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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해임 정연주 “오만 축적되면 무너졌다, 박정희 때부터”

道雨 2023. 9. 12. 10:41

세번째 해임 정연주 “오만 축적되면 무너졌다, 박정희 때부터”

 

 

박용현 논설위원의 직격 인터뷰┃정연주 전 방송통신심의위원장

유신 때 동아일보 해직, MB 때 KBS 사장 해임
윤 정부 들어 방통심의위원장 해임…세번째 희생양

 

 

*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해촉한 정연주 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24일 오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 사옥에서 부당한 해촉 과정과 정부의 언론장악 시도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정연주 전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위원장은 세번 쫓겨났다.

박정희 유신독재 때인 1975년 동아일보에서 해직됐다.

이명박(MB) 정부 때인 2008년 한국방송(KBS) 사장에서 해임됐다.

그리고 2023년 8월 윤석열 대통령에 의해 방심위원장에서 해촉됐다.

 

세번의 해직·해임·해촉은 그를 권력의 언론장악에 맞선 싸움으로 이끌었다.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던” 유신독재 시대를 “언론자유의 씨앗 하나 심는 마음으로” 살아남았다.

15년 전 이명박 정부가 감사원, 검찰, 국세청 등 권력기관을 총동원해 그를 해임했을 때도, 기나긴 법정투쟁 끝에 해임 무효 판결을 받았다. 검찰의 무리한 ‘정연주 사장 수사·기소’는 정치 검찰의 대표적 사례로 기록됐다.

 

이번에는 어떨까.

한국방송 이사장, 문화방송(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방심위원장 등이 속전속결로 해임되고 있는 현 상황에 대해 그는 “엠비 때는 그래도 모양새는 그럴듯하게 갖추려고 했는데, 지금은 최소한의 도의도 없이 무지막지하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어마어마하게 바뀐 디지털 세상에서 옛날 아날로그 시대 방식의 언론장악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인터뷰는 지난 24일 한겨레 사옥에서 진행됐다.

 

 

341건 식사비 중 3만 몇천원 4건이 해촉 사유 추정…절차도 안 지켜 

 

 

―해촉에 이르는 과정이 어땠나?

 

“감사원 출신이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 사무처장으로 와서 일종의 별동대 같은 감사팀을 만들었다. 감사원 직원 4명, 검찰 수사관 2명, 경찰 2명, 기존 방통위 감사실 직원 3명 등 11명이 방심위에 와서 한달 넘게 머물며 온갖 것을 다 뒤졌다. 하지만 8월10일 회계검사 결과가 나온 것을 보니 별게 없었다.

그 이튿날 감사원에서 21일부터 현장조사를 나오겠다고 통보가 왔다. 우리 직원들은 ‘방통위 회계감사에서 뭐가 안 나오니까 감사원에서 추가 감사로 또 뭐를 찾아내려고 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감사원 조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17일 오후 나를 해촉했다는 기사가 뜨더라. 그러고 나서 해촉 공문이 왔다.

 

―해촉 사유는?

 

“공문을 받아 보니 맹탕이었다. 행정절차법이라는 게 있는데, 해촉·해임을 할 때는 근거와 이유를 구체적으로 적시하게 돼 있다. 자의적으로 그냥 기분 나쁘다고 해임하는 걸 막기 위해서다. 그런데 공문에 그런 내용이 하나도 없다.(실제 공문에는 ‘방송통신위원회법 제8조 및 제20조에 따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을 해촉함’이라는 문구와 함께 해당 법조항만 적어놨을 뿐, 어떤 행위로 어느 조항을 위반했는지 전혀 제시돼 있지 않았다)

그리고 해촉 과정에는 반드시 청문 절차, 그러니까 법정으로 치면 최후진술의 기회를 줘야 된다. 한국방송 사장에서 해임된 뒤 행정소송에서 이겼는데, 그 이유가 이런 해명의 기회를 안 줬다는 것이었다.

