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조희연 재판과 한국 사회의 시대착오

道雨 2023. 2. 1. 09:00

조희연 재판과 한국 사회의 시대착오

 

 

 

지난 1월27일 서울중앙지법은 해직 교사 5명을 부당하게 특별채용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에게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조 교육감은 전교조 출신 특정 교사 채용을 위해 교원 임용 과정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훼손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조 교육감은 “해직자 특별채용은 사회적 화합을 위한 적극적 행정의 일환으로, 해직자가 제도권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 사회적 정의라고 생각했다”면서, “제도 개선으로 마무리됐어야 할 사안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수사하면서 잘못된 경로를 밟았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임용 절차상 문제를 지적하고 조 교육감은 임용의 사회적 의미를 강조하는 형국이지만, 나는 ‘조희연 재판’에서 퇴행성과 기형성 그리고 보수성을, 한마디로 대한민국이 여전히 얼마나 시대착오적인 사회인지를 뼈저리게 절감한다.

 

첫째, 조희연 재판은 한국 사회의 극단적 퇴행성을 보여준다. 이번 재판의 근원사건은 교사의 해직이며, 해직의 사유는 ‘공직선거법 위반’이다. 간단히 말해, 정치활동이 금지된 교사들이 정치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해직된 것이다. 우선 이 해직 사유 자체가 지극히 시대착오적이다.

교사의 정치적 시민권을 박탈하고 있는 현행법은 한국 민주주의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악법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38개국 중에서 교사의 정치적 시민권을 완전히 박탈하고 있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선진국일수록 교사의 정치 참여가 활발하다. 독일의 경우 국회의원의 13% 안팎이 교사이다. 교사는 독일 의회를 구성하는 직업군 가운데 법률가 다음으로 많은 의원을 배출하는 직군이다. 핀란드 의회는 교사 비율이 20%를 상회하기도 한다. 오이시디 가입국들의 교사 의회 진출 비율은 평균 10% 안팎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국회엔 교사가 한명도 없다. 과거 교사였던 이가 두명 있을 뿐이다.

선진국일수록 교사의 정치적 활동과 사회적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 이런 시대에 우리는 군사독재자가 박탈한 교사의 정치적 시민권을 복원하려고 노력하기는커녕, 시대착오적 악법을 근거로 교사를 해직하고, 그들을 구제한 교육감을 단죄하는 역사적 퇴행을 거듭하고 있다.

 

둘째, 조희연 사건이 공수처가 기소한 첫번째 사건이라는 사실도 어처구니없고, 우리가 얼마나 기형적인 사회에서 살고 있는지를 새삼 깨닫게 한다. 공수처는 알다시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약자로, “고위공직자와 그 가족의 범죄를 척결”하기 위해 설립된 부패수사기관이다. 그런데 조희연 사건이 과연 ‘고위공직자와 그 가족의 범죄’인가. 부당한 권력을 수사하라고 천신만고 끝에 만들어놓은 공수처에서 권력의 부당한 탄압으로 해직된 교사들을 복직시킨 사건을 제일 먼저 문제삼은 것은 한국 사회의 숨은 본성을 드러내준다. 강자와 동일시하고 약자를 혐오하는 현상은 파시즘의 전형적인 행태이다. 이러한 행태가 사회 일반에서뿐만 아니라 권력기관에서도 나타난다는 것은 이 사회가 아직도 후기 파시즘 사회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셋째, 조희연 재판은 한국 사법부의 보수성을 다시금 환기한다. 과연 왜곡된 과거,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는 것이 불법적인 일인가. 켜켜이 쌓인 과거의 적폐를 청산하기 위해서는 형식논리적 인식을 넘어서는 역사적 성찰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이번 재판을 보면서 양승태 사법부의 사법농단이 재연되는 것 아닌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사건의 역사적 사회적 의미를 따지지 않고 기계적으로 내리는 판결은 타당하지도, 정당하지도 않다.

 

조희연 재판과 판결을 보면서, 몇년 전 법무부에서 했던 강연이 떠올랐다. 당시 장관 이하 법무부 고위관료들을 대상으로 했던 강연에서 나는 ‘무사유는 범죄다’라는 한나 아렌트의 유명한 명제를 특히 강조했다.

“무지는 용서할 수 있다. 그러나 무사유는 용서할 수 없다. 무지는 지식의 부정이지만, 무사유는 의미의 부정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유하지 않는 판사들이 히틀러의 파시스트법을 기계적으로 적용한 결과, 인류에 대한 최악의 범죄가 ‘합법적’으로 자행됐다는 역사적 사실에서 길어낸 참혹한 진실이다.

 

조희연 판결은 사안의 ‘의미’에 관한 깊은 사유 없이 법률 ‘지식’을 기계적으로 적용해 내려진 잘못된 판결이다. 정치적으로 부당하며, 역사적으로 위험한 판결이다.

 

지식만 있고 사유가 없는 엘리트가 지배하는 나라의 미래는 암울하다.

사법부는 기능적 법 기술자가 아니라 성찰적 법 해석자가 되어야 한다.

법의 ‘영혼’은 정의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김누리 | 중앙대 교수·독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