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 검경, 공권력, 공공 비리

소멸을 향해 내달리는 검찰

道雨 2023. 10. 4. 18:04

소멸을 향해 내달리는 검찰

 

 

 

연휴 한가운데인 지난달 30일 대검찰청이 입장문을 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관련 압수수색이 376회에 이른다는 민주당 주장을 반박하며 총 36회가 맞다고 했다.

이 대표 구속영장 기각 뒤 무리한 수사라는 비판이 높자, 부랴부랴 대응에 나선 것 같다.

민주당은 언론 보도를 근거로 한 수치라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시도”라고 재반박했다.

 

압수수색 횟수는 이 대표 관련 수사의 범위를 어디까지 볼지, 하나의 영장으로 여러 장소를 압수수색할 경우 어떻게 셈할지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숫자놀음은 본질을 흐리는 지엽에 불과하다.

 

대북 송금 의혹과 관련한 경기도청 압수수색을 보자.

김동연 경기지사는 지난 3월16일 “검찰이 3주(22일) 동안 92개의 피시와 11개의 캐비닛을 열고, 6만3842개의 문서를 가져갔다”고 밝혔다. 검찰이 도청에 상주하다시피 하며 압수수색을 했다고 한다. 사건과 어떤 연관성도 찾기 어려운 현직 지사의 컴퓨터까지 뒤졌다.

 

검찰은 이 모두를 하나의 연속된 압수수색이라고 계산할지 모른다. 하지만 집착과 오기가 느껴지는 이런 압수수색 행태는, 횟수로 환산하기 어려운 수사의 강도를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지난해 가을 민주당사 압수수색은 어떤가.

검찰은 국정감사 기간에 압수수색에 나서 밤늦게까지 대치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을 앞두고 또 압수수색에 나섰다. 전례가 드문 야당 당사 압수수색을 요란하게 벌이고도, 정작 압수해 간 것은 파일 몇개가 전부였다.

 

 

두 사례는 이 대표와 야당 수사에 올인한 검찰의 전방위적이고 정치적인 수사 행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년 넘게 3개 검찰청, 검사 60~70명을 동원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검찰은 숫자가 틀리다고 주장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 들어 정권과 한 몸이 되어 야당과 비판 세력을 몰아붙인 것 말고는 검찰의 활약상이 기억나지 않는다. 김건희 여사의 주가조작 의혹을 비롯해 권력 주변의 범죄 의혹을 제대로 수사하는 모습은 물론 보이지 않았다.

 

시민들이 비판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압수수색 횟수가 틀렸다는 둥, 지엽적인 문제로 물타기 해봐야 본질이 가려지지 않으며, 여론 호도의 꿍꿍이만 드러낼 뿐이다.

이 대표 영장 기각으로 확인된 검찰의 무능과 정치성이 후속 대응에서도 그대로다.

 

 

검찰은 그동안 두 가지 포장에 기대어왔다. 유능함과 공정성이라는 포장이다. 이 대표 영장 기각, 더 넓게는 윤석열 정부 검찰의 행태 전반은 두 포장을 여지없이 뜯어냈다.

 

검찰의 수사 능력에 대해선 검사 출신인 홍준표 대구시장이 한마디로 평가했다.

“옛날에는 아무리 큰 사건도 두달 이상 끌지 않았는데, 이재명 대표 비리 사건은 2년이나 끌고 있으니, 요즘 검찰은 무능한 건지 참 답답한 노릇이다.”

 

특별수사는 외과 수술 하듯 환부만 정확히 도려내야 한다는 수사의 정석은 폐기됐다. 환부인지 아닌지도 모를 곳을 이리저리 절개하며 1년여를 보낸 뒤, 구속영장은 가차 없이 기각됐다. 그것도 헌정사상 초유의 제1야당 대표 구속영장이었다.

유능함을 자부하던 검찰의 자존심이면 스스로 못 견뎠을 상황이다. 법무부 장관이든 검찰총장이든 옷을 벗었을 것이다. 이제는 그런 자존심마저 잃은 듯하다.

 

사실 검찰의 유능함은 수사·기소권을 한 손에 쥔 막강한 권한에 의존했고, 인디언 기우제식 수사로 짜낸 성과를 유능함으로 치부하기도 했다. 그것이 그나마 통했던 것은 말뿐일지언정 정치적 중립과 공정을 내세우고, 때로 ‘살아 있는 권력 수사’라는 명분도 적당히 끼워 넣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 대표 구속이라는 정치적 목적에 매몰된 나머지, 창졸간에 무능을 자백하고 말았다.

 

 

윤석열 정부 들어 검찰은 공정성이란 포장을 일찌감치 벗어던졌다.

대통령이 검사 출신이면 대통령과 거리를 두는 것처럼 비치기 위해서라도 애써야 할 텐데, 오히려 ‘윤석열의 검찰’을 노골화했다.

대통령의 대선 경쟁자이자 제1야당 대표를 겨냥한 수사라면 최대한 절제하는 척이라도 해야 할 텐데, 오히려 역대급 기우제식 수사를 하고 있다.

끼워넣기식이나마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하는 시늉이라도 낼 법한데, 아예 안면몰수다.

 

검찰이 유능함과 공정성이라는 포장에 공을 들여온 것은, 검찰 조직의 위세를 유지하고 키우기 위해서였다. 무능하고 불공정한 검찰에 막강한 권한을 몰아주는 바보 같은 나라는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이제 검찰은 포장을 벗어던지고 무능과 불공정의 본색으로 질주하고 있다.

 

지난해 사직한 여환섭 전 법무연수원장이 검찰 내부망에 남긴 말은 갈수록 적실해진다.

“현재 정치적 상황과 지난 경험에 비추어 보면, 앞으로 닥칠 위기는 기존의 것과는 차원이 다르고, 조직의 존폐와 관련돼 있을 수 있다.”

 

바야흐로 검찰의 역할과 권한, 나아가 조직의 존치 자체에 대한 깊은 회의가 시민들 사이에 번지고 있다.

 

그러나 주인의 신호에 크게 짖으며 내달리는 사냥개에게 다른 뭐가 보이고 뭐가 들리겠는가.

 

 

 

박용현 I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