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와 대통령의 리더십
2023년 새해 벽두, 안보위기와 경제위기, 통합위기가 뒤엉켜 엄습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우려되는 것은 안보위기다. 이를 거론하는 미디어는 국내외를 가리지 않는다.
설 명절을 앞두고 회자한 “한반도 전쟁 때 생존확률 ‘0’보다 약간 높아…서울 탈출은 불가능”이라는 제목의 <파이낸셜 타임스> 기사가 대표적이다. 근거 없는 억측일 뿐일까.
2022년 한해 평양이 보여준 핵미사일 전력 강화와 일련의 공세적 행보를 고려하면 위기는 충분히 현실적이다.
정부의 대응은 단호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진행된 외교·국방부 연두 업무보고에서 “우리가 공격을 당하면 백배 천배로 때릴 수 있는 대량응징보복 능력을 확고하게 구축하는 것이 공격을 막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선제타격 교리는 이미 기정사실에 가깝다. “북한의 도발 수위가 더 높아지면 대한민국이 전술핵을 배치한다든지 자체 핵을 보유할 수도 있다”며 “만약 그렇게 된다면 우리 과학기술로 더 이른 시일 안에 우리도 (핵무기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머리발언에서는 “무슨 종전선언이네 하는 상대방 선의에 의한 그런 평화는 지속가능하지 않은 가짜 평화”라고 단정하며 “가짜 평화에 기댄 나라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힘에 의한 평화를 추구하는 국가들은 그 나라의 문명을 발전시켜오면서 인류사회에 이바지했다”고 힘주어 말했다.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로마 군사전략가 베게티우스의 평화 철학에 맥이 닿아 있는 이러한 메시지는, 역대 어느 정부와 비교해도 수위가 높다.
그러나 ‘압도적인 힘을 바탕으로 북한의 도발 의지 자체를 무력화해 평화를 얻겠다’는 현 정부의 평화정책은 내재적 안보딜레마를 수반한다. 우리가 백배 천배 보복을 위협하고 압도적이고 우월한 전쟁을 준비하는 동안, 평양 역시 재래식은 물론 핵전력 증강으로 맞선다. 한반도의 군비경쟁은 격화되고, 위기와 우발적 충돌의 가능성은 한층 더 커진다.
베게티우스의 평화란 협상과 타협을 통한 평화가 아니라, 침략, 폐허, 정복을 전제로 한 카르타고식 전쟁 평화라는 사실을 평양은 끊임없이 되뇌며 의심할 것이다.
안보는 평화의 필요조건이다. 그러나 충분조건이 될 수는 없다. 군사적 억제력과 동맹은 안보에 필수적이나 평화 자체를 보장해주지 않는다. 외부의 위협이 계속 존재하는 것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전쟁, 대량살상, 폐허, 그리고 승리 후에 찾아오는 평화 역시 진정한 평화라 말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윤석열 정부가 지향하는 힘에 기초한 평화론은, 평화의 가면을 쓴 안보론이며, 전쟁불사론이라 하겠다.
평화는 과정이다.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평화를 위해서는, 남북한 간에 긴장 완화, 신뢰 구축, 군비 통제를 추진하는 동시에, 종전선언의 채택을 통해 정전협정을 평화 협정이나 조약으로 전환하려는 ‘평화 만들기’ 작업이 병행돼야 한다. 그 과정에서 비핵화의 돌파구도 마련될 수 있다.
이는 ‘상대방의 선의’에 따른 것이 아니다. 상호 불신과 적대에 따른 우발적 전쟁 발생 가능성을 예방하고, 안정적 평화의 여건을 만들기 위한 계산된 행보다. 냉전기 미국과 소련이 상대의 선의를 신뢰해 다양한 조약을 체결해가며 군비경쟁을 최소화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를 두고 ‘순종적’ 행태이고 ‘가짜 평화’라고 폄훼하는 것은 다분히 상식에도 맞지 않고 불공정해 보인다.
이러한 ‘평화 만들기’ 작업도 불안정한 평화를 관리하는 소극적 방안에 지나지 않는다. 궁극적으로 항구적인 평화는 전쟁의 구조적 원인을 제거할 때 가능해진다.
전쟁은 국가 간 갈등을 말한다. 남과 북이 통일돼 하나의 국가가 되면 자연히 전쟁 걱정은 없어진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모두가 통일을 염원하는 것이다.
무력통일과 적화통일 모두 대안이 될 수 없다. 흡수통일도 여건이 만만치 않다. 대한민국 헌법이 규정하고 있듯이 남북 합의에 따른 평화통일이 가장 바람직하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비핵화, 전면적인 남북 경제 사회 교류, 협력, 그리고 남북연합의 큰 얼개를 잡아나갈 때 한반도 영구 평화의 길도 열린다고 본다.
거듭 강조하지만 ‘강한 안보’ ‘전쟁불사론’만으로 평화가 담보되지 않는다. 명민한 외교력으로 비핵화와 평화 만들기의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나갈 수 있어야 한다.
역사는 군사적 억제를 통한 안보와 외교적 협상을 통한 평화라는 이들 두 지렛대를 정교한 균형감각으로 운용하는 나라만이 전쟁을 피하고 평화의 시간을 최대한 유지했음을 보여준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런 균형된 리더십이라 하겠다.
한반도 평화와 대통령의 리더십
'시사, 상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희연 재판과 한국 사회의 시대착오 (0) | 2023.02.01 |
---|---|
윤 대통령이 무슨 잘못을 한 건지, 똑똑히 보십시오 (0) | 2023.01.31 |
국정원 수사권·검찰 범정, 권력기관 개혁 역주행하나 (0) | 2023.01.30 |
윤 대통령은 ‘왕’이 되고 싶은 건가 (0) | 2023.01.30 |
악은 가난이 아니라 불평등에서 나온다 (0) | 2023.01.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