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윤 대통령이 무슨 잘못을 한 건지, 똑똑히 보십시오

道雨 2023. 1. 31. 13:12

윤 대통령이 무슨 잘못을 한 건지, 똑똑히 보십시오

 

 

[임상훈의 글로벌리포트] '형제국' UAE가 다 지어 놓은 밥에 코 빠뜨리다

 

프랑스 사회학자 레이몽 아롱은 국제정치를 군인과 외교관의 세계로 묘사한 바 있다. 세계 정부가 없는 국제무대를 보는 냉정하면서 단호한 시각이다. 만물을 파괴와 유지로 보는 것도, 인간관계를 투쟁과 조화로 보는 것도 같은 시각이다. 이 구도에서 볼 때 생산적 파괴가 아니라면 유지가 낫고 절대악과의 투쟁이 아니라면 조화가 나은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국제관계는 전쟁을 피하기 위해 대화를 유지하며, 대화가 없는 순간에도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대화를 갈망한다. 그것이 대화가 단절됐다고 두 나라의 관계를 적대관계로 쉽게 단정하지 않는 이유다. 공식 외교가 단절됐어도 재개를 위한 물밑 대화는 끝없이 이어진다.

 

 

이란과 사우디
 
  지난 29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에서 호세인 아미르-압돌라히안 이란 외무장관(왼쪽 세번째)이 셰이크 무함마드 빈 압둘라흐만 알사니 카타르 부총리겸 외무장관(왼쪽 두번째)과 함께 공동 기자회견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29일 일부 외신에 따르면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는 6년의 외교관계 단절을 끝내고 양국 관계 정상화를 위한 회담을 열 것으로 보인다. 이란 관영통신 <아이알엔에이>(IRNA)도 같은 내용을 보도했다.

이란의 호세인 아미르-압돌라히안(Hossein Amir-Abdollahian) 외무장관은 29일 테헤란에서 열린 카타르 외무장관 무함마드 빈 압둘라흐만 알사니(Mohammed Bin Abdulrahman Al Thani)와의 회담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의 향후 관계에 대한 질문을 받고 그렇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아라비아 반도에 위치한 수니파 다수 국가 카타르는 최근 사우디아라비아 등 아랍 국가들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이란과 외교 관계를 유지해 왔다. 카타르가 이란-사우디아라비아 관계 복원을 위해 어느 정도의 노력을 기울였는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모종의 역할은 한 것으로 보인다.

 

시아파가 다수를 차지하는 이라크도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관계 개선에 수년 동안 중재 역할을 해왔다. 2021년에도 두 나라 사이의 회담을 주선했고 2016년 이란-사우디 국교 단절 이후 지난해까지 모두 다섯 차례의 협상을 이끌어 왔다. 관련 보도가 있던 29일, 이라크 외무장관 푸아드 후세인(Fuad Hussein)은 조만간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이 바그다드에서 장관급 회담을 열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주변 국가들의 중재 노력과 함께 이란 외무장관이 직접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관계 개선을 언급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이란 측은 정부 차원의 발표에 앞서 의회 등 다른 기관이 양국 관계 개선에 대한 긍정적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지난해 1월 이란 의회 소속 국가 안보 및 외교정책 위원회의 잘릴 라히미 자하나바디(jalil rahimi jahanabadi) 위원은 자신 계정의 사회망을 통해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간의 관계가 회복되고 있으며 양국의 대사관이 곧 재개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국제사회가 '천년의 라이벌' 국가로 지목하고 있는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는, 양국 갈등과 지역 긴장을 해소하기 위해, 외교관계 단절 6년 동안 끊임없는 대화를 이어왔다. 특히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관계가 소원해지고 있는 때에 나오는 이란-사우디아라비아의 관계 개선은 중동 현실을 볼 때 시사 하는 바가 크다.

 

 

아랍에미리트의 경우
 
 
 
 
지난 15일 윤석열 대통령이 "UAE의 적은 이란"이라고 지목한 당사국 아랍에미리트연방(UAE)의 경우, 사우디아라비아보다 이란과의 관계가 더 민감한 문제다. 사실 이란과 아랍에미리트(특히 두바이)의 관계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와 비교해 더더욱 적대관계로 보기 어렵다.

오히려 지난 6년 동안 두 나라는 많은 교역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서방의 이란 제재에 대해서도 아랍에미리트(두바이)는 내심 해제를 바라고 있던 측면도 있었다. 이란 입장에서는 서방의 제재 속에서 그나마 숨통을 틔워주고 있던 곳이 아랍에미리트였다.

