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는 미국 도청에 ‘관제 데모’로 항의했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11일(현지시각) 미국 방문에서 한국 대통령실에 대한 미국의 도·감청에 대해 “미국이 우리에게 어떤 악의를 가지고 했다는 정황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고 말한 것을 보고는, 곧 한국에서 사생활 보호법도 바꿔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남의 집이나 사생활을 엿보는 것은 많은 경우 관음증 때문이다. 관음증이란 자신의 만족감이기에 상대에 대한 ‘악의’는 아니다. 미국이 우리를 도·감청한 것은 자신들의 이익 때문이기에 우리에 대한 ‘악의’라고 보기는 힘들다고 그는 생각하는 것 같다.
윤석열 정권의 실세인 김 차장이 미국의 도·감청을 별일 아니라고 넘기는데, 한국의 사생활 보호법도 그에 맞춰서 바꿔야 할 것이다.
이런 그의 인식은 윤석열 정권 출범 전부터 그들의 언행을 보면 논리적으로 부합한다. 그들은 한-미 동맹 강화, 한·미·일 동맹 일체화를 국익의 최우선으로 놓고, 이를 위해서는 걸림돌이 되는 것은 우리가 선제적으로 양보해야 한다는 외교·안보 행보를 보여왔다.
미국과 일본이 원하는 국익을 챙겨주는 것이 동맹의 강화에 결정적이라고 보면, 미·일의 국익이 바로 우리의 국익이 된다. 미국이 국익을 챙기려는 도·감청도 우리에게는 ‘선의의 도·감청’으로 되는 구조이다. 미국이 한국을 도·감청해서 사정을 샅샅이 파악해, 한국에게 맞춤형으로 지도편달할 수도 있지 않은가?
후보 시절에 윤 대통령은 중국과 북한을 겨냥한 ‘멸공’ 메시지를 소셜미디어에 올린 재벌 3세에게 호응해, 멸치와 콩을 쇼핑하는 퍼포먼스인 ‘멸콩 챌린지’에 동참했다.
그는 더 나아가 강연에서 “한국 국민들, 특히 청년들의 대부분은 중국을 싫어한다”는 말도 했다.
‘사드 추가 배치’라는 한줄 공약을 소셜미디어에 이어가, 한-중 사이에서 봉인된 사드 문제를 다시 불거지게 했다.
이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윤 대통령과 그 참모들이 미국의 적은 우리에게도 적이고, 미국의 국익은 우리의 국익이라는 확고한 한-미 동조화 철학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이명박 정부 때 일방적인 친일 노선으로 결국 한-일 관계 파탄에 책임이 있는 김태효가 재기용되고, 다른 외교안보 참모들이 낙마하는데도 결국 최고 실세로 등극한 것도 이해가 된다.
윤 대통령의 지난해 9월 방미 때 불거진 욕설 파문도 지금 생각하니 대통령실의 해명이 논리적으로 맞다는 느낌이 든다.
그는 미국 의회의 글로벌펀드 승인 여부와 관련해 “국회에서 이 ××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이 쪽팔려서 어떻게 하나?”라고 말한 정황이 드러났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그가 “국회에서 이 ××들이(자신이 바이든에게 오늘 약속한 공여금을 야당이) 승인 안 해주고 (예산안을) 날리면 (내가) 쪽팔려서 어떡하나”라고 발언했다며, 미국 의회와 조 바이든 대통령을 모욕 준 것이 아니라 우리 야당을 비판한 것이라고 적극 해명했다. 대통령실의 이 해명이 맞는 것 같다. 미국과 한국의 국익을 하나로 보는 윤 대통령의 인식에서는 미국 의회와 바이든 대통령을 욕보일 리가 없지 않은가?
행정부에서 김태효 같은 인사들이 실세로 등극해 국익의 개념을 전도시키는 동안, 집권 여당에서는 최고위원들이 노태우 정부 이후 국가적 컨센서스가 된 과거사 문제를 다시 부정하는 말들이 터져 나온다.
김재원 최고위원은 광신적인 극우 기독교 세력 인사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광주민주화운동을 부정하고, 태영호 최고위원은 제주 4·3 사건을 다시 ‘빨갱이들의 폭동’으로 몰고 있다.
안에서 과거사 문제를 이렇게 부정하고 생채기를 다시 내는데, 밖으로 나가 위안부나 강제동원 문제에서 가해자를 두둔하는 행보를 하는 것도 이상하지가 않다. 요즘 미국이나 서방에서 극우화가 추세이니, 한국도 뒤처지지 않으려는 윤 정부 인사들의 글로벌 스탠더드 동조화 노력은 가상하기만 하다.
나의 첫 시위는 1978년 엄혹한 유신 시절에 고등학교 교정에서였다. 고등학생인 우리들은 운동장에 집합해 미국을 규탄했다. 당시 청와대에 대한 미국의 도청이 불거지자, 정부의 관제 데모에 동원된 것이다. 전투경찰도 출동해 대기하자, 우리는 뭔가 대단한 일을 한다고 생각했고, 애국심과 민족주의 감정이 뭉클했다.
40년 지나 강산이 네번 바뀌니, 이제 미국의 도·감청은 ‘선의’가 됐다. 미국에 어깃장을 놓은 박정희도 규탄해야 한다.
한국과 미국의 국익이 싱크로율 100%가 되는 이 상황 앞에서, 나는 다시 뭉클한 애국심과 민족주의를 느껴야 하는가?
정의길 국제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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