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 장관의 ‘법적 책임’
지난 6일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이태원 참사 당일 용산구청 당직사령이었던 주무관은 증언대에서 울먹이며 말했다.
“아이들에게 너무…너무 너무 너무…너무 너무 미안하고 부모님들께 너무 죄송합니다.”
청문회에서는 이 정도 자책의 모습조차 보기 드물었다. 그보다 훨씬 고위직인 청문회 증인들은 모르쇠와 발뺌으로 일관했다. 구청 주무관에 비할 수 없이 높은 자리인 행정안전부 장관은 사퇴 요구에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현재 주어진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 청문회 말미에 주목할 만한 질의·응답이 오갔다.
불과 한두마디 문답이 오가는 과정에서 말이 바뀌었다. ‘재난관리 주관기관’(이하 주관기관)을 정하지 않았다던 이 장관은 이같은 행위가 시행령 위반이라는 지적이 나오자, 곧바로 ‘행안부를 주관기관으로 정했다’고 다른 말을 했다.
이 장관의 말 바꾸기나 망언 주워 담기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이번 발언은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재난안전법은 재난의 유형별로 관련 부처를 주관기관으로 지정하고 있다(예: 학교에서 발생한 재난은 교육부). 그런데 이태원 참사는 사전에 정해진 유형을 벗어난 재난이었다. 이런 경우엔 행안부 장관이 주관기관을 지정하도록 시행령에 규정돼 있다. 이를 지정하지 않았다면 시행령 위반인 것이다.
이 장관과 행안부는 이제까지 이태원 참사의 주관기관을 정하지 않았다는 입장이었다. 행안부가 주관기관으로 지정됐다는 것은 이번에 처음 나온 이야기다. 재난 발생 두달이 넘어서야 법에 규정된 주관기관이 등장하다니 이 자체가 비정상이고 재난안전법의 실종이다. 실제로 주관기관이 정해졌는지조차 의문스럽다.
이 장관의 바뀐 답변대로 주관기관이 행안부로 지정됐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여전하다. 주관기관의 장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와 별개인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를 ‘신속하게’ 설치·운영하도록 법에 규정돼 있다(주관기관의 장이 중수본의 장이 된다).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중수본은 설치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이 장관은 “행안부가 주관기관인 경우 중수본을 따로 구성 안 하고 중대본을 바로 구성한다”고 해명했다. 중대본이 중수본 역할을 겸한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중대본은 더욱 ‘신속하게’ 구성됐어야 한다.
그러나 중대본은 참사 발생 4시간이 넘어 대통령 지시가 있고서야 가동됐다. 이 장관은 지난달 23일 국정조사 특위 현장조사에서 이에 대해 질타를 받자 “중대본 가동은 촌각을 다투는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지금 다시 돌아보면 더욱 황당하고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다. 주관기관의 장이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이태원 참사와 같은 날 오전 충북 괴산군에서 지진이 발생하자 행안부가 3분 만에 중대본을 가동한 것과도 대조된다.
이태원 참사 대응에서 법을 충실히 따르지 않은 셈이다.
나아가 주관기관의 장은 중수본의 장으로서 구체적인 역할을 하도록 규정돼 있는데 이를 제대로 이행했는지도 의문이다. 용혜인 의원은 “이 장관이 위기경보 발령, 유관기관 협조체제 유지, 피해자 가족 연락체계 구축 등 위기관리 매뉴얼에 따라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특히 피해자 가족 연락체계 구축의 경우 이 장관은 유족 명단도 확보하지 못했다고 스스로 줄기차게 주장해왔다.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행안부의 ‘중수본 구성 및 운영에 관한 규정’에 따른 조처를 소개하며 “여기에 나오는 활동을 아무것도 안 했다”고 따져 물었다. 이 장관은 이행 내역을 “서면으로 제출하겠다”고 답변했다. 철저한 검증이 필요한 대목이다.
재난안전법은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국가의 인력과 자원, 그리고 강제력을 총동원하도록 한 강력한 법이다. 일반 시민이 안전 확보를 위한 정부의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징역형으로까지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물며 이 법에 따라 재난에 대처하는 공직자들의 의무와 책임은 훨씬 더 엄중한 것이다.
그 법에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가 행하는 재난 및 안전관리 업무를 총괄·조정’하는 총책임자로 규정된 게 행안부 장관이다. 이 책임은 ‘알아서’ 져도 그만, 안 져도 그만인 정무적·도의적 책임이 아니다. 준엄한 법에 의해 규정된 ‘법적 책임’이다.
이 장관은 참사 발생을 인지한 뒤 현장에 도착하기까지 85분 동안 9통의 전화통화를 했는데, 본인이 직접 건 것은 한 통뿐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제가 그사이에 놀고 있었겠나. 나름대로는 여기저기 전화하면서 상황을 다 파악하고 있었다”던 이 장관이다.
이 장관은 참사 다음날에도 “그 전과 비교할 때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몰린 것은 아니었다”며 “소방, 경찰 인력을 미리 배치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황당한 인식을 드러낸 바 있다. 여기에 더해, 주관기관의 장으로서 중수본 구성과 활동에서 법 규정을 제대로 따르지 않은 정황까지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 장관이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넘어간다면, 일선 공무원들만 책임지고 끝난다면, 재난안전법은 규범적 의미를 상실한 빈 껍데기로 남을 뿐이다.
법이 권력자에게 의무와 책임으로 작용하지 않고, 자신의 책임을 정무적·도의적으로 스스로 결정할 ‘자유’만 안겨준다면 그 체제는 더 이상 법치가 아니다.
박용현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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