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윤석열과 박정희의 '어릴 적 다닌 교회 활용법'

道雨 2023. 11. 1. 11:31

윤석열과 박정희의 '어릴 적 다닌 교회 활용법'

 

 

 

지난해 수십 년만에 어릴 적 영암교회 찾은 윤석열

교회 거절에도…이태원 참사 1주기 맞아 또 방문

박정희, 쿠데타 직후 "나도 어릴 때 교회 다녔는데"

'친 불교 정치' 하며 보수 목사들 자문 구한 박정희

 

 

*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씨가 지난해 12월 25일 서울 성북구 영암교회에서 성탄절 예배를 드리고 있다. 연합뉴스

 

 

 

“타임머신을 타고 50년 전으로 되돌아간 느낌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25일  49년 만에 서울 성북구에 있는 영암교회를 찾아 교인들 앞에서 한 인사말이다. 윤 대통령은 초등학교 때 이 교회를 다녔다. 중학교 1학년 이후로는 다니지 않았다. 반세기 만에 교회에 나타난 윤 대통령은 예배 뒤에 다시 발길을 끊었다.

그런가 보다 했는데, 윤 대통령은 지난 29일 이태원 참사 1주기를 맞아 영암교회에 또다시 나타났다. 뒷말이 무성했다. 무엇보다도 교회 측이 윤 대통령의 방문을 거절했는데도 대통령실이 밀어붙였다는 것이다. 교인들은 성탄절 때 찾아와 교회를 이용하더니 또다시 똑같은 짓을 하느냐는 불쾌감을 토로했다고 한다.  (<윤석열 ‘셀프 예배쇼’ 교인들도 분노…“교회가 만만한가”> 참조)

윤석열 대통령의 ‘어릴 적 다닌 교회 활용법’을 보니 박정희 시대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박정희도 권력을 잡은 직후 ‘어릴 적 다닌 교회 활용법’을 대중 앞에 선보인 적이 있다.

 

 

“나도 어렸을 때 주일 학교를 다녔는데 요즘은 잘 다니지 않습니다.” 

 

박정희가 5·16 쿠데타 직후인 1961년 서울 이화여대에서 열린 전국기독교지도자대회를 찾아 내놓은 인사말이다. 그날의 인사말은 자신이 교회와 인연이 있음을 내세우기 위한 치레였을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 서로 잘 지내보자는 제스처였을 것이다.

박정희는 실제 어렸을 때 경북 구미의 상모교회를 다닌 적이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된 박정희는 ‘친기독교’가 아니었다. 박정희는 특히 1972년 ‘10월 유신’을 선포한 뒤 개신교와 가톨릭이 자신과 정권을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가자 그들을 눈엣가시로 여겼다.

박정희는 기독교계와 갈등을 빚은 반면 불교계와는 친하게 지냈다. 석굴암과 불국사 도안이 들어간 국내 최초의 1만 원 짜리 지폐가 나온 것은 ‘10월 유신’ 이듬해인 1973년이었다. 석가탄신일이 국가공휴일로 지정된 것은 ‘10월 유신’ 3년 뒤인 1975년이었다. 요즘도 툭하면 이슈가 되고 있는 국·도립 공원 내 사찰 문화재 관람료 징수도 박정희 때 시작됐다.

오는 정이 있으면 가는 정도 있는 법이다. 불교계도 박정희의 ‘친불교’에 화답했다. 일부의 승려, 불교계 인사, 불교학자들은 박정희 정권의 요구와 입맛에 맞게 반공을 내세우는 ‘호국불교’(護國佛敎)를 만들어 갖다 바쳤다. 박정희는 독재 유지를 위한 한 방편으로 ‘호국불교’를 한시절 잘 써 먹었다.

그러면서도 박정희는 몇몇 보수적인 목사들을 선별적으로 만나 ‘국정 자문’을 받았다. 조용기, 김준곤, 김장환 목사 등이다. 특히 박정희는 조용기 목사의 ‘새마음운동’에서 아이디어를 받아 ‘새마을운동’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지난 2021년 10월 30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스님을 만난 뒤 기자들에게 자신과 어머니가 “모두 독실한 불자”라고 밝히고 있다. BTN

 

 

윤석열 대통령의  종교가 무엇인지 아리송하다. 

 

어린 시절 개신교 교회를 다닌 윤 대통령은 가톨릭교회로부터 암브로시오라는 세례명도 받은 사람이다. 지난 2021년 10월 30일에는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서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스님을 만난 뒤 기자들에게 자신과 어머니가 “모두 독실한 불자”라고 밝힌 적도 있다. 이쯤 되면 윤석열 대통령의 종교가 정확히 무엇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대중은 윤 대통령이 부인 김건희 씨와 함께 무속에 빠져 있는 것으로 의심한다. 지난 2021년 10월 5일, 윤석열 후보는 유승민 후보와 TV 토론회에서 격돌했다. 유 후보가 윤석열과 천공의 관계를 따져 물은 것이다. 윤 후보는 토론회가 끝나고 “(천공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 정법 유튜브를 보라. 정법은 따르는 사람들이 많다. 정법에게 미신이라고 하면 명예훼손 될 수도 있다”며 유 후보에게 거칠게 항의했다고 한다. 당시 유승민 캠프 측의 주장이다. 후보 시절 손바닥에 왕(王) 자 쓰고 나온 얘기는 덮어두자.

윤석열 대통령은, 박정희가 ‘친불교’ 뒤에서 보수 목사들을 만나 그러했 듯, 무속인들에게 ‘국정 자문’을 받고 있는 게 아니냐는 대중의 의심을 사고 있다. 그런 의심은 천공이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를 용산으로 이전하는 과정에 개입했다는 등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러다 어느날 갑자기 윤 대통령이 공산전체주의를 앞세우며 ‘호국무교’(護國巫敎)를 들고 나오지는 않을까, 무섭다.

 

* 1975년 12월 27일 조계사에서 5000여 명의 승려가 참여한 가운데 호국승군단 출범식이 열렸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오른쪽은 국내 최초의 1만 원권 지폐. 

 

 

 

이승호 에디터ilove-mindle@mindl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