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공보다 센 신공이 나타났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을 예견하는 ‘천공 스승’의 신공을 접할 때마다 감탄이 나오곤 했다. 대통령실 용산 이전부터 동해 석유 매장설까지 천공의 예측력은 평범한 사람의 수준이 아니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강적이 나타났다. 바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바 있는 이종호씨다.
하나씩 살펴보자. 작년 7월 중순의 통화 녹취록에서 이씨는 국방부 장관이 곧 교체될 것임을 확신하며 “이번에 국방 장관을 추천했는데 우리 것이 될 거야”라고 말한다. 이 예언은 곧바로 적중했다. 9월 초에 이종섭 국방부 장관 교체가 검토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고 9월 말에 실제로 이 장관은 경질된다.
어떻게 이씨는 언론보다 빨리 장관 교체를 예상할 수 있었을까.
놀라운 신공은 계속 이어진다.
7월의 녹취록에서 이씨는 “이번에 아마 내년쯤에 발표할 거거든. 해병대 별 4개를 만들 거거든”이라고 말한 데 이어, 8월에도 같은 주장을 반복한다.
현재 군사 제도상으로는 해병대에서 4성 장군이 배출돼 진출할 수 있는 직위는 합동참모본부 차장밖에 없다. 군 대장은 8명으로 정원이 제한되어 있으니 해병대가 이 자리를 차지하려면 육군 몫의 대장 1명을 줄여야 한다. 이걸 육군이 순순히 받아들일 리가 없으니 해병 4성 장군은 실현되기 어려운 희망 사항에 불과하다.
놀랍게도 올해 4월에 대통령실은 현 정부 임기 후반부인 2026년 군 정기 인사에서 해병 4성 장군을 만들기로 하고 군의 의견을 수렴 중이라는 사실을 공개했다. 이씨는 대통령실이 올해 발표할 내용을 어떻게 작년에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었을까. 군사 문제를 30년 이상 다뤄온 필자도 범접하기 어려운 능력이다.
적어도 용산의 실력자가 제공한 정보가 아니라면 민간인이 이런 말을 하기란 불가능하다. 우리나라 국방이 돌아가는 판을 정확히 읽고, 임성근 당시 해병대 1사단장을 4성 장군으로 만든다는 목표를 설정하는 담대함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게다가 이씨는 작년 5월에 해병대 예비역들의 카톡방에서 “삼부 내일 체크하고”라는 말을 남긴다. 이게 무슨 말인지 짐작하기 쉽지 않았지만, 막상 이씨의 9월 녹취록에는 삼부토건이라는 업체명이 정확히 언급된다.
이씨의 카톡방 언급이 있고 나서 이틀 후에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 부인이 한국을 방문하고, 다시 이틀 뒤인 5월17일에 정부는 우크라이나 재건사업 지원 계획을 발표한다.
삼부토건의 주가는 정부 발표 직후부터 7월 윤석열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방문까지 천정부지로 치솟아, 8월에는 5월에 비해 4배 가까이 상승한다.
이 상황을 관리하기에 바쁜 이씨의 사정 때문에 5월의 1사단 골프 모임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씨의 정보력이라면 굳이 과거처럼 주가조작을 할 이유도 없다. 정부가 뭘 할지 사전에 알고 주식을 사두기만 하면 차액이 저절로 수익으로 굴러 들어온다.
이런 추론에 대해 이씨는 아직 설득력 있는 반론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필자는 그의 답변을 기다린다.
여러 정황을 종합해볼 때 이씨는 허풍쟁이나 몽상가가 아니다. 판단이 매우 치밀하고 정확하며 은밀하고 신속하다. 천공이 양지의 요란한 신공이라면 이씨는 음지의 조용한 내공이다. 특히 임 전 사단장을 향한 이씨의 구명 노력은 그 스스로의 표현대로 브이아이피(VIP)를 향하고 있다.
여러 통화 녹취 중에 임 전 사단장을 향한 이씨의 작년 8월과 올해 4월의 언급에는 사실관계에서 한 치의 어긋남이 발견되지 않는다.
