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검사스러운’ 굴욕 외교

道雨 2023. 4. 17. 08:45

‘검사스러운’ 굴욕 외교

 

 

 

“제3조 ①누구든지 이 법(통신비밀보호법)과 형사소송법 또는 군사법원법의 규정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중략)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하지 못한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법이다. 수사기관이든 정보기관이든 법원의 영장 없이 도·감청을 해서는 안 된다.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는 중대 범죄다.

 

유출된 미국 기밀문서에서 우리나라 국가안보실이 도청된 정황이 드러났다. 해당 문서에는 전자장비로 수집된 정보를 뜻하는 ‘SI’ 코드가 명기돼 있다. 도청 의혹에 대해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 전략소통조정관은 12일 “국가안보를 지키는 데 필요한 일”이라며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도청을 시인한 셈이다.

 

외국인이나 기관이 자국 영토 안에서 자국 법을 위반한 행위를 저지른 정황이 드러났을 때, 이를 모른 체하는 것은 국가의 근간인 법체계를 팽개치는 일이고, 곧 국가의 주권과 독립성을 포기하는 일이다. 정상적인 국가라면 강력히 항의하고 진상을 조사하고 필요하면 수사도 해야 한다. 그 결과에 상응하는 조처가 따라야 한다.

 

독일이 그랬다. 2013년 미국 정보기관이 앙겔라 메르켈 당시 총리의 휴대전화를 도청했다는 의혹이 보도되자, 메르켈은 미국 대통령에게 직접 항의했다. 독일 연방의회는 위원회를 꾸려 조사를 벌였다. 그리고 연방검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연방검찰은 독일 정보기관 직원을 이중 스파이 혐의로 체포했고, 독일 정부는 수사에서 포착된 ‘의문스러운 활동’을 이유로 베를린 주재 미국 중앙정보국 책임자를 추방했다.

 

다만 도청 자체를 처벌하지는 못했다. 연방검찰은 1년여의 수사 끝에 증거불충분으로 사건을 종결했다. 유죄 판결을 받으려면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도청을 했는지 구체적인 사실을 증명해야 하는데, 미국 쪽의 비협조 속에 형사소송법이 요구하는 수준의 증거 수집이 어려웠다는 이유였다.

 

비록 형사처벌까지 나아가지는 못했지만, 독일은 자국 영토에서 벌어진 범죄 혐의에 대해 최대한 대응한 셈이다. 당시 미국 정보기관의 도청을 당한 것으로 보도된 멕시코 대통령도 자체 수사를 지시했고, 브라질 대통령은 미국 방문을 취소했다. 국가안보실 도청 정황에도 항의와 진상조사는커녕, “거짓 의혹”이라며 ‘용의자’를 두둔하는 데 급급해온 우리 정부의 대응과 사뭇 대조된다. 범죄 정황에도 눈만 끔벅이는 이런 식의 대응이면 미국 정보기관에 불법 도청의 ‘치외법권’을 주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대일 굴욕 외교에서도 대한민국의 법치는 심각하게 훼손됐다.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에 대한 ‘제3자 변제’ 방안은, 가해 일본 기업들의 배상 책임을 확인한 대법원 판결을 정면으로 거스르기 때문이다. 법적 분쟁의 최종 심판자인 대법원의 권위가 무너지면 국가의 법치는 질서를 잃게 된다.

 

더구나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 판결을 지연시키기 위해 대법원과 거래한 것을 ‘사법농단’으로 처벌하는 데 앞장섰던 윤석열 대통령이, 최종 판결 내용을 사실상 뒤집는 더 심각한 농단을 벌이고 있다.

 

구한말 일본 군경과 민간인은 조선에서 불평등조약으로 얻어낸 치외법권을 누렸다. 범죄를 저지르고도 처벌받지 않거나 가벼운 처벌만 받았다.

이후 일제 강점기에는 군 위안부·강제동원 같은 반인도 범죄가 거리낌 없이 자행됐다. 우리가 주권을 되찾은 뒤 비로소 민사소송 형태로나마 역사적 정의를 실현해가던 상황이다.

그런데 가해 일본 기업의 변제 책임을 우리 정부가 앞장서 면제해주려 한다. 일본 기업에 다시 치외법권이라도 주려는 건가. 이러고도 독립된 법치국가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법치를 강조하는 ‘검사 정권’이 시전하는 잇따른 ‘법치부정 외교’가 언뜻 이해되지 않는다. 하지만 검찰이 법치를 강조하면서도 정반대의 행태를 일삼아왔다는 점을 떠올리면, 지금의 비상식적인 외교도 이상할 게 없다.

검찰은 타깃으로 정한 사람은 가혹하게 몰아붙이지만, 봐줘야 할 사람은 법의 잣대를 구부려 화끈하게 봐준다. ‘제 식구 감싸기’는 오랜 전통으로 자리잡았고, 검사 출신 대통령의 배우자는 그 정점의 수혜를 누리고 있으니, 이들에게 부여된 치외법권의 이름이 ‘유권무죄’요 ‘유검무죄’다. 그러니 ‘미일무죄’라는 또다른 치외법권의 창설도 놀랍지 않다.

 

정의와 공정에 눈감는 선택적 수사·기소처럼, 나라의 주권과 역사적 정의에 눈감는 독단적 외교도 뻔뻔하고 화끈하게 밀어붙이면 그만이다.

국민의 분노와 비판은 어차피 고려 사항이 아니다.

외교도 참 ‘검사스럽게’ 하고 있다.

 

 

 

박용현 |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