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러 관계와 에너지 지정학
중-러 관계는 ‘동맹으로의 진화’인가, 아니면 ‘불편한 결혼’인가?
지난 3월 중-러 정상회담으로 10년 동안 시진핑 주석은 러시아를 10번 방문했고, 푸틴 대통령과 양자·다자 회담을 포함, 40번 만났다.
1972년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했을 때, 언론은 ‘세상을 바꾼 일주일’이라고 평가했다. 그때 미국은 냉전 시대를 관리하기 위해 미·중·소 삼각관계를 활용했다. 지금 중국 역시 러시아와의 협력으로 미국을 견제하려고 한다.
앞으로 펼쳐질 강대국 외교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중국과 러시아는 오랜 세월 가깝고도 먼 이웃이었다. 러시아는 중국이 세번 동맹을 맺은 유일한 나라다. 물론 동맹의 약속은 세번 모두 파기되었다. 1896년 6월 청나라 말기의 상호원조조약은 러일 전쟁에서 러시아가 패배하면서, 1945년 8월 중화민국과 소련의 우호동맹조약은 국민당의 패배로, 그리고 1950년 2월 중-소 우호동맹조약은 관계 악화로 폐기되었다.
1956년부터 중-소 분쟁을 겪었고, 1969년 우수리강 중류에서 군사적으로 충돌했으며, 1970년대 이후에도 냉랭한 관계를 지속했다.
1989년 5월 고르바초프가 30여년 만에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 덩샤오핑은 ‘악수는 하되, 포옹은 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내렸다.
1990년대의 해빙기를 거쳐, 2005년 세계에서 가장 긴 국경협정을 마무리했을 때, 중-러 관계는 질적으로 달라졌다. 1964년 공식적인 국경 협상을 시작한 지 40여년 만의 성과였다. 1689년 네르친스크 조약 이후 300년을 훌쩍 넘겨서야 양국은 불평등 관계를 청산했다.
미-중 경쟁 시대에 접어들면서, 중-러의 전략적 협력은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기능은 양국의 공조로 마비되었고, 중-러 협력은 미국의 힘의 공백 지대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에너지 지정학의 변화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천연가스의 경우 가스관을 통해 기체 상태로 공급하는 것(Pipeline Natural Gas·PNG)이 액화해서 공급하는 방식(LNG)보다 싸다. 가스관 공사는 대규모 시설 투자가 필요하므로, 천연가스의 생산, 운송, 판매가 실행되면 공급 방향을 바꾸거나 물량을 조절하기 쉽지 않다.
1970년대 초 유럽이 가스관으로 소련의 천연가스를 수입하려 했던 이유는 중동의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에너지 지정학의 변화는 장기적으로 지역 질서를 바꾼다. 유럽과 소련의 가스관 연결은 결국 1975년 유럽의 다자간 안보 협력체인 ‘헬싱키 프로세스’로 나아갔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으로 천연가스가 가져온 유럽의 평화는 막을 내렸다.
유럽으로 가던 천연가스는 이제 중국으로 방향을 틀었다. 2019년 12월 중국으로 가는 가스관인 ‘시베리아의 힘’이 완공되고, 2022년 2월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를 침략하기 3주 전에 베이징을 방문해서, 중국과의 천연가스 30년 공급 계약에 서명했다. 그리고 지난달 정상회담에서 새로운 가스관인 ‘시베리아의 힘2’를 추진하기로 했다. 몽골 구간 960㎞를 통과하는 새로운 노선은 2024년부터 건설할 예정이다.
물론 양국의 의견 차이도 있다. 러시아는 천연가스 가격을 유럽 수준으로 원하지만, 중국은 그렇지 않다. 국제적인 제재 상황에서, 공급자가 아니라 수요자가 협상의 우위에 서 있다.
중국은 여전히 미국·유럽과의 관계를 유지하고자 하며, 제재라는 국제 규범의 선을 넘지 않으려 하고, 러시아가 원하는 무기 지원에도 부정적이다. 중-러 관계를 중국이 주도할 가능성이 커졌고, 러시아의 대중국 의존도는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다.
세계는 에너지 지정학의 변화를 주시하며, 에너지의 안정적 확보를 위해 외교력을 총동원한다. 유럽은 러시아로부터의 에너지 의존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녹색 에너지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2022년 5월 발표한 유럽연합의 에너지 전환계획은 에너지 절약, 수입 다각화와 더불어 적극적인 탈탄소 정책을 지향한다. 재생에너지 목표를 높이고, 태양광 발전설비를 두 배로 늘리고, 재생에너지 관련 허가와 규제를 간소화했다.
에너지 지정학의 급변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가?
에너지 수입의 다각화가 아니라 편중은 위험하며, 탈탄소 에너지 전환의 속도 조절은 시대착오다.
한·미·일 삼각관계에 갇혀 세계 질서 변화를 보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에너지 지정학의 변화는 장기적이며 경로 의존성이 작용하기 때문에, 기회를 잃으면 그만큼 후유증도 클 것이다.
김연철 | 전 통일부 장관·인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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