작년 5월 골프 모임의 취지와 목적, 그리고 임 전 사단장에 대한 단계별 구명 노력과 뜻하지 않은 언론 보도로 인한 역풍, 자신의 구명 노력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이어지는 녹취 내용은 일관되고 논리적이어서 도저히 무시할 수가 없다. 게다가 제보자의 거듭된 브이아이피 개입 확인에 대한 이씨의 확고한 대답은 허구로 지어낸 이야기가 아님을 말하고 있다.
이씨의 말이 허풍이 아니라면, 바로 이 구명 로비가 해병대 수사단의 수사 이첩과 이첩 서류 회수, 박정훈 대령에 대한 항명죄 적용, 경북경찰청의 이상한 수사 발표 등, 일련의 단계마다 드러나는 권력의 비정상적인 사건 개입을 설명하는 열쇠가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신속한 수사로 국민의 물음에 응답해야 한다. 이 기회를 놓치면 진상 규명의 기회는 영영 사라질 수도 있다.
김종대 |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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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장관 추천, 우리 것 될 거야’…도이치 공범 통화서 ‘장담’
이종호, 지난 1년 10여차례 통화 내용…“과장된 이야기” 주장
‘브이아이피(VIP)에게 임성근 해병대1사단장 구명운동을 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 대표의 또다른 통화녹음파일 내용이 확인됐다.
이들 통화에서 이 전 대표는 국방부 장관을 자신이 추천했다거나, 삼부토건 오너 일가와 친분 등을 자세히 언급했다.
조남욱 삼부토건 전 회장은 윤 대통령에게 김 여사를 소개해준 인물로 알려져있다.
11일 한겨레가 확보한 이 전 대표와 ㄱ변호사의 지난해 5월부터 올해 6월까지 10여차례 통화 내용을 보면, 이 전 대표는 지난해 7월13일 통화에서 ㄱ변호사에게 ‘우리 4성 장군 탄생하잖아. 이번에 국방장관 추천했는데, 우리꺼 될거야’라는 취지로 말했다. 자신이 추천한 인물이 국방부 장관이 될 것이라는 뜻이다.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은 지난해 7월20일 채 상병이 숨진 채 발견된 뒤 더불어민주당이 탄핵을 추진하자, 같은해 9월12일 사임했다. 이 장관이 교체된 것은 채 상병 사건의 여파 때문이었는데, 이 사건과 무관하게 7월13일 당시 국방부 장관 교체가 실제로 추진됐는지는 확인이 필요해 보인다. 이 전 대표는 임 전 사단장에 대해서도 “원래 그거(임 사단장) 별 3개 달아주려고 했던 거잖아”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전 대표가 정부 인사에 개입했다는 식으로 한 발언은 앞서도 보도된 바 있다. 이 전 대표는 지난해 8월9일 ㄱ변호사와의 통화에서 경무관인 한 경찰 인사를 언급하며 “오늘 ○○것도 연락이 와가지고 ○○것도 오늘 저녁때 되면 연락 올 거야”라고 말한다. ㄱ변호사가 ○○가 누군지 묻자 이 전 대표는 “○○○ 서울 치안감. 별 두개 다는 거. 전화 오는데 별 두개 달아줄 것 같아”라고 말했다. 다만 해당 경무관은 치안감으로 승진되지 않았다.
조남욱 삼부토건 전 회장은 윤 대통령에게 김 여사를 소개해준 인물로도 알려져있다. 한겨레가 입수한 2011년 5월 서울동부지검의 피의자신문조서를 보면, 김 여사 모친 최은순씨가 “김명신(김건희의 옛 이름)이 지금 결혼할 사람은 라마다 조 회장이 소개해준 사람으로 2년 정도 교제했다”고 진술한 대목이 나온다. 조서에 등장하는 ‘라마다’는 삼부토건이 운영하던 라마다 르네상스호텔이다.
이 전 대표는 자신의 발언 등에 대해 “과장된 이야기”라는 입장이다.
이 전 대표의 말대로 과거 ㄱ변호사에게 한 말 중에는 과장이 섞여 있을 수 있지만, 이 전 대표가 김 여사와 실제 인연이 있는만큼 발언의 진위에 대해서는 확인이 필요해 보인다.
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 정혜민 기자 jhm@hani.co.kr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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