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방송에 편파를 허하라

道雨 2024. 1. 31. 09:00

방송에 편파를 허하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가 그야말로 막장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뉴스타파는 지난해 말 류희림 방심위원장 가족과 지인들이 특정 방송 관련 민원을 대거 넣었다는 이른바 ‘청부민원’ 의혹을 보도했다.

이후 류 위원장 사퇴 여론이 불거졌고, 진상조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방심위 내부와 언론계에서 들불처럼 번졌다. 전체의 절반 넘는 방심위 직원들이 국민권익위원회에 류희림 청부민원을 조사해달라고 진정을 넣었다.

하지만 류 위원장은 오히려 적반하장식 태도를 보였다.

제보자를 색출하겠다며 경찰에 고발했고, 고발장을 받아든 경찰은 기다렸다는 듯이 방심위 민원상담팀과 운영지원팀을 압수수색했다. 물론 류 위원장 청부민원 수사는 감감무소식이다.

 

앞서 류 위원장은 지난해 9월 언론계 가짜뉴스를 근절하겠다며 ‘가짜뉴스 심의전담센터’ 설치를 추진했다. 직원들 상당수는 법적 근거가 부족한 ‘가짜뉴스 심의 추진’을 우려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최근 우려 성명에 동참한 팀장 11명 중 7명이 인사조치됐다.

야당 추천 방심위원은 민원사주 의혹 진상규명을 요구하다가 비밀유지 의무 위반으로 해촉됐다. 총 9명 방심위원 중 야당 추천 2명이 현재 공석으로, 위원회 여야 구도는 6 대 1이 되었다. 야권 방심위원은 항의 차원에서 심의를 중단하고, 해촉된 김유진 위원은 해촉 무효 소송과 가처분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30일 방심위는 이른바 ‘바이든-날리면’ 보도 관련 심의를 개시해, 문화방송(MBC) 등 9개 방송사 관계자들의 의견진술을 결정했다. 최근 외교부가 문화방송을 상대로 제기한 정정보도 청구 소송에서 1심 재판부는 전후 맥락과 박진 당시 외교부 장관의 진술을 고려할 때 대통령이 비속어를 사용했다고 볼 수 없다며 외교부 손을 들어줬고, 문화방송은 이에 항소한 상황이다.

아직 소송이 진행 중인데 방심위는 징계에 착수한 셈이다. 의견진술 뒤엔 방송사 법정 제재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회의에는 정부·여권 추천 위원만 참석했다.

 

최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여당 간사인 박성중 의원은 일부 방송사가 대통령에게 국정기조 전환을 요구하다 행사장에서 끌려 나간 강성희 진보당 의원을 일방적인 피해자로 묘사한 유튜브 섬네일이 문제라며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끌려 나간”이란 표현이 강 의원 쪽 주장만 부각했고, 섬네일 문구는 방송심의규정 9조와 14조, 정보통신심의규정 8조 등을 위반해 법적 처벌 대상이라는 주장도 이어졌다.

 

방심위가 역대 최악의 막장 파행운영 중인 것은 사실이지만, 류 위원장이 물러나고 다른 인사가 오면 지금의 문제가 해결될까.

사실상 행정기관인 방심위의 시사방송 심의 자체에 문제 제기가 있어야 한다.

 

방심위는 정권 보위 기관으로 전락했다. 윤석열 정부뿐 아니라 과거 민주당 정부에서도 친정부 단체들이 정권에 비판적인 방송을 조직적으로 모니터링해 민원을 제기하고, 정부·여당 추천 위원들은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정권에 비판적인 방송을 제재하는 시스템을 형성했다. 재허가 재승인 심사와 연계해 정권에 비판적인 방송보도를 압박하고 있다.

 

국외 주요 선진국의 경우, 우리나라처럼 시사보도를 일일이 심의하고 제재하는 시스템 자체가 없다. 방심위가 지난해 말 발간한 ‘해외 시사·보도프로그램에 대한 내용규제 현황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주요국에서 시사프로그램 행정 제재는 최소 원칙에 따라 이뤄진다. 특히 규제기구를 통한 행정 제재는 법률 위반이 명백할 경우로 한정한다.

미국의 경우 연방정부 주도 방송심의 제도가 없고 방송사 자율심의가 우선이며, 영국도 자율규제기구인 독립언론모니터가 자체 규제를 하는 것이 원칙이다.

 

어느 정치세력이든 권력을 잡으면 비판적이고 불편한 언론보도를 순치하고 싶은 욕망을 느껴왔고, 방심위는 정권의 언론 길들이기 수단으로 전락해버렸다.

 

이젠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방송의 편파’를 인정하는 것이 우선이다. 우리 쪽 언론은 정론직필이며 상대 쪽 언론은 왜곡편파라는 시각에서 벗어나는 것이 필요하다.

선진국처럼 불법이 아닌 모든 시사보도를 허용하자.

방송사 자율로 규제하도록 자율심의기구를 만들고, 방심위는 명백한 불법에만 제재하도록 하는 것이 맞다.

그리고 정치적 후견주의를 벗어나야 한다.

정치권이 모든 방심위원을 추천하는 현 제도를 변경해, 권위 있는 전문가 단체가 직접 방심위원을 추천하는 제도를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김준일 : 뉴스톱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