 배지현 기자 beep@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