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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의 불길한 징후…바이마르 시대 닮은 한국‧미국 사회

道雨 2023. 1. 12. 09:49

파시즘의 불길한 징후…바이마르 시대 닮은 한국‧미국 사회

 

미중 분쟁·남북 분단의 뿌리…'전간기'의 교훈

세계대전 뒤 승자 위주 베르사이유·워싱턴 체제

바이마르 극심한 혼란, 나치스 전쟁으로 이어져

극단적 사회 분열과 불안은 파시즘으로 가는 길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5일(현지시각) 러시아 정교회 성탄절(7일)을 맞아 6일 정오부터 7일까지 총 36시간에 걸쳐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 중인 자국 군인들에게 휴전을 명령했다. 사진은 푸틴 대통령이 이날 모스크바 외곽 대통령 관저인 노보오가료보에서 새해맞이 자선행사인 '트리 오브 위시스'에 참여한 스타브로폴 크라이 지역의 7세 소년과 통화하는 모습. 2023.01.06. EPA 연합뉴스


 

 

러시아와 닮은 바이마르 공화국

“노동자, 보수층, 가톨릭 등으로 분단돼, 지지 정당도, 읽는 신문도 다르다. 주류 미디어(언론매체)가 없기 때문에, 같은 사안에 대한 평가도 뿔뿔이 흩어져 버린다. 반향실(echo chamber) 효과처럼 자신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음모론도 유행한다.”

어느 나라의 상황일까? 제1차 세계대전 패전 뒤 등장한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1919~1933)이 겪고 있던 사회현실이다.



“지금도 그러한데, 미국이 그 전형이다. 리버럴(자유주의)이나 보수 등 섹터(정파 또는 분파)마다 미디어도 정당도 고정돼 있다. (그들 사이에) 대화가 없어진 상황도 전간기와 닮은 것으로 보인다.”

이타바시 다쿠미 일본 도쿄대 교수(국제정치사, 유럽정치사)가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1월 3일)에서 한 얘기다.

 



한국, 미국과도 닮은 상황

그가 말한 바이마르 공화국 사정은, 미국이 아니라 우리 사회야말로 그 전형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그런데 이타바시 교수가 바이마르 공화국에 빗대어 말하고 있는 나라는 러시아다.

지금의 러시아를 전간기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과 겹쳐서 보는 시각이 많다. 거대한 국가가 해체된 뒤에 제국의식이 잔존해 있었다는 점, 그리고 한때 경제적으로 파산했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바이마르는 1920년대에 극심한 인플레와 대공황을 경험하면서 나치스가 대두했다. 러시아도 1990년대에 경제적으로 큰 혼란에 빠졌고, 그 뒤에 푸틴이 강대한 권력을 쥐게 됐다.”

이타바시 교수는 “물론 전간기와 지금은 전체 상황이 많이 다르다”며, 그 중에서 지금과 비슷한 점을 굳이 찾아 본다면, “큰 전쟁 뒤의 ‘질서 구축’에 실패했다는 것과, 사회가 극도로 분단돼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 샤를 미셸 유럽연합(EU) 상임의장,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왼쪽부터)이 10일(현지시각) 벨기에 브뤼셀에서 협력 공동선언을 발표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유럽 안보질서가 위협받자 협력 강화에 나선 것이다. 나토와 EU가 협력 공동선언을 발표하는 건 2018년 이후 5년 만에 처음이다. 2023.01.10. EPA 연합뉴스

 

 

 

냉전 붕괴 뒤 30여년, 세계대전 사이 전간기와 유사

‘전간기’(戰間期, interwar period)란 말 그대로 전쟁과 전쟁 사이, 즉 제1차 세계대전(1914.7~1918.11)과 2차 세계대전(1939.9~1945.9) 사이의 시기를 가리킨다.

“유럽 국가들이 피투성이의 전쟁을 벌인 제1차 세계대전은 세계에 큰 상흔을 남겼다. 그 전후의 질서 구축이 전간기 20년간의 과제였다. 냉전 종결 뒤의 30년간도 큰 ‘전쟁’ 뒤의 질서 구측이라는 측면에서 닮았다.”

그가 전간기 얘기를 끄집어낸 것은 1차 세계대전 뒤의 그 시기가 바로 지금, 즉 1991년 소련 붕괴와 함께 동서냉전이 무너진 뒤(냉전이 끝난 뒤) 지금까지 30여년의 세월과 닮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열전이든 냉전이든 전쟁이 끝난 뒤의 질서 구축에 실패했거나 하고 있다고 보는 점에서도 두 시기는 닮았으며, 결국 전쟁으로 치달았다는 점에서도 닮았다.

 

 

파시즘과 전쟁 부른 승자의 오만

새로운 질서 구축에 실패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1차 세계대전 직후에 성립된 베르사이유 체제와 워싱턴 체제는 승자(전승국) 쪽의 논리로 만들어진 국제질서였다. 결국 독일, 이탈리아, 일본과 같은 (힘센 승자들에 억눌려) 현상타파를 추구하던 나라들의 도전을 받게 된다.”