이번 해촉 과정은 그 절차를 다 어겼다. 해촉 당하는 이유도 모르고 나를 소명할 수 있는 기회도 없이, 막말로 그냥 단두대에서 처형당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나뿐만이 아니고, 이번에 해임된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 남영진 한국방송 이사장, 권태선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의 경우도 아직 조사도 끝나지 않은 것을 가져다가 해임 사유로 삼았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면서 왜 저렇게 바보 같은 짓을 할까, 무식한 걸까 아니면 권력에 눈이 멀어 아무것도 안 보이는 것일까, 그런 생각이 든다.”

 

―대통령실에서는 방통위 회계검사 결과 업무추진비 부당 집행 등이 나왔다고 언급했는데.

 

“공문에 적시하지 않았으니, 그게 해촉 이유라고 짐작만 할 뿐이다. 재직 2년 동안 법인카드를 341건 썼는데, 그중에 13건이 1인당 식사비를 3만원 이상 쓰지 말라는 내부 예산집행지침을 어긴 게 문제 됐다. 비서실에서 결제한 게 9건, 내가 직접 한 게 4건이다. 평소 3만원 넘는 경우를 사전에 알았을 때는 항상 개인카드로 처리를 했고, 나중에 인지한 경우에는 비서를 통해 법인카드 결제를 취소하고 개인카드로 다시 결제를 했다. 미처 모르고 넘어갔던 게 4건 있었던 것 같다. 이번에 보니 3만 몇천원짜리를 먹은 것으로 돼 있더라. 어쨌든 꼼꼼히 챙기지 못한 건 불찰이지만, 업무추진비를 부당하게 범죄적으로 사용한 것처럼 몰아가는 것은 억울하다. 사실 방심위의 ‘3만원 규정’은 모범 사례다. 조사하던 감사원 직원한테 감사원은 식사비가 얼마로 책정돼 있는지 물어봤다. (규정 자체가) 없다고 하더라. 감사원 기준을 우리한테 적용하면 이건 아예 문제 자체가 되지도 않는 것이다. 방심위가 2008년 생길 때 만든 3만원 규정을 15년 동안 올리지 않고 적용해왔다. 그런 조직의 건강함 때문에 오히려 전부 죄인이 된 셈이다.”

 

―최근 일부 내역이 공개된 검찰의 업무추진비 사용과도 비교된다.

 

“이번에 규정을 어겼다는 액수를 다 합쳐봤더니 십몇만원 정도 되더라.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 때 하루 저녁에 240만원어치 한우를 먹고 그랬잖나. 물론 술도 먹었겠고. 이건 뭐냐는 거다. 다른 사람이 업무추진비 갖고 시비를 걸면 고개를 끄덕이겠지만, 국민 세금인 업무추진비·특수활동비를 도대체 얼마를 썼는지도 모르고 기록도 안 남겨놓고 기록이 휘발돼서 사라졌다는 해괴한 설명까지 나오는데, 그런 사람이 나를 쫓아내면 이건 말이 안 되는 것이다. 이 사람들의 인지부조화랄까 자기모순이 정말 이해가 안 된다.”

 

* 정연주 전 한국방송 사장이 해임처분 무효 청구소송에서 최종 승소한 2012년 2월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 앞에서 밝은 표정으로 변호인과 통화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한국방송 사장에서 해임된 이명박 정부 때와 비교해 본다면 어떤가?

 

“엠비 때는 하는 방식이 지금하고는 조금 달랐다. 그때도 권력기관을 총동원했지만 그래도 모양새는 그럴듯하게 갖췄다. 감사원에서 예비감사하고 본감사하고, 그다음에 상임위원 회의도 거치고, 한국방송 이사회에서 해임 제청도 하고….

그런데 이번에 보면 최소한의 도의도 없다. 별동대 하나 만들어 놓고 거기서 아무것도 안 나오니까 그냥 이런 공문 하나 보내 잘라버리고.”

 

―당시 검찰이 무리한 기소를 했지만 결국 무죄가 확정됐고 검찰과거사위원회에서 ‘정치적 수사·기소’라는 평가도 나왔다.

