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ILO협약 탈퇴” 문명국 이탈 선언…민생 말할수록 뒤로 간다
이주노동자 임금 깎으려 175개국 비준한 협약 조준
‘차별 금지’ 협약 빠지면 국제 신뢰 하락·통상 마찰 우려
EU, 2002년 단결권 협약 않는 한국에 “FTA 위반” 지적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0일 국무회의에서 “국민의 절박한 목소리”라며 ‘이주노동자에게 최저임금 미적용’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완화’를 언급했다.
국제 노동규범인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 탈퇴와 50인 미만 사업장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유예라는 법 개정 사안을 민생 현장의 목소리라며 쏘아 올린 윤 대통령 발언에, ‘뜬금없다’는 반응과 함께 정부의 반노동 정책 기조를 재확인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윤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취약계층 노동자에 대한 차별을 강화하고 소상공인과의 대립을 부추기는 방향일 뿐 아니라, 국제 규범에 맞지 않아 통상 분쟁을 일으킬 소지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는 식당 사례를 소개하며 “(업주가)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을 내국인과 동등하게 지불해야 한다는 아이엘오 조항에서 탈퇴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비상대책 마련을 호소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언급한 아이엘오 111호(고용과 직업상 차별 금지) 협약은 국제노동기구가 반드시 비준할 것을 요구하는 8개 기본협약 중 하나다. 고용과 직업에서 인종·성별·피부색·출신국가 등을 이유로 어떤 차별도 하지 말라는 게 핵심 내용이다.이미 세계 175개국이 비준할 만큼, 문명국의 한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도 1998년 비준했다.
특히 대부분 고용허가제로 들어오는 이주노동자들은 한국 노동시장에서 임금과 복지 등 처우가 가장 취약한 경우가 많다. 윤 대통령 발언은 이들 취약 노동자의 임금을 깎기 위해 국제 기준을 번복하자는 의미로 읽힌다.
현실성도 매우 떨어진다. 협약을 탈퇴하려면 정부가 국제노동기구에 해당 협약 탈퇴를 요청할 수 있지만, 국제적으로 사례를 찾기 어렵다.
국회가 이미 비준해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지닌 이 협약을 탈퇴하려면 다시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주노동자를 차별대우하려면, 애초 국적 등을 이유로 근로조건을 차별하지 못하도록 규정한 근로기준법도 함께 바꿔야 한다. 여소야대의 21대 국회에선 어림없는 일이다.
윤 대통령 발언 직후 대통령실이 나서 “정책적 결정을 한 것이라 말하긴 어렵다”고 서둘러 진화에 나선 배경이다.
내년 1월27일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되는 5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도 가장 취약한 노동계층으로 분류된다. 실제 중대재해의 81%는 이들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한다. 아무런 보완책 없이 적용을 유예하자는 대통령 발언은, 이들을 계속 위험한 노동 환경에 두자는 얘기와 다르지 않다.
대통령이 ‘민생’ 목소리를 빌려 친기업적 노동 정책 기조를 재확인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김종진 유니온센터 이사장은 “윤 대통령이 약자 복지와 민생경제를 외치면서 되레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강화하는 퇴행적인 행위이며, 둘 다 ‘을’인 취약 노동자와 소상공인 사이에 갈등과 혐오를 조장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기본협약을 탈퇴하면 통상 마찰과 국제 신뢰도 하락을 겪어야 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유럽연합(EU)은 2020년 한국이 단결권 관련 기본협약을 비준하지 않은 것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한 것이라며 문제를 제기해 전문가 패널 협의가 열린 적도 있다.
국제통상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는 한겨레에 “국제통상 부문에서 노동 문제가 최근에도 관심을 많이 받고 있고 논의가 되고 있다”며 “단기간 특정 업종의 비용을 낮추는 효과는 있겠으나,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통상 환경을 해치고 국민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한편, 여러 국가와의 에프티에이에서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 지점”이라고 말했다.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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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노동자 임금 줄이자'는 윤 대통령, 이건 아십니까?