베르사이유 체제1차 세계대전 뒤 체결된 베르사이유 강화(평화)조약(1919년 6월)으로 형성된 국제질서 체제를 가리킨다. 전승국인 영국과 프랑스가 중심이 돼 루르 지방을 프랑스가 차지하는 등 패전국 독일의 영토를 분할해 대폭 축소시키고, 거액의 전쟁배상금을 물려 전승국의 전후 복구자금으로 활용했다. 이 때문에 독일은 초인플레 속에 경제가 파탄나고 대중의 불만과 불안이 팽배해지면서 히틀러가 정권을 잡게 된다. 파시즘의 대두다.

워싱턴 체제란 베르사이유 체제를 보완하는 워싱턴회의(1921~1922)에서 정한 일종의 동아시아태평양판 전후체제다. 패전국 독일의 중국 산둥반도 이권 등을 당시 전승국이었던 일본이 차지하면서 미국과 영국이 일본의 대두를 억누르려고 했다. 워싱턴회의는 해군 군함 보유비율을 일본에 불리하게 정하는 등 제국주의 전승국들 사이의 세력을 서방 제국들에 유리하게 재편했다. 말하자면 당시 더 큰 힘을 지녔던 미국 영국이 중국 등 동아시아 이권을 놓고 일본이 그들의 경쟁자로 떠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 강제한 규칙이었다.



일제의 “귀축 미영”도 마찬가지

1931년 만주침략과 이에 대한 미국 영국의 제재 뒤 일본은 국제연맹에서 탈퇴하고 본격적인 대륙침략에 나서면서 “귀축 미영”(鬼畜米英. 귀신과 가축, 즉 악귀와 짐승 같은 미국 영국), 타도 미영을 부르짖게 된다. 베르사이유 체제가 나치 독일의 대두와 2차 세계대전을 초래했듯이, 워싱턴 체제가 군국일본의 대두와 아시아태평양전쟁을 초래했다는 얘기다. 물론 침략과 식민지배를 ‘문명’의 이름으로 정당화했던 제국주의 열강들끼리의 얘기다.

 

* 안나레나 배어복 독일 외교장관(왼쪽)이 10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동부 하르키우를 깜짝 방문해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교장관과 함께 피해상황을 살피고 있다. 이에 앞서 배어복 장관은 다른 곳에서 쿨레바 장관과 회담을 열었다. 배어복 장관은 하르키우를 방문한 자리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을 약속하면서 우크라이나의 유럽연합(EU) 가입에도 진전이 있도록 돕겠다고 밝혔다. 2023.01.11. EPA 연합뉴스

 

 

 

나토 동진의 끝은 신냉전 또는 제3차 대전일수도

“미국의 역사가 사로테(Mary Sarotte)는 냉전 뒤의 유럽 질서는 ‘프레파브(prefab, 조립식 건물) 구조’라고 했다.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 등의 서방쪽 질서는 냉전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다. 냉전 종결 뒤 근본적으로 다시 고쳐 만들어야 했으나, 실제로는 서방쪽의 질서를 증축한 프레파브였다. 기본적인 구조를 그대로 둔 채 나토와 유럽연합(EU)이 동쪽으로 확대해 갔다.”

베르사이유 체제에 빗대어 말한다면, 냉전에서 이긴 미국 등 서방(=나토와 유럽연합)은 냉전 이후의 새로운 질서 구축을 철저히 승자에게 유리한 쪽으로 짬으로써 새로운 전쟁의 토대를 깔아 놓은 셈이 된다. 이타바시 교수는 그 전쟁이 바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라고 얘기한다. 그러나 그 전쟁은 새로운 냉전(신냉전)일 수도 있고, 제3차 세계대전일 수도 있지 않을까.



푸틴은 21세기형 파시스트

“옛 사회주의권 사람들을 냉전에 패배한 굴욕감 없이 어떻게 국제사회에 포용하느냐, 1990년대에 그런 모색이 거듭됐지만 잘 되지 않았다. 그 반동으로 푸틴과 같은 인물이 출현했다. 냉전 뒤의 질서 구축에 실패한 결과로 이번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이해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푸틴은 히틀러나 무솔리니, 도조 히데키와 같은 대전 뒤의 새로운 질서 구축 실패가 부른 파시즘의 21세기형 지도자라고 할 수 있을까.

이타바시 교수는 예컨대 동서독 통일 뒤 지금 독일을 전형적인 프레파브 국가로 본다. 서독의 헌법질서와 정치, 경제 제도들이 그대로 동쪽으로 이식됐고, 그 때문에 사회에 여러가지로 왜곡된 면들이 나타났다.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에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옛 동독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의 57%가 자신들을 2류 시민으로 느끼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는 러-우 전쟁에 대한 여론조사에서도 옛 서독지역과 동독지역에서 뚜렷이 다른 경향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옛 서독지역에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제공이나 러시아에 대한 제재에 적극적인 사람이 많다. 반대로 옛 동독지역에는 정전을 우선해야 한다는 사람이 많다. 러시아가 나쁜 것은 분명하지만 서방쪽에도 나쁜 점이 있다고 느낀다.”

