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민족주의의 종언

道雨 2024. 2. 5. 09:20

민족주의의 종언

 

 

 

‘하나의 핏줄, 하나의 언어, 하나의 역사, 하나의 문화를 가진’ 남과 북이라고, 2018년 4월 남북정상회담 때 김정은 위원장은 말했다.

그런데 올해 최고인민회의에서 ‘더 이상 동족 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라고 규정했다.

인식의 전환은 남북 관계 악화를 반영하고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사실 민족주의적 접근은 오래전에 이미 끝났다. 황혼의 남은 한줌 빛이 이제 꺼졌을 뿐이다.

 

북한의 민족 개념은 두개다.

하나는 통일 담론으로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의 ‘민족 대단결’에서 2000년 6·15공동선언의 ‘우리 민족끼리’, 2018년 정상회담의 ‘하나의 민족’까지 이어졌다.

다른 하나는 ‘한민족’이 아니라 ‘북한 민족’이다. 김정일 시대의 ‘김일성 민족’이나 ‘조선 민족 제일주의’는 북한의 이념, 제도, 지도자를 정당화하는 개념이다. 김정은 시기의 ‘김정일 애국주의’ 역시 ‘김일성 민족’ 개념에 입각해 있다.

 

 

북한의 역사에서 ‘우리 민족끼리’는 남북 관계가 좋았던 시기에 등장한 담론이다. 그렇게 길지 않다. 대내적으로 체제 정당성 담론인 ‘북한 민족’을 강조했던 시기가 훨씬 길었다.

2019년 1월 김정은 체제에서 강조한 ‘우리 국가 제일주의’는 ‘민족’에서 ‘국가’로 전환한 것이 아니다. 두개의 민족 개념 중 통일 담론으로서의 민족 개념을 폐기하고, ‘북한 민족’을 국가라는 개념으로 대체한 것이다.

 

분단 이후 남북 관계도 민족주의적 접근과 거리가 멀다. 한반도 문제의 국제화 때문에, 언제나 국제질서의 변화에 영향을 받았다. 지금까지 이루어진 다섯번의 남북정상회담은 하나의 예외 없이 북-미 관계가 풀려서 남·북·미 삼각관계가 선순환할 때 가능했다. 남북 양자 관계만으로 현안을 풀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끼리’는 관성에 의한 구호일 뿐, 정책 현실은 아니었다.

 

 

‘통일을 지향하는 잠정적 특수 관계’도 끝났는가?

‘특수 관계’는 두개의 국가라는 국제법적 현실과 ‘민족 통일’의 미래라는 이중성을 결합한 개념이다. 현실과 미래를 이어주는 다리는 관계의 수준인데, 당연히 미래의 문을 닫으면 남는 것은 두개의 국가라는 현실뿐이다.

 

물론 두개 국가는 새롭지 않다. 유엔 가입 때부터 국제적으로 남과 북은 두개 국가이고,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 통일 방안의 핵심인 남북 연합 역시 말 그대로 두개 국가의 연합이다. 중요한 것은 두개 국가 그 자체가 아니라, 두개 국가의 관계다.

 

지금은 파도가 아니라 파도를 일으키는 바람을 들여다볼 때다. 심층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움직임을 알지 못하고 민족주의에 호소하던 시간이 끝났음을 인정할 때가 왔다.

김정은 위원장을 포함하는 남북의 분단 3세대는 통일에 부정적이다. 남북 관계의 상대적 자율성도 줄어들면서, 적대적인 상호 의식도 층층이 쌓였다.

‘북핵 문제’를 협상으로 해결할 가능성도 급격히 줄었다. 전술적이 아니라 전략적 변화이고, 사건이 아니라 구조가 변하고 있다.

 

더욱 우려할 만한 구조의 변화는 군사분계선이 단순히 남북을 가르는 소분단이 아니라, 동아시아와 세계를 가르는 대분단의 선으로 굵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신냉전을 완성하는 데 시간이 걸리겠지만, 군사 분야에서 진영 대결이 짙어지고 있다.

 

북한은 남방정책의 기대를 접었다. 미국 대선 이후의 협상 재개나 혹은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벼랑 끝 전술’과 같은 단어들은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다. 미국에서 다시 중국 역할론이 제기되고 있으나, 과거 북핵 문제 해결 시기의 미-중 협력을 재연하기는 어렵다. 중국과 러시아의 대북정책 차이가 분명한데, 그 틈을 파고들어 한반도 정세를 안정시킬 외교의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외교가 사라지니 군사만 남았고, 그것이 현재 위기의 구조적 특징이다.

 

북한은 군사분계선을 대분단의 선으로 만들어 생존하겠다는 전략이다. 대분단이 굳어지면 소분단을 극복할 수 없다. 서독의 정책을 왜 대동독 정책이 아니라 동방정책이라고 했겠는가?

 

여지가 줄어들고 있지만, 대분단을 막을 북방외교를 포기하면 안 된다. ‘민족 공조’나 ‘흡수통일’은 달리 보여도 공통적으로 민족주의적 접근이다.

이제는 달라진 질서를 반영하는 탈민족주의적 접근이 필요하다.

 

통일의 미래는 어떨까?

북한이 미래로 가는 다리를 끊었다고 해서, 우리까지 동조할 필요는 없다. 오지 않을 줄 알면서도 왜 고도를 기다리겠는가? 기다림 자체가 삶의 존재 이유이듯이, 통일의 미래는 분단국가의 숙명적 과제다.

아무리 멀어도 미래로 가는 문을 닫을 필요는 없다.

 

 

 

김연철│전 통일부 장관·인제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