'외국인 농업인력 적정임금 11만 원 이하' 내걸었다가 후폭풍 맞은 나주시... 어설픈 정책은 그만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을 내국인과 동등하게 지불해야 한다는 ILO 조항에서 탈퇴해야 되는 것 아니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국무회의에서 한 발언이다. 윤 대통령은 "칼국숫집 주인이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을 내국인과 동등하게 지불해야 한다'는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문제를 더 잘 알고 있다"면서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식당에서는 끝없이 올라가는 인건비에 자영업자들이 생사의 기로에 있음을 절규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발언엔 외국인 노동자에겐 내국인과 동등한 임금이 아닌 더 낮은 임금을 줘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만약 그의 말처럼 강제로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을 낮게 책정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일당 줄이자 외국인 이탈... 웃돈 주고 모셔 와
▲ 지난 4월 나주시내에 내걸린 외국인 근로자 11만원 이하 지급 현수막
지난 4월 전남 나주시내에는 "올해 외국인 농업 인력 하루 적정임금은 11만 원 이하로 지급하십시오"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곳곳에 내걸렸다. 나주시의회와 시의원들 연구단체인 '농촌 외국인 근로자 도입을 위한 연구회'가 제작한 현수막이었다.
나주시의회가 외국인 근로자의 임금을 11만 원 이하로 책정한 이유는, 코로나 사태 이후 외국인들의 인력 유입이 크게 줄면서 나주 지역 일당이 14~15만 원까지 치솟았기 때문이다.
시의회는 농가의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취지로 캠페인을 시작하면서 자신만만했다. 왜냐하면 나주에서 체류하는 외국인 4000여 명의 90% 이상이 불법체류자였기 때문이었다. 일당 11만 원 이상을 요구하는 외국인을 신고하면 이들은 모두 불법체류자로 체포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법무부 출입국관리소에서 나주시 일부 지역의 불법체류 외국인 20여 명을 본국으로 송환하기도 했다.
하지만 인력시장은 나주 시의회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한때 11만 원으로 낮아졌던 임금은 또다시 14~15만 원으로 올랐다. 그마저도 일손을 구할 수가 없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캠페인이 벌어지자 나주를 떠났기 때문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자 농가는 난리가 났다. 일할 사람이 없어 농작물을 제때 수확하지 못했다. 인력사무소에 일용직 인부를 요청해도 사람이 없었다. 평소보다 더 많은 웃돈을 줘야 겨우 인부를 구할 수 있었다. 농가는 숙련된 외국인 노동자를 다 쫓아냈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어설픈 노동정책과 임금통제는 더 큰 혼란을 겪을 수도
윤석열 대통령이 말한 'ILO 조항 탈퇴'는 한국이 1998년 비준한 ILO 협약을 의미한다. 111호 '고용과 직업에서의 차별 협약'은 "고용과 직업에 있어서 인종·피부색·성별·종교·정치적 견해·출신국·사회적 출신 성분에 의거해 행해지는 모든 차별을 배제하고 철폐할 목적으로 국가정책을 결정하고 추진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나주시내에 외국인 노동자의 일당을 제한하겠다는 현수막이 게시되자, 시의회 홈페이지에는 "현수막의 내용이 너무 부끄럽고 낯 뜨겁다"면서 "만약, 외국인 노동자가 아니라 한국인 노동자였어도 이런 현수막을 내걸 수 있었을까? 절대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약자인 외국인 노동자를 무시하고 차별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아직도 이런 발상을... 그럼 내국인도 11만 원 줘야지.. 외국인만 11만 원을 준다고? 요즘 세상에 이런 발상을 하는 인간들이 있으니.. (중략) 본인들은 더럽고 힘들다고 안 하면서 외국인들 이것저것 궂은일 다 시키는 사람들이...정신들 차려라." (나주시의회 홈페이지 '의회에 바란다'에 올라온 글 중)
윤석열 대통령은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을 강제로 낮추면 식당 등 자영업자들의 부담이 줄어들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하지만 나주시 사례처럼 외국인 노동자들이 대거 떠나 심각한 인력난을 겪거나 지금보다 더 임금을 많이줘야 할 수도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설픈 임금통제는 아니한만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덧붙여 '외국인 노동자를 차별하는 국가'라는 낙인을 덤으로 안게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독립언론 '아이엠피터뉴스'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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