 

* 4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 바흐무트의 한 거리에서 상인들이 가판대와 자동차 위에 식품 등을 진열해 팔고 있다. 이 임시 노점은 정교회 성탄절(매년 1월 7일)을 앞두고 열린 것이다. 2023.01.05 로이터 연합뉴스

 

 

 

왜 사회 분단과 불안이 파시즘으로 갈까

“(사회가) 분단됐다고 해서 곧바로 대립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회가 분극화하고 가치관이 다원화하는 것 자체는 다양한 이해가 반영될 수 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에 건전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방 입장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의견이 다른 상대는 때려 눕히겠다는 태도는 유해하다. 그 전형이 파시즘이다. 그런 정치는 허용해선 안 된다는 것이 전간기의 교훈이 아닐까.”

 


왜  분단과 불안이 파시즘으로 귀착되는가.

가장 큰 원인은 불안이다. 나치스가 약진하게 된 계기는 세계공황으로 실업이 급증한 것이다. 그런데 나치스의 득표율을 보면 오히려 실업자가 적은 지역에서 높았다. 나치스를 지지한 것은 실제로 실업자가 된 노동자들보다 중산계급이었다. 중산층은 내일은 자신이 실업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렸고, 나치스는 그것을 교묘하게 이용했다.”

불안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급진적 우파로 치달리는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독일을 위한 선택지라고 주장한 배외주의적인 우파 표퓰리즘 정당이 있는데, 그 당 지지자들은 이민자들이 많은 옛 서독의 도시지역보다도 이민자가 적은 옛 동독지역에 더 많다. 이민이 적은 지역이 외국인이 늘어나면 지금의 생활이 무너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에 더 크게 시달리는 것이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이 커지면 극우 지지로 이어지게 된다.”

 

* 러시아군의 최신 전차 TM-90M 운용 병사들이 러시아의 '특별군사작전' 지역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T-90M은 1990년대초 러시아군에 도입된 T-90 전차의 개량형으로, 우크라이나가 운용중인 옛 소련제 전차들보다 성능이 월등히 우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별군사작전은 러시아가 작년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때부터 사용하는 표현이다. 러시아 관영통신 타스는 훈련 날짜와 장소를 특정하지 않았다. 사진은 러시아 국방부 제공 영상을 5일(현지시각) 캡처한 것이다. 2023.01.06. 타스 연합뉴스

 

 

 

 

권력자와 언론의 책임

그는 권력자와 미디어(언론)의 역할과 책임이 크다고 말했다. “분단과 마찬가지로 불안도 바로 대립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권력자가 자유민주주의 규칙(룰)을 준수하고, 대립을 부채질하는 게임에 편승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미디어도 지나친 언론(논조)을 억제해야 한다. 사회가 분극화하면 미디어나 정치가도 극단적인 방향으로 내달리기 쉽다. 그것을 어떻게 자제할 수 있는지가 과제다.”

 

 

불확실한 국제정세도 새로운 불안재료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침략을 감행했다. 중국도 자유주의가 뿌리를 내리지 못한 상태에서 대국이 됐다. 그렇게 되면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쪽도 힘을 키워야 할 필요에 쫓기게 된다. ‘힘의 시대’로 어느 정도 회귀할 수밖에 없지만, 문제는 그 뒤에 어떻게 행동하는가다.”

그가 보기에 러시아는 침략해서는 안 된다는 국제질서의 근본 규칙을 깬 이상 패배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패자가 된 러시아를 어떻게 국제사회에 포용해 갈 것인지가 문제다.

“현실문제로서 지금의 서방 중심의 국제질서에 비판적인 나라들이 상당히 많다. 중동이나 아프리카 등의 나라들을 어떻게 끌어 안고 가야 할까. 진정으로 포용적인 국제질서를 어떤 형태로든 만들어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결론으로 승자독식 또는 승자 위주의 질서는 결국 전쟁으로 간다는 교훈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제1차 세계대전 뒤의 국제체제는 결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역시 승자의 오만과 같은 것이 있었다. 어느 나라도 배제되지 않는 질서를 만들지 않으면 ‘힘의 시대’로 되돌아가 전쟁으로 가게 된다. 그것이 전간기 역사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이라고 생각한다.”

 


미중 분쟁, 남북 분단의 뿌리도 잘못된 전후 질서

2차 세계대전 뒤, 한국전쟁이 한창일 때인 1951년 9월에 체결되고 그 다음해 4월에 발효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도 마찬가지다. 미국이 주도하고 패전국 일본이 오히려 최대의 승자가 돼 버린 이른바 샌프란시스코 체제가 만들어낸 2차 대전 이후 아시아태평양의 전후질서가 21세기의 우리 삶을 규정하고 있다.

일제 침략의 최대 피해자인 한국(남북한)과 중국은 초청조차 받지 못한 샌프란시스코 체제가 한국과 중국의 현재와 미래를 좌우한다. 이 역시 잘 못된 승자들의 일방적인 전후 질서 세우기의 결과다.

중국이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거부하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미중 분쟁과 남북 분단의 뿌리는 거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한승동 에디터sudohaan@mindlenews.com



출처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http://www.mindl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