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입틀막’ 방송심의, 아무 말 대잔치

道雨 2024. 3. 21. 10:11

방심위, 책임지지 않는 권력

 

          * 지난해 11월13일 문화방송(MBC) ‘뉴스데스크’ 방송 장면. 문화방송 유튜브 갈무리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는 방송 내용에 대한 심의·규제를 하는 기관이다.

방송 내용을 규제한다는 것은 자칫 언론·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고, 그래서 최소 규제가 원칙이다.

 

방심위는 위원장과 심의위원 중심 체제이다. 그들의 임기는 3년이다. 임기제이기 때문에 심의·제재와 관련해 책임질 일은 거의 없다.

이명박 정권 시절 방심위가 법정 제재를 가한 몇몇 사안들이 법원에서 제재 취소 결정을 받았지만, 당시 제재를 결정한 사람들은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다. 물론 방심위의 심의 결과와 법원의 결정이 늘 같을 수는 없다.

그런데 법정 최고 수위의 제재를 받은 사안에 대해 법원이 ‘문제없음’ 결론을 내린다면, 해당 사안에 대한 심의·의결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제재는 심의위원의 몫이라, 이들이 방송 내용을 심의할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추었는지, 이해충돌로부터 벗어나 있는지 살펴야 한다.

 

 

방심위 1기부터 5기까지 심의위원의 직업을 보면, 교수, 법조인, 언론인, 시민단체 활동가, 정치인 출신으로 구성되었다. 1기부터 4기까지는 교수의 비중이 40% 내외로 가장 높았는데, 5기(정연주~류희림 위원장 시기)로 넘어오면서 언론인 출신의 비중이 커졌다. 또 두명의 5기 위원장은 모두 특정 방송사 출신이다.

 

방송 내용을 규제하는 기관의 위원장과 위원을 특정 방송사 출신으로 위촉하는 것에 과연 문제가 없을까. 이와 관련해 우리나라와 가장 유사한 캐나다의 경우, 적어도 방심위원장은 방송 산업과 관련이 없는 독립적인 인사로 선임하도록 명문화했다. 이해충돌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방심위원 9명 중 6명은 사실상 정당 추천으로, 정파성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구조다. 국외 사례를 보더라도 심의위원은 대부분 정당 추천으로 구성된다. 형식상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차이는 심의위원의 자격 요건과 전문성·중립성을 확보할 보완 장치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프랑스는 법률 전문가가 3분의 1 이상 참여해야 하고, 영국은 위원 선정 때 지역 대표성을 반영하도록 돼 있다. 독일은 ‘바이든-날리면’처럼 사회적 논란이 큰 사안일 경우, 70명으로 구성된 시청자 배심원단을 활용하는 유연성을 보인다.

그런데 우리 법률은 심의위원의 임기와 임명에 관한 사항만 명시할 뿐, 자격에 대한 규정은 아예 두고 있지 않다.

 

 

문제는 방심위원의 책임지지 않는 권력이 너무 막강하다는 데 있다. 그리고 그 권력은 특정 언론사를 탄압하는 칼이 된다. 이번에는 그 칼날이 문화방송(MBC)을 향하고 있다.

 

문화방송은 방심위와 선거방송심의위원회에서 매달 숱한 법정 제재를 받고 있다.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한 건수도 상당하다.

제재 건수로만 보면 문화방송은 나쁜 방송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문화방송을 영향력 있고 신뢰할 수 있는 방송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23 언론수용자 조사’ 결과를 보면, 문화방송의 신뢰도와 영향력은 2위이다. 에스비에스(SBS), 제이티비시(JTBC), 와이티엔(YTN), 티브이조선 등이 모두 문화방송보다 낮은 순위를 기록했다. 이쯤 되면 방심위는 언론의 역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이제까지 방심위에서 공정성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법정 제재를 받은 사례에는 일관된 특징이 있다. 우선 ‘일방의 주장만을 방송했다’는 것이고, 모두 당시 정부, 또는 여당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야당을 비판하는 보도가 법정 제재를 받은 사례는 지난 16년간 단 한건도 없었다. 모두 행정지도로 마무리되었다.

 

방송법에 따른 방송심의규정 7조1항은 “방송은 국민이 필요로 하고 관심을 갖는 내용을 다룸으로써 공적 매체로서 본분을 다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민에게 필요하고 국민이 관심을 갖는 내용은 대부분 논쟁적인 사안일 가능성이 높다. 방심위 논란은 이런 논쟁적인 사안을 보도하면 제재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데서 시작된다.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지 20년이 넘었다. 나는 언론은 논란을 회피하기보다 적극적으로 보도함으로써 사회적 의제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런데 이젠 고민이 된다. 저널리스트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언론의 역할은 우리 사회의 문제를 감추고, 시류에 따라 적당히 살아가야 한다고 가르쳐야 할 것 같아 씁쓸하다.

과유불급, 지나치면 부족함만 못하다.

 

 

 

심미선 | 순천향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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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틀막’ 방송심의, 아무 말 대잔치

 

* 전국언론노동조합이 4일 서울 한국방송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선거방송심의위원회를 규탄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요즘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와 선거방송심의위원회(선방위)의 ‘활약’이 눈부시다. ‘언론 정화’ 완장을 찬 ‘군기반장’ 같다. 이 두 기관이 이렇게까지 언중의 입길에 자주 오르내릴 때가 또 있었나 싶다. 가히 심의 권력의 전성시대라 할 만하다.