좁은 걸프만*을 사이에 둔 이란과 두바이는 정치 이상으로 경제에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란에 대한 미국의 첫 번째 제재가 있었던 1979년 이후에도 걸프만에서는 쉴 틈 없이 상선이 오갔고 두 나라의 무역은 지속돼 왔다.

(* '걸프(gulf)'가 영어로 '만(灣)'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걸프만'이 동어반복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상용되고 있는 '페르시아만', '아라비아만'이 특정 국가에 유리할 수 있는 지명이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걸프만'으로 쓴다. 실제 영어권에서도 'gulf'를 고유명사화해 The Gulf라고 쓰기도 한다.)

 

하지만 이란 핵 개발 의혹 이후 더 강력해진 서방의 이란 제재 이후 두 나라 사이의 교역은 눈에 띄게 줄었다. 이러한 서방의 제재에 대해 이란 이상으로 불편한 시선을 감추지 못하는 곳이 두바이다. 미국에 의해 이란핵합의(JCPOA)가 파기된 후의 실망, 협상 재개 소식에 다시 갖는 희망을 누구보다 직접적으로 표출한 사람들이 두바이 시민들이다.

 

그러던 두 나라 사이에 위기가 찾아 온 것은 지난해 1월. 아라비아반도 남단에 위치한 예멘은 분단과 통일을 반복하면서 내전까지 겪는 불행을 겪고 있다. 그러는 와중에 이슬람 시아파의 후티 반군이 예멘 정부군을 위협하자, 수니파 종주국 사우디아라비아는 예멘 내전에 관여하게 된다.

 

그러자 후티 반군은 시아파 종주국 이란의 지원을 받으며 사우디아라비아를 향한 공격도 서슴지 않게 됐다. 내전이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대리전 양상으로 변하면서 예멘은 중동이라는 화약고의 또 다른 불씨가 되고 있었다. 급기야 지난해 1월 17일, 후티 반군의 드론 공격이 사우디아라비아가 아닌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까지 공격하기에 이른다.

 

후티 반군의 기습 폭격으로 사망 피해까지 당한 아랍에미리트 입장에서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자신들의 행위임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후티 반군에 대해서 뿐이 아니었다. 이란의 승인 또는 개입, 혹은 적어도 사전 인지 없이 후티 반군이 아랍에미리트를 향해 드론 공격을 한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아랍에미리트는 후티 반군을 향한 강한 비판과 대응작전 표명에도 불구하고, 이란에 대해서는 어떠한 비난도, 언급도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앞서 기술한 대로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이 긴장 관계 속에서도 관계 개선을 위해 물밑 대화를 이어가던 참이었다.

 

아랍에미리트는 서방의 이란 제재로 인한 대이란 무역 침체, 그리고 엎친 데 덮친 격의 팬데믹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지역 안정을 위해서는 이란과의 관계 정상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었다.

 

 

 

윤 대통령의 가장 큰 잘못
 
  2021년 12월 6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에서 알리 샴카니 이란 최고국가안보회의 의장(오른쪽)이 셰이크 타눈 빈 자이드 알 나흐얀 아랍에미리트(UAE) 국가안보보좌관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그러한 인내의 대가는 머지않아 찾아왔다. 지난해 8월 아랍에미리트는 드디어 이란과 대사급 외교관계를 복원할 수 있게 됐다. 아랍에미리트 외무부는 쿠웨이트에 이어 이란과 관계 정상화를 발표하며 중동의 정세 안정에 한층 다가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란 정부 또한 그들의 최우선 과제로 걸프만 국가들과의 관계 정상화를 꼽으면서 지역 안정의 회복은 소통과 협력을 강화하려는 아랍에미리트의 노력의 결과라고 치켜세웠다. 이처럼 각고의 노력 끝에 이란과의 관계 정상화를 이룬 아랍에미리트는 8월 21일 대사급 외교의 재개를 발표했다.

이것이 지난 15일 윤석열 대통령이 아랍에미리트 방문 중 남긴 "UAE의 적은 이란" 발언의 뒤에 놓인 지역 상황이다.

대통령으로서 걸프만 지역과 한반도 상황의 부적절한 비교로 인해 야기한 국내 정치 논란은 제쳐 두자. 이란을 향한 사과 없는 해명도 그렇다 치자. 하지만 스스로 형제국이라 칭한 아랍에미리트가 다 지어 놓은 밥에 코 빠뜨린 실수에 대해서는 적어도 유감표시는 해야 하지 않을까?

 

 

 

 

[임상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