 

“그래서 나중에 검찰총장이 사과했다. 지금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절차적 정당성, 이런 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식이다. 구실 한두개만 있으면 그냥 잘라버린다. 특수부 검사들 행태와 똑같은 것이다. 수도 없이 압수수색하고 별건수사하고 그래서 기소만 하면 되잖나. 그다음에 무죄판결 나도 상관없다. 나를 기소했던 검사들 다 승승장구했다. 마구 압수수색하고 끊임없이 사람 괴롭히고, 특히 법의 이름으로, 잔인하다.”

 

 

종편 통한 언론보수화 이어 공영방송 해체 시도
 

―이렇게 무리하게 방송장악을 밀어붙이는 의도가 무엇이라고 보나?

 

“한국방송 사장에서 해임된 뒤 강연을 많이 다녔는데, 당시 종합편성채널을 조중동한테 주려는 것은, 장기집권을 위한 토대를 쌓기 위해 일본 모델을 따라가는 거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일본이 신문·방송 겸업을 해서 언론 풍토가 거의 90% 보수다. 그러니까 자민당 장기집권이 가능한 건데, 그것을 그대로 따온 게 엠비 때 종편이다.

이번에는 그보다 조금 더 큰 판으로 가려고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종편을 만들어 놨지만 공영방송 체제인 한국방송·문화방송의 힘이 과거만큼은 아니어도 여전히 막강하다. 흔히들 이렇게 비유하는데, 지상파 방송은 그동안 쌓여 있는 전통적인 힘 때문에 여론에 대해 대포를 쏘는 것과 같다. 종편이나 뉴스채널은 소총이다. 과거만은 못하지만 그럼에도 지상파 방송의 힘을 꺾고 싶은 것이다. 해체시키고 싶은 것이다.”

 

―이동관 신임 방송통신위원장을 비롯해 이명박 정부 인사들이 대거 기용되고 있는데, 과거의 방송장악 경험에 기대려 한다는 인상도 받는다.

 

“첫째는 집권 세력의 빈약한 인재 풀을 보여주는 것이다. 검찰들 데려다 썼는데 그 바닥이 뻔하지 않나. 둘째는 과거의 경험이 있으니 데려다 쓰는 것인데, 그 경험이란 게 결국 자기 대통령을 감옥에 넣은 것 아닌가. 이명박 대통령 때 해임되고 행정소송에 형사재판까지 받으면서 원형탈모도 생겼었는데, 그때 힘들기는 했지만 나 자신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정권의 폭력성, 그들의 무모함이 다 노출된다, 내가 있는 이 자리가 역사의 자리다.

실제로 당시처럼 방송을 장악하기 위해 무리를 할 경우에는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돼 있다는 것을 우리 역사가 증명하지 않나. 그래서 절차적 정당성 등 여러가지가 지켜져야 되는데, 이번에도 그것을 안 하더라.

이 사람들이 엠비 정권이나 박근혜 정부에서 있었던 역사적인 교훈에 관심이 없고, 오로지 그때그 때 써먹을 기술자들만 뽑아 온다. 그 기술자들이 무슨 영혼이 있거나 철학이 있거나 나라 전체를 보는 눈이 있는 게 아니잖나. 나라 전체로 보면 대단히 불행한 것이다.”

 

*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해촉한 정연주 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24일 오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 사옥에서 부당한 해촉 과정과 정부의 언론장악 시도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KBS 2TV·MBC 민영화 땐 엄청난 파열음 날 것
 

―방송장악과 관련한 현안으로 한국방송 수신료 분리징수 문제가 있다. 어떻게 보나?

 

“한국방송의 아킬레스건이기 때문에 맨 처음에 손을 댄 것이다. 한국방송 예산이 1조5천억원인데, 이 가운데 수신료 수입이 거의 7천억원에 이른다. 분리징수를 하면 많이 걷혀야 1천억원 될까 말까 한다. 예산의 3분의 1이 사라지는데 어떻게 운영을 하나. 이 수신료 분리징수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앞으로 방송 재편에 대한 트리거라고 본다. 한국방송 경영진을 바꾸는 정도로 끝내겠다고 하면, 새 사장과 한국전력이 분리징수와 관련해 뭔가 타협점을 찾을 것이다.