 

그런데 두 기관의 활약상을 전하는 기사들을 보노라면 내 눈을 의심하게 될 때가 더러 있다. 심의위원이 했다고는 믿기 힘든 말들이 자주 눈에 띄어서다.

심의위원이 누구인가. 방송의 공정성 여부에 대해 ‘판관’ 노릇을 하는 이들 아닌가.

 

 

지난달 16일 미디어오늘에는 문화방송(MBC) 시사 프로그램 ‘신장식의 뉴스하이킥’에 대해 선방위가 법정제재를 의결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기사를 읽다 ‘김건희 여사 명품 가방 수수’ 보도와 관련해 한 선방위원이 “여성에 대한 테러”라고 말했다는 대목에서 시선이 멈췄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싶어 그날치 선방위 회의록을 찾아봤다.

 

“대통령 부인이 비난받을 요소가 있다 칩시다. 그런데 그래놓고 나서 그 목사가 방송에 나와서 내가 300만원짜리 명품백 줬다, 대한민국 국민들한테 다 터트리는 거예요. (중략) 그것은 사실은 그 여성에 대한 테러고, 모든 성직자에 대한 또 다른 테러 행위예요. 어느 성경 말씀에 그런 거 하라고 가르쳐줍니까.”

 

명품 가방 사건을 다루면서 왜 ‘함정 취재’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냐고, 문화방송 제작진을 추궁하면서 한 말이다.

아무리 보도가 마음에 안 들어도 그렇지, 이게 할 소린가.

더욱이 ‘서울의 소리’가 명품 가방 수수 영상을 공개한 것은 지난해 11월 말이었고, 그날 선방위 심의 대상은 올해 1월 초 방송분이었다. 한달 넘는 시간이 흘렀는데, 김 여사 명품 가방을 언급할 때마다 함정 취재 비판을 ‘복붙’하듯이 되풀이하라는 것인가.

이 선방위원이 그날 내뱉은 또 다른 발언은 좀 더 직설적이다.

 

 

“(엠비시에서 의견 진술자로 나온) 두 분은 어떤 생각을 가지냐 하면, 다 본인 생각이에요. 내가 생각할 때 중요도는 대통령 부인이 백을 받은 거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그래서 국민들이 전부 다 그렇게 생각할 거라는 거예요. 그런데 하필이면 그리 해석하는 게 전부 다 뭐냐 하면 민주당에는 유리하고 국민의힘에는 불리한 내용만 가지고 그리 판단하는 겁니다.”

 

‘민주당에는 유리, 국민의힘에는 불리’, 혹시 이 말에 그의 ‘진심’이 담겨 있는 건 아닐까. 두 발언의 주인공은 그동안 주로 정부 비판 방송들에 대해 법정제재 의견을 쏟아내온 최철호 위원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바이든-날리면’ 발언 보도에 대한 방심위 심의는 또 어떤가.

회의록에서 류희림 위원장의 발언 몇개를 발췌했다.

 

“대통령도 인간인 이상 비속어도, 쌍말도 할 수 있다.” “엠비시가 발언을 보도해 오히려 외교 참사를 조장했다는 비판에 대해선 동의할 수 없나?” “엠비시의 선제보도로 피해를 당한 대통령실 관계자들 입장에서는 대응하기가 쉽지 않았을 수도 있다.”(대통령실이 정확하게 해명을 안 한 것이 문제라는 문화방송 주장에 대한 반박)

 

마치 대통령의 대리인이라도 된 듯하다.

‘민간 독립기구’, 맞긴 맞나.

 

류 위원장은 “정상외교 현장에서 보도는 국익을 우선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이건 또 무슨 개똥철학인가.

국익이 중요하니 대통령 비판을 하지 말라는 건가. 뭐가 국익인지는 누가 판단하나.

 

방심위와 선방위 회의록에는 이 밖에도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발언이 셀 수 없이 많다. 이렇게 편향적인 생각을 가진 이들에게 심의 권력을 쥐여줘도 되나 싶을 정도다.

 

최근 들어선 선방위가 물을 만난 것 같다. 윤 대통령의 ‘재건축 규제 완화’ 발언에 대해 ‘실현될 수 있을지 미지수’라고 보도하는 건 “비판의 수준을 넘은 것”(손형기 선방위원)이다. “차라리 귀추가 주목된다 이 정도만 해도 어떨까 싶다”는 깨알 같은 조언도 뒤따른다.

대통령의 부동산 보유세 발언에 대한 비판은 선거와 관련이 없다는 방송사 쪽의 항변에는 “야당에서 내세우는 것 중에 주요한 이슈가 정권심판론이다. 그러면 정부에서 하는 정책들에 관련해서 이게 선거에 영향을 주는 거다”(최철호 선방위원)라고 반박한다.

참으로 해괴한 논리다. 선거 기간에는 정부 정책에 어떤 비판도 하지 말라는 건가.

 

선방위는 최근 일기예보에 ‘파란색 1’ 그래픽을 썼다는 이유로 문화방송에 대한 법정제재를 예고했다.

어련하겠는가.

여권에 불리한 보도에는 거의 알레르기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는 이들이 다수이니.

이러다 혹시 대통령 부부 닮은 패널 출연시켰다고 법정제재?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경험하는 시절이니, 그런 일이 벌어진다 한들 이상할 게 뭐가 있겠나.

 

 

 

이종규│저널리즘책무실장·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