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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제국에 대들다니?’ 소부장 국산화가 내팽개쳐진 맥락

道雨 2023. 4. 3. 10:15

‘감히 제국에 대들다니?’ 소부장 국산화가 내팽개쳐진 맥락

 

 

 

일본을 향한 윤석열 대통령의 ‘구애 외교’를 보면서, 이창동 감독의 데뷔작 <초록물고기>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

배태곤(문성근)의 옛 두목 김양길(동방우)이 감옥에서 출소한 뒤 배태곤을 찾아와 이렇게 말한다.

“내가 옛날에 강아지를 한마리 키우면서 말이야, 계속 발길로 걷어찼거든? 근데 이 강아지가 나중에 이~따만한 셰퍼드가 됐어요. 근데도 나한테 덤벼들질 못해. 왜 그런지 알아? 내가 발만 살짝 들어도 일마한테는 내 발이 이~따만하게 보이는 거야.”

 

2019년 일본이 보복성 수출규제 방안을 꺼내 들었을 때, 누군가에겐 일본이 들어올린 발이 정말로 “이~따만하게” 보였을 것이다. 그들은 일본이 아닌 한국 정부를 탓했고, 몇달 안에 회복 불가능한 타격을 입을 거라는 저주 섞인 전망을 하기도 했다. 상대가 안 되니 꿇으라는 얘기였다.

 

이번 ‘조공 외교’ 진상품 목록에 ‘일본에 대한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철회’를 올려놓고, 윤 대통령은 속으로 ‘비정상의 정상화’를 외쳤을지 모른다. 지난 4년간 5조원의 예산을 투입해 상당한 성과를 낸 첨단산업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국산화가 그에겐 비정상으로 보였을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소부장 국산화를 부질없는 짓으로 여기는 분위기는 지난해부터 감지됐다. 관련 예산을 대폭 삭감했고, 소부장 정책의 범부처 컨트롤타워인 소부장경쟁력강화위원회는 대통령에서 총리 소속으로 급을 낮췄다.

 

삼성전자가 300조원을 들여 경기도 용인에 조성하는 반도체 클러스터에 일본 소부장 기업을 대거 유치하겠다는 윤 대통령의 최근 발언에 이르면 의심은 확신이 된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한국 기업과 일본 기업이 다르지 않은 것이다. 왜 굳이 돈을 써가면서 국산화를 해야 하는지 이해를 못 하는 것 같다.

한-일 국교 정상화가 이뤄진 지 60년이 다 되어가지만 한국은 단 한번도 대일 무역수지 적자에서 벗어난 적이 없으며, 일본이 언제든 다시 경제를 무기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고려의 대상도 아닌 것이다.

내선일체 사상의 그림자를 느끼는 것은 나만의 지나친 피해의식일까?

 

일본이 수출규제 카드를 꺼낸 2019년은 미국이 중국 화웨이 부회장 멍완저우를 기소하며 중국 때리기를 시작한 해다. 이때부터 중국은 정보기술(IT)을 비롯한 첨단산업 국산화에 박차를 가했다.

우리나라 최대 무역 흑자국이던 중국이 올해 들어 최대 적자국으로 변한 이유 중 하나가 중국의 소부장 국산화 열풍이다. 윤석열 정부는 만년 적자국인 일본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는 돌파구를 스스로 막아버리고, 최대 흑자국이었던 중국과의 디커플링은 미·일 ‘몰빵’ 외교로 재촉하고 있다.

지난해 3월 이래 13개월째 이어지는 무역적자에 이 정부가 과연 관심이나 있는지 의문이다. 미국의 재조지은(再造之恩)을 갚으려면 무역적자쯤 아무것도 아니란 말인가.

이러다 독도까지 넘겨줄 것 같다는 농담 같은 걱정이 시중에 떠도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보수가 진보를 비판하는 단골 레퍼토리 가운데 ‘자학적 국가관’이라는 항목이 있었다. 일본에서 제국주의 역사를 부끄러워하는 양심세력을 비판하던 말을, 한국 우파가 수입해 남한 단독정부 수립과 산업화의 부정적 이면을 들추는 민주세력을 성토하는 데 썼다.

지금은 사라진 이 말을 일부라도 되살려, 대일 ‘퍼주기’ 외교에 열중하는 윤 대통령과 그의 동지들에게 돌려줘야 할 것 같다는 의무감이 든다.

 

미국과 일본이라는 제국의 품속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한국 보수의 모태신앙을 묘사하기에 ‘자학적 세계관’만큼 적절한 조어는 없을 것이다. 자학적 세계관의 저 깊은 곳에는, 제국의 신민이 되지 못한 ‘2등 국민’이라는 열등감이 존재한다. 감히 제국에 대들거나 대등해지려는 시도조차 불경하다고 생각한다. 성견이 되어서도 새끼 때의 폭력을 사랑으로 기억하며 알아서 기는 셰퍼드처럼, 윤석열 정부의 일본을 향한 짝사랑은 비루해 보인다.

 

지금을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비유하든 명-청 교체기의 조선에 비유하든 마찬가지다.

‘자유’라는 이념으로 세계를 편 가르는 윤 대통령의 이분법 외교는, 20세기 냉전 사고에 갇힌 관념 우파의 이상향일 뿐이며, 도발의 핑곗거리를 찾는 관련국들에 스스로 과녁을 자처하는 포신구화(抱薪救火)이자, 자국이기주의를 노골화하는 이른바 동맹국들의 경제적 호구가 되는 길이다.

 

 

 

이재성 |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