반대로 분리징수를 그대로 추진하면 지금과 같은 체제 유지는 불가능하고, 한국방송 2티브이를 민영화하는 방향으로 가서 어마어마한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또 2티브이를 민영화하면 그 흐름이 문화방송까지 가게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만약에 대량 해고 사태가 일어난다면 저항은 상당히 격렬해지리라고 본다. 엄청난 파열음이 생길 것이다.”

 

―지금 시대 공영방송의 존재 이유를 다시 짚어본다면?

 

“그렇잖아도 미디어 시장이 클릭 수나 찾고 돈이나 쫓아가고 자극적인 콘텐츠 경쟁이나 하고 생태계가 엉망이다. 디지털 시대의 어두운 측면인데, 그런 과정에서 적어도 공영방송은 상대적으로 훨씬 청정한 공공재로 역할을 한다. 물론 그 공공재가 제대로 만족을 못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여전히 자본이 지배하는 미디어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개인적으로 아직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차마고도’ 같은 다큐멘터리를 어디서 만들 수 있겠나. 당시 다큐멘터리 한편 제작비가 보통 7천만~8천만원이었는데, 차마고도는 한 편당 2억5천만원 들었다. 시간도 주고 돈도 주고 하니까 그 세계적인 명작이 나온 것 아닌가. 맨날 무슨 트로트나 방송하고 돈만 쫓아다니는 종편 같은 데서 어떻게 그걸 만들 수가 있겠나. 수신료를 두 배만 올려도 그런 작품이 1년에 여러개 나올 수 있다.

영국의 자랑인 비비시(BBC)는 수신료가 우리 돈으로 2만원이 넘는다. 비비시가 좋은 콘텐츠를 얼마나 많이 만드나. 그런 공공재를 오히려 없애겠다는 발상 자체가 말이 안 된다. 또 한국방송이 운영하는 한민족방송, 장애인방송 등 보이지 않는 공익적 채널이 많다. 이런 공공재에 대한 투자를 낭비라고 생각하는 사회가 어떻게 건강할 수 있나.”

 

 

구시대적 언론장악 성공 못해…역사 교훈 새겨야
 

―현 정부의 방송장악이 성공할 수 있을까?

 

“시대가 바뀌었다. 인공지능이 나와서 어마어마하게 세상을 바꿔놓는 디지털 세상에서, 저렇게 구시대적 사고방식과 행태로 언론을 장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저 자신감이 정말 이해가 안 된다. 지금이 전두환 시절처럼 언론 장악이 가능하고 통제가 가능한 시대인가. 옛날 아날로그적인 통제 방식, 그리고 그 아날로그적인 구시대 인물들이 하고 있는 언론장악은 절대 성공을 못 하리라고 본다. 또 한국방송이든 문화방송이든 와이티엔(YTN)이든, 건강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저널리스트들이 자신의 존재까지 부정을 당하는 경우에는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 1974년 10월24일 동아일보 기자들이 편집국에서 박정희 정권의 언론 탄압에 맞서 ‘자유언론 실천선언’을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세번째 해직을 당했다. 어떤 심경으로 대처하고 있나?

 

“세번 모두 선택의 기준은 딱 하나였다. 이게 옳은 길인가. 1975년 유신 때 언론자유가 완전히 말살되던 시대에, 거기에 저항하는 것이 옳은 길이라고 생각해서 그 길을 선택했다.

한국방송 사장 때도 주위에서 사표 내라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사표 내면 편할 수 있다는 게 보였다. 그러나 그게 옳은 길이 아니었기 때문에 해임 당하는 것을 선택했고,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이런 선택을 통해서 권력의 폭력성과 불의를 밖으로 드러내는 게 진짜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 자리에 내가 있다는 것이 오히려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이번 가을로 77살인데, 박정희 때도 살아봤고 전두환 때도 살아봤고 숱한 것을 다 지켜보고 살아왔는데, 엄청난 모순과 잘못, 오만들이 축적되면 꼭 무너지게 돼 있다. 왜 거기서 교훈을 못 얻는지 정말 이해가 안 된다.”

 

 

